중국의 비행기는 추우면 안 뜬다? -중국 귀주성(貴州省)
중국의 비행기는 추우면 안 뜬다?
카이리발 귀양행 기차는 3시간 거리를 무려 30 여시 간이나 지체한 끝에 드디어 귀양(貴陽)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춘절과 이상기후로 도로가 얼었다는 이곳 구이저우 성은 햇볕마저 귀하다는 귀양이 아니던가! 잔뜩 찌푸린 날씨에 한기가 스며든다. 멀리 갈 기운도 없어 기차역 주변에 있는 좋은 숙소에서(=따뜻한 숙소) 오늘은 일단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꽤 괜찮고 비싸 보이는 역 앞의通達빈관에 갔더니 방이 없단다! 할 수없이 좀 걷다가 明珠 빈관에 갔다. 128위엔짜리 방인데 많이 낡았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전기요가 없고 온풍기가 안된단다. 길이 얼어 차도 못 다니는 엄동설한에 따뜻한 그 무엇도 없다는 말에 미련 없이 나와 주변의 숙소를 무려 5군데 알아봤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온풍기도 안되고 오히려 나머지 숙소들은 방에 불도 못 키고 있었다. 지치고 춥고 배고픈 나는 밍주빈관에 다시 가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은 했고 전기불도 켤 수 있었지만 밤새 추위에 떨다가 밤을 새우고 난 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터미널에 가서 가장 빠른 계림행 버스(집으로 가려고)를 알아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좋은 숙소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귀양엔 버스터미널이 3개 있는데 하나는 기차역과 나란히 있는 버스터미널이고, 또 하나는 기차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체육관 터미널이고 또 하나는 귀양커처 짠 이라는 곳이다. 계림을 가려면 귀양커처짠에 가야 하는데 물론 플래카드가 걸리고 전광판까지 동원하여 모든 버스가 안 간다는 내용이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국인 홍여진 어린이와 그 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버스가 없으니 비행기를 이용하자고 했고 비행기에서 보게 되겠네요 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먼저 계림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는데 630위엔짜리를 여행사 대행이라고 740위엔에, 그것도 1월 29일 것 밖에 없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사버렸다. 오늘이 1월 26일인데 29일 표밖에 없다니 금방 있던 표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 갑자기 단체손님들이 왔나? 비행기표까지 샀으니 31일 새벽 1시 인천행 비행기는 일단 안심이다 그러니 그동안 묵을 숙소를 다시 구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귀양에 오래 있어야 하니 말이다. 드디어 시장 안에 보기 드문 깨끗한 숙소를 발견하고 이곳에 머물기로 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숙소가 시장에 있으니 온갖 먹을 것 넘쳐나고 밥도 먹고, 군고구마도 먹고, 오리고기며 빵이며 꽈배기까지 신나게 배를 채운 나는 따뜻한 방에서 목욕도 하고 온풍기까지 틀고 오랜만에 잘 수 있었다. 다음날 28일 아침 늦게 일어나 아무리 길이 얼어도 근교까지야 하며 리장고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느낌이 나는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장날까지 만나는 행운의 하루를 칭옌에서 보낼 수 있었다. 칭옌고성을 둘러보고 숙소로 오다가 근처의 터미널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그래서 근처 여행사에 들른 게 화근?이었다. 내가 29일 계림표 끊었는데 혹시 더 일찍 가는 비행기표 없냐? 고 묻자 대뜸 비행장이 폐쇄돼서 비행기 안 뜬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비행장이 폐쇄? 전쟁도 아니고 왜? 비행장이 얼어서 비행기가 못 떠서... 숙소로 돌아오며 일단 먹을 것을 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시장엔 아직 물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뉴스를 보니 전깃줄이 끊어지고 길이 차단되고 광주의 수많은 인구가 발이 묶이고... 아~ 그래서 명주빈관 주변과 기차역 근처는 전기불이 안 들어왔구나~그럼 큰 일이네... 앞으로 더 큰일이다.. 밤새 지도를 펼쳐놓고 귀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의 탈출을 고민했다. 귀국날짜가 촉박하니 비행장 있는 곳이 안전할 거야.. 그럼 쿤밍이나 충칭 성도까지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다. 버스도 기차도 없으니 말이다. 긴 밤이 지나고 다시 버스터미널 세 곳을 다 뒤지고 비행장 알아보고 기차역 알아보는 동안 저녁이 되었다. 결론은 모두 갈 수 없다 이다. 5시 5분쯤 기차역을 배회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씽이씽이 (興義)하면서 다니기에 얼른 쫓아갔다. 윈난 성 근처의 씽이 말이냐? 거기까지만 가면 윈난 성은커녕 계림도 갈 수 있는데.. 사설버스의 호객꾼이었다. 체육관터미널 뒤에 큰 관광버스가 있고 몇몇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내가 씽이를 다녀왔기에 물었다. 가는 길이 굉장히 험하고 더구나 얼었으면 굉장히 위험할 텐데 어떻게 너희들은 갈 수 있느냐? 고 했더니 갈 수 있단다. 내가 생각해도 갈 수 있는 정도의 길이라 생각했기에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비행기표 환불하고 숙소에서 짐 가져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6시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한다. 미끄러운 귀양시내가 어찌나 화가 나는지... 간신히 여행사에 환불하러 갔더니 이 아줌마 5시에 칼같이 퇴근해 버렸다. 아! 그 버스 타지 말라고 그러는가 보다.. 좋게 생각하고 애써 마음을 추슬러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이 또 지나고 드디어 29일. 오늘 8시 45분 계림행 비행기가 제대로 뜨는지, 비행장은 문 열었는지... 여행사 가서 물으니 모른다 이다. 오늘 밤 비행기가 뜨는지 안 뜨는지를 모르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조금 떨어진 민항표 파는 곳까지 갔다. 역시 지금으로선 모른다며 공항에 전화해 보란다. 전화하니 또 모른다이다. 오늘 날씨가 그나마 좀 좋아져서 12시가 넘어야 알 수 있단다. 난 일단 짐을 들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12시 이후에 비행기가 못 뜨면 한국여행사에 연락해서 인천행을 딜레이 시키겠다고 미리 연락해 놓고... 최악이다. 공항은 시장바닥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밤을 새운듯하고 그러다 보니 쓰레기며 짐이며 엉망이다.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노트를 꺼내 그동안 밀린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신나게 자고 있던 옆 좌석의 아가씨가 낯선 글자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그녀의 비행기티켓엔 두 개의 표가 더 붙어 있었고 27일부터 계속 비행기가 못 떠서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나보고 오늘 8시 45분 비행기도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후 6시쯤 되어 지난번에 만난 한국인 가족을 만나고 밀린 고생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꽃을 피우다가 8시 45분 계림행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전광판을 보게 되었다. 계림행 비행기는 다행히 2시간 정도 늦은 밤 10시경에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타자 너무 기뻐서 집에 연락도 하고 그동안의 고생이 마치 꿈만 같아 마음이 들떠있는데 비행기가 한참을 지체한다. 워낙 늦는 일에 익숙해져서 좀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오고 난 관비(關閉)라는 말만 알아들었는데 사람들이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옆사람에게 물으니 비행기가 못 뜬단다 비행장 얼어서.. 이젠 놀라는 일도 하도 많아서 일순 멍해진다. 항공사에서 다행히 시내에 있는 좋은 호텔에 투숙시켜 줬는데 여기 역시 온풍기도 전기요도 없어 밤새 추위에 떨며 지새웠다. 1월 30일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모닝콜을 해줘서 지하의 식당에 가니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먹어 본 지 오래라 너무 좋아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촛불을 켜고 배부르게 밥 먹을 때만 해도 걱정이 없었는데 우리 숙소는 20층의 6호와 7호 순간 미칠 뻔했다. 아침에 죽 먹고 20층까지 올라가짐 챙겨서 20층을 내려와야 한다니... 캄캄한 계단은 비상등도 없고 간신히 올라가 짐을 챙기다가 화가 나서 헐레벌떡 거리며 20층에서 바라본 귀양시내를 사진으로 남겼다.
귀양시내는 차가 안 다녀 한산하고 하늘은 우중충하고 난 귀양에 귀양 온 것 같아 너무 서글프다. 복무원이 서둘러서 황급히 20층을 내려갈 때의 심정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싶은 마음뿐. 다행히 우리를 바로 탑승수속시키더니 오전 11시쯤 비행기는 귀양을 이륙해서 40분 만에 계림 공항에 도착했다. 계림공항에 도착하자 무사히 탈출한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한국인 가족의 짐 하나가 분실되는 불상사가 또 발생했다. 내가 먼저 귀국하는 바람에 그 가족들이 무사히 짐을 다시 찾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끝까지 마무리를 못해준 게 많이 마음에 걸린다. 귀국날 계림에 도착한 나는 계림공항에서 또 2시간을 지체한 뒤인천행 동방항공에 몸을 싣게 되었는데 내 좌석번호가 1번 A. 처음 본 나의 1번 좌석표는 비즈니스석이었다. 우와! 이런 횡재가! 하는 것도 잠시, 비즈니스석을 즐기기는커녕 너무나 지친 몸은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집에 온 후 너무나 힘든 이번 중국여행을 통해 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중국이 그동안 성장의 가속화로 세계 여러 나라를 놀라게 하긴 했지만 재난이나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공무원이나 국가의 자세는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측 못한 기상이변이기는 하나 춘절과 겹쳐 수많은 인구가 길에서 떨며 고생을 하고 있는데 서로 혼선을 빚어 표를 팔고 차는 안 가고 안내도 없고 귀성객이나 국민을 위한 배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길이 언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한심한 삽하나 들고 나온 정부관리들 눈 치우는 모습 사진 찍기 바빴고(이런 걸 전시행정이라고 하나요?)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되는 보온병 두 개 놓고 혹은 그 많은 인구가 북적대는데 만두 한 상자 나눠주고 사진 찍고.. 참 한심했습니다. 아울러 지구의 기상 이변이 앞으로 계속될 텐데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지 한번 짚어봐야 할 듯합니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길이 두절되고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합니다. 중국을 한 10여 년 다녀보았지만 이번만큼 최악의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만난 소박하고 친절했던 평범한 중국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