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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가계 (張家界) 여행 04. 장가계없는 장가계?!

푸른연꽃은 2025. 6. 26. 16:38

오래전부터 미뤄왔던 장가계를 다녀왔다. 구름에 걸린 깎아지른듯한 동양화에 근접한 바위군과 영화 아바타를 배경으로 찍었다는 환상적인 기암들, 게다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중국여행지라는 것 등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패키지로 가다 보니 사실 준비가 소홀했다. 하는 수 없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했고 때론 질문도 하고 돌아와서 궁금한 것들을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은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내용은 나의 주관에 의한 것이라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1. 장가계 張家界 라는 명칭에서 보듯 장가계는 장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漢나라 고조 유방을 도운 장량이 유방을 피해 스승인 황석공을 찾아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장량은 원래 살고 있던 소수민족인 토가족에게 문자를 알려주고 문화를 일으켰으며 성씨가 없던 그들에게 장 씨 성을 남겨 장가계가 되었다고 한다.

 

2. 이곳 소수민족인 토가족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그들의 왕이었던 향왕으로 향왕은 그를 쫓아내려는 중앙군과 백번 싸워 모두 이겼다고 한다. 이에 지명으로 유래한 곳이 백장협이다.

 

3. 1979년 화가가(오관중이라고도 함) 장가계를 그려 홍콩 미술전에 출품하였는데 '상상화'로 상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작가가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의 그림은 상상화가 아니고 그림속의 절경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며 장가계로 초대하여 장가계가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4. 장가계에는 원가계, 양가계도 있다.

눈치챘겠지만 모두 성씨를 일컫는 말이며 우리식으로 하면 장씨 집성촌, 원 씨 집성촌, 양 씨 집성촌쯤 된다.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은 황석채이고 장량의 스승으로 알려진 황석공이 은거한 곳이라 한다. 초기에는 황석채를 중심으로 여행루트가 알려졌으나 이후 범위가 늘어나 그 주변 모두를 일컫는 말로 장가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장가계에 가서 도대체 장가계는 어디있냐고 묻는다면? 장가계는 없다. 설악산에 설악산은 없고 대청봉, 울산바위 등을 모두 포함한 명칭이 설악산인 것과 같은 이치다. 

 

5. 장가계와 장량, 황석공 (문화일보 박경일기자의 2024.6.20 기사에서 인용함)

장가계 곳곳에는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가져다가 덧댄 흔적이 있다.

부족한 역사와 인문을, 꾸민 이야기로나마 메꾸고자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장가계에 은거했던 이가,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 인물인 ‘장량(張良)’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다시 세운 개국공신이었지만,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돌연 물러나 은거했다. 천하를 통일하기까지 무수한 공을 세운 한신을, 반란죄로 몰아 비참하게 죽인 유방. 유방의 칼끝이 언제 자기로 향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책사 중의 책사였던 장량은 미련 없이 물러났다. 

이런 이야기 뒤끝에 뜬금없이 ‘그가 물러나 숨은 곳이 장가계’라는 근거 없어 보이는 스토리가 붙여졌다. 장량은 사당이 있는, 중국 섬서성(陝西省·산시성)의 자백산(紫栢山·쯔보산)에 은거하고 신선처럼 살며 말년을 보냈다는 게 정설.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았다는 자백산은, 장가계에서 북쪽으로 자그마치 1000㎞ 떨어진 곳에 있다. 

 

장가계에 덧붙여진 장량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황석채의 지명유래까지 이어진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장량에게 병법서를 건네줘 전략가로 거듭나게 한 ‘황석공(黃石公)’ 이야기가 나온다. 장량의 스승 격인 황석공이 여기 살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황석채’다.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장량의 경우처럼 황석공 얘기도 믿을 만한 건 아니다. 

무릉원구에는 황석채 말고도 두 곳의 명승, 원가계와 양가계가 있다. 장가계와 작명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 두 곳의 지명은 장가계의 명성에 힘입어 훗날 지어진 것이란 혐의가 짙다. 장가계와 마찬가지로 원가계는 ‘원(袁)씨 집안의 영토’를, 양가계는 ‘양(楊)씨 집안의 영토’를 뜻한다. 

원가계는 당나라 말 농민봉기인 ‘황소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뒤 원 씨 성을 가진 황소의 부하가 심산유곡을 찾아 숨어들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이름 붙여진 땅. 양가계의 지명유래는 이보다 더 흐릿하다.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 송나라를 지켰던 양 씨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작자 미상의 소설 속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에 기대 붙여진 지명이다. 

 

6. 장가계 여행은 크게 나누면 두 지역으로 나누어 할수 있다.

하나는 시내 중심에서 가까운 천문산이고, 다른 하나는 무릉원풍경구다. 무릉원풍경구는 장가계 시내에서 차로 3~40분쯤 거리인 도심 서북쪽에 있는데, 황석채(黃石寨·황쉬자이), 원가계, 양가계 등이 모두 여기에 있다.  천문산은 이름처럼 ‘하늘(天)’에 ‘문(門)’이 있는 산이다.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해발 1528m의 산정 아래 난데없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구멍이 만들어진 건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때 천둥 번개가 치는 가운데 바위 절벽이 무너지면서 산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는 기이한 일이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천문산은 무릉원구의 다른 풍경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릉원구의 원가계나 양가계 경관이 기이하고 화려하다면, 천문산은 선이 굵고 웅장한 느낌이다. 그래서 혹자는 장가계는 여자산, 천문산은 남자산이라 한다.

 

 

 

 

7. 장량포진

황석채에 가면 장량포진이라 새긴 기념석이 있다. 유방이 장량을 죽이려 군사를 동원하여 이곳에 왔을때 산정에 있는 장량을 포위하여 굶겨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유방의 부하들에게 감자를 나눠주며 버텨 살아남았다는 유래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