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겨울이면 산정호수에 갔다.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그 시절, 하얀 피겨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를 보거나 오색으로 색칠한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을 보거나 멋진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넓은 산정 호수의 빙판을 누비는 것을 보면 살을 에는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땐 온몸이 꽁꽁 얼고 코와 눈썹에도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춥고 다리가 아팠다. 지금은 아름다운 그 추억들이 새삼 그립다.

 

 

빙점하가 되면 물결은 백색 얼음 밑에 가둬진다. 어느 순간에도 흔들렸기 때문에 물의 결이나 동심원이 그대로 비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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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강도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소리를 얼려두나 보다. 어느 때 산과 땅을 울리도록 그리운 소리가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며, 얼음 모자를 쓰고 있는지도  -시와 산책 中-

 

 

 

 

1월의 맹추위가 지나고 2월이 다가오면 호수에선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렸다. 어른들은 호수 깊은 곳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라고 했다. 그 소리는 천지가 개벽할 만큼 크고 굉장했다. 한 계절이 닫히려면 얼음도 기지개를 켜야 했나 보다. 그럴 때면 호수 가운데까지 걸어가는 일이 무서웠다. 조금씩 조금씩 발을 옮겨보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친구들은 재빨리 기슭으로 뛰어오곤 했다.

 

가끔씩 동네 남자아이들은 그 얼음의 두께와 단단함을 확인하려는 듯 돌덩이를 던지곤 했다. 웬만한 큰 돌멩이를 던져봐야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언 호수는 그와는 정 반대의 순간에 갑자기 굉음을 내어 아이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2월이 되어 호수 표면이 푸석푸석해지면 어른들은 호수 근처에도 못가게 했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얼음 출입은 금지되고 겨울은 온전히 겨울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더구나 추운것을 싫어하는 나의 마음으로 보면 겨울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계절이고 움츠리는 계절이고 추워서 더 서러운 계절이다. 그러나 겨울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지금도 견고한 얼음 속에서 자신의 계절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겨울의 시간을 다해야  봄은 오고 얼음은 풀리며 우리는 따뜻함에 감사할 것이다. 겨울의 지순한 시간을 까마득히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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