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길에서우연히 만난다면 -이지상 지음

 

나의 꿈은 늘 여행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해졌다. 그렇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여행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고, 원 없이 돈 많이 벌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것은 더욱 아니며, 자식을 낳아 가문의 번성을 원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나는 만 년 혹은 100만 년, 혹은 1000만 년, 1억년, 10억 년 후에 인간은 사라질 것이라 믿고 있다. 한때 번성하던 공룡이 그러했듯이 결국 모든 게 살아생전의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큰 꿈은 사소해졌고 분화되었다. 잘게 조각난 미세한 분말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굳이 나열한다면 이렇다.

 

매일 꽃이나 나무 한 그루 심기, 날씨 좋은 날 강변에서 자전거 타기,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걷기, 대학 캠퍼스 벤치에 누워 햇빛 쬐기, 가끔 점심으로 베이글에 카푸치노 마시며 하굣길의 초등학생들 바라보기, 방에서 뒹굴거리며 멜랑콜리한 음악 듣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사람 안 만나고 고독하게 지내기, 고독에 지쳤을 때 불러낼 친구 두세 사람 만들기, 하루 종일 굶으며 허기 맛보기, 길을 걷다가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문득 떠나고 싶으면 아무 준비 없이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 타기, 갑자기 달라진 낯선 시공 속에서 방랑하기, 외국의 어느 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 우연히 마주친 콘서트 장에서 낯선 음악에 빠지기,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들과 눈 마주치기, 그 눈빛에 감전되어 가슴 설레며 이런저런 상상하기.

 

전 세계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는 것,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 소수민족 언어 공부하는 것, 며칠동안 잠 안 자고 글 쓰는 것,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그 불가능성 앞에서 쓸쓸하게 아내와 소주잔 기울이는 것, 매일 매일 일거리 끊이지 않아 행복하게 글 쓰는 것, 우연히 좋은 사진 찍는 것, 그 사진을 꽤 괜찮은 돈 받고 파는 것, 작은 빵집을 내고 아침마다 맛있는 빵 구워내는 것, 로또 2등 당첨되는 것, 친구들에게 가끔 술과 밥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늘 버는 것, 죽 한 그릇 먹으면서도 감사하는 것, 때때로 좋은 식당에서 폼 나게 먹는 것, 늙어서 나무처럼 햇빛만 쬐어도 행복한 것, 아침에 해 뜨면 벌떡 일어나 하루 종일 걷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 통나무 쓰러지듯 자는 것,

 

언젠가 아내와 함께 5년이고 10년이고 세상 유랑하는 것, 죽기 전까지도 매일 걸을 수 있는 것, 화장한 내 몸의 뼛가루가 하늘 높이 날아가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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