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악도 섬티아고 분식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섬티아고 순례길에서

난생처음 전기자전거를 타고

마치 하늘을 난 것 같은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았다.

 

덕분에 12개의 예배당을 계획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소악도 선착장에 몇 안 되는 가게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투어 중간에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먹었던 터라

그다지 허기지진 않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식사던 커피던 그것을 핑계로 핸드폰 충전을 해야 했다.

 

첫 집은 무인 판매 찻집이라 패스,

두 번째 집은 주인이 없어 패스......

설마 평일이라 장사를 안 하나? 불안해진다.

 

배에 오르기 전부터

배터리 충전 눈금이 한 칸 남아서

투어 내내 사진도 마음껏 못 찍고 마음 졸였었다.

 

여행 중 핸드폰 때문에 이렇게 애타 보기는 처음이다.

 

어젯밤 숙소의 인터넷과 충전기가 좀 못 미더웠는데

결국 오늘 이런 불상사가 생긴 거다.

아침에 난생처음 자전거 순례를 준비하느라 짐을 많이 줄여야 해서

늘 지니던 카메라도 일부러 안 챙겼다.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투어는 이미 끝났기에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공연히 바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뜨거운 태양에 쫓겨 다시 다음 분식집으로 향했다.

 

함께 승선했던 사람들 몇이 야외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기에 

나도 실내로 들어가 잔치국수를 시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주인은 냉장고 옆을 보라고 했는데

이건 삼성폰 연결잭이라 불가능,

다시 여쭤보니 국수 삶느라 바쁘신 가운데

다른 것은 없다고 하신다.

 

그럴 거 같더라니..  체념하고 심드렁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옆집에 가면 젊은 애기 엄마가 있는데

그 사람은 젊은이니까 아이폰 잭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신다.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핸드폰이 없으니 이 더운 날 밖엘 다닐 수도 없고,

자전거를 타서 몸도 지친 상태였고,

딱히 3시간여를 기다릴만한 놀이도 없기에,

마실가듯 옆집으로 갔다.

 

다행히 애기 엄마는 '저한테 있어요' 하며 고맙게도 빌려 주신다.

*참 살만한 세상이다.

 

분식집에 돌아와 내가 충전 문제가 해결되어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은 거 보란 듯 웃는다.

 

주인은 이내 잔치국수를 말아 내었는데 깍두기와 김치가 직접 담근 것으로 보였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난 간식을 먹어 배가 안고픈 상태라

자릿값과 핸드폰 충전 값으로 국수를 시킨 거다.

 

국수가 너무 많아 보여 다른 그릇에 덜어 놓고

한 젓가락 맛을 보았는데 어? 하고 내심 놀랐다.

이 외딴섬 허름하고 좁은 분식집 잔치국수가

너무 맛있었던 거다.

 

내 입맛으로 평하자면 나만큼 맛있게 했다. ^^

일단 짜지도 않고,

육수가 진하지도 않았다.

 

주인에게 국수가 너무 맛있다고 진심을 담아 말하고

비법을 물었다.

 

난 그냥 맛있다는 표현을 그리한 건데

주인은 또 적당히 말해 주신다.

본인이 국물이 맑은 걸 좋아하신다고.

 

이리하여

나랑 음식이 너무 잘 맞아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한 주인과의 대화는

결론만 말하자면 2시간을 훌쩍 넘겨

결국 배 타기 전에 억지로 끝났다.

 

2시간 남짓 이야기를 들으며 파악한 주인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주인의 성명은 '장명순'氏

올해 7학년이고(이건 비밀로 해야 하나?)

 

소악도 민박집을 겸하고 있고,

소악도 부녀회장을 하셨고,

 

섬티아고가 탄생하기까지의 위원회 일과,

예배당을 만들기 위해 섬을 찾은

내 외국 건축가들의 밥과 잠자리를 해결해 준 분으로 

섬티아고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함께 한

섬티아고의 산 증인,

이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신 분이다.

 

'가고 싶은 섬 만들기 프로젝트' 공모에서부터 시작하여 

정말 많은 이들이 오는 섬이 된 지금까지

어려웠던 일과 속상했던 일.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더 나아가 이 섬의 미래와 마을 공동체의 이익분배에까지

많은 고민과 계획도 갖고 있었다.

 

이 작은 섬, 좁은 분식집에서

나는 장명순 씨와 같은 분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암튼 그녀와의 긴 이야기의 주제가

그녀의 일생과 결혼에서부터 시작해서

소악도 섬티아고 탄생과 운영 관련 이야기에서

다시 분식집 음식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아직 이 분식집은 이름이 없다고.

 

그녀가 생각해 두었던 상호가 있었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미 장명순이란 인물에 푹 빠져버려서

이 분식집 이름엔

'장명순'이란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소악도 섬티아고와 그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소악도에 분식집이 생긴다면 당연히 그녀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그녀는 아주 멋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했다.

'' 장명순 맛집'' 어때요?

이유는 장명순 씨가 본인은 꼭 분식집만 할 거라고 해서다.

밥 종류는 안 하신다고..

 

그리고 또 하나 제안했다

" 소악도 맛나(만나)"는 어떠냐고?

만나는 '맛나다'는 뜻도 되고- 음식점이니까

또, '만나'라는 구약에 나오는 생명의 양식이 된 이름이 되기도 하고-여긴 순례길이니까

또,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만난다'는 뜻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상호일수록 부르기 쉽고 단순해야 좋다고

마치 나의 분식집 상호 인양 열변을 토했다.

 

그녀는 매우 만족해하고 즐거워했다.

 

배 시간이 되어 내가 떠날 준비를 하자 그녀는 여기가 가장 좋은 자리라며

내 독사진을 찍어 주고,

자신의 민박집을 보여 주고,

가장 좋은 10월에 놀러 오라는 당부를 했다.

 

나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랜 후,

그녀가 동생과의 통화에서

'나 가게 이름 좋은 거 생겼어'라고

유쾌하게 대화하는 소리를

파도소리와 함께 들으며

목포행 배에 올랐다.

 

과연 그녀는 어떤 이름의 분식집을 갖게 될까?

 

그것이 궁금해서 

나는 10월 어느 날,

다시

소악도행 배를 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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