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1937년생이다.
전쟁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전쟁 후 피란 갔다 돌아와 엄마마저 돌아가셨다고 했다.
국민학교만 다니고 부모가 없는 이유로 학업을 잇지 못했다.
처녀 때 선교사가 미국으로 가자고 권유했지만
그마저 언니 오빠들의 반대로 못 갔다고 했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열정은 차고 넘친다.
노인대학에서는 완전 모범생이다.
언젠가 공책을 보니
내가 놀랄 만큼 강의 내용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노인대학 교장선생님께서는
엄마 공책을 보고
강사들의 강의 내용을 짐작도 하고
평가할 때 참고하신다고 한다.
언젠가는 엄마가 한자를 잘 모른다고 답답해하시기에
한자 쓰기 교본 5권 정도를 드렸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끝까지 잘 쓰셨다.
그 덕분인지
이젠 제법 글씨가 멋지다.
엄마는 노인대학에서 반장을 몇 년간 하셨는데
난 엄마가 반장이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못 배운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름을 알기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드렸다.
암튼 한자 쓰기를 꾸준히 하시던 엄마가
지난해부터 오카리나에 빠지더니
이젠 '내 나이가 어째서'등을 아주 잘 부신다.
가끔 집에 가면
새로 취입한 신곡을 꼭 들려주신다.
이제 잘 불지? 하며 은근 칭찬을 기대하시며 말이다.
그런 엄마가 요새는 그림도 그린다고 하신다.
백내장 수술 후라 눈이 안 좋아서 잘 못 그린다고 하시지만
또 열심히 그릴 것이란 걸 난 잘 안다.
그래서,
얼마 전 엄마 집에 갈 때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가지고 갔다.
노인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리고 싶어 하셔서다.
역시나,
엄마는 너무나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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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림은 노인대학에서 그린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집에서 다시 보고 그린 것이다.
색감이 좀 더 풍부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꿈 하나가
엄마에겐 남아 있다.
피아노 치는 꿈.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을 치는 걸 보고 그렇게 부러웠다고 하시며
꼭 배우고 싶다 고 하신다.
요번 생일엔
모범생 엄마를 위해
디지털키보드를 사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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