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는 마리아자매님이 기르는 진돗개다. 둘이 남매인데 정식 이름은 '평이와 창이'이다. 평이가 암놈이고 창이는 수놈이다. 지난여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평창이가 너무 커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큰 개는 좀 무섭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9일 요가샘과 함께 '외국인을 위한 우리 차 시음과 부침개 만들기' 행사를 도와주고 마리아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장작을 피우고 있어 실내가 아늑하다. 나무 타는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평화롭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자매님 말로는 올 겨울 유난히 추운 평창의 겨울 때문에 처음으로 평창이와 함께 실내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개던 고양이던 동물과 한 공간에 있어본 적이 없어 내심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평창이는 어찌나 점잖은지 짖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서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대부분 졸고 있다.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어 간식을 주며 쓰다듬어 주니 그때부터 내 곁을 지키고 앉아 내내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다음날 오전, 밤새 대소변을 참은 평창이를 위해 산책을 나갔다. 실내배변을 안 하는 진돗개 평창이는 힘이 좋아한 마리씩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나가서 5분 정도 되니 대소변을 본다. 기특한 녀석들. 배변만 시키고 얼른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아래쪽 길을 바라보며 무언의 시위를 한다. 무시하고 너무 추워서 집으로 데려왔다.
오후에 요가샘집에 함께 가려 평창이 목줄을 매다가 그만 평이가 탈출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평이는 한번 도망가면 잘 안 잡혀서 몇 번이나 자매님 애를 태웠는데 오늘도 역시나 약 올리듯 일정거리를 지키곤 가까이 오지 않는다. 하긴 잡히면 묶일 텐데 쉽게 오겠는가? 때는 이때다하고 평이는 온 산천을 질주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할 수 없이 이동하니 웬걸 또 차를 따라오긴 한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자매님은 목줄이 풀린 평이가 다른 집 개나 가축을 해칠까 노심초사다. 게다가 차로 한가운데를 질주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차를 따라오기는 한다는 것.
중간에 평이가 잠깐 안 보였는데 오는 도중에 내가 마당에 토끼 기르는 집이 생각나 혹시나 하고 뛰어가보니 역시나 평이가 그 집 앞뒤를 뛰어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 마당에 토끼는 없었는데 그 서슬에 놀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위로 피신을 하고 그 밑에선 평이가 고양이를 쥐 잡듯 몰아대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무 위에서 연신 비명을 지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내가 평이를 쫓자 그 틈을 타 쏜살같이 도망쳤다.
한참 후 요가샘 집에 도착했는데 놀라운 일은 평이가 며칠 전 요가샘네 복실이를 물어서 복실이가 병원에 실려갔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나는 요가샘집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복실에게 달려갔는데 역시나 평이가 복실이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묶여 있던 복실이는 또 평이가 나타나자 죽을 듯이 짖어대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많은 회유 끝에 평이의 탈출사건은 막을 내렸고 나란히 목줄을 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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