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2002년. 7월.

 

사진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사진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수동카메라 fm2를 권유하셨고

나는 그해 5월 중고로 fm2와 105mm 2.8 렌즈를 구입했다.

간신히 초점 연습을 한 후 7월, 티베트로 떠났다.

 

그 당시 티베트는 중국에서 허가서를 받아야 갈 수 있었다.

북경에 도착 후 중국여행사를 통해 여행허가서를 받고 

티베트행 비행기를 타고 라싸에 내려 주의사항에 적힌 대로

목욕도 안 하고 세수만 겨우 한 채 이틀을 보냈다.

 

다이아막스가 고산증 약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물론 잘못된 정보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고

나는 고산증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도미토리 방엔 나처럼 누워서 쩔쩔매고 헤매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다.

남쵸에 갔을 땐 더욱 심해서 타이레놀을 먹고도  밤새 두통에 시달렸다.

 

돌아오는 길에 담숭에서 우연히 말축제를 보고서야

겨우 좋아졌다.

 

라싸에는 장한종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유일한 한국식당이 있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분이 끓여주는 야크 소고깃국이 없었다면

나는 여행을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티베트에서 꼭 보고 싶었던 조장을

인제대학교 의대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지프를 타고 가서 보았다.

조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학생 중 한 명이 식당에서 티베트 개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생겼다.

광견병예방접종을 안 했을 것 같아 결국 그들은 여행을 그만두고

북경으로 가서 진료를 받았고,

별일 없던 걸로 기억한다.

 

고산증 때문에 너무 힘들어 탈진상태가 되었을 때

우연히 초원에서 만난 순례자가족이 내게 수유차를 건넸다.

아! 아직도 나는 그 맛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수유차는 내게 생명수가 되어 피로와 고산증에서 회복되었으며

그 힘으로 나는 남은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티베트여행을 갔다 오니 주변에서 어떻게 갔느냐? 치안은 어떠냐?

고산증은 또 어떻게 치료했냐? 질문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티베트인들의 아픔을 목격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친절에 감사하기도 했다.

 

남겨진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어 기억의 한계를 도우려 하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전해진 그들의 따뜻함과 신실함,

그리고 나라를 잃은 울분은 사진으로 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아픔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티베트에 평화가 함께하길 기원해 본다.

 

영상은 유튜브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4vyjGDVw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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