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나는 전문청소업체에게 입주청소를 맡겼다. 그런데 청소하는 이모님이 베란다 화단뚜껑을 열자 새집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를 호출했다. 설마? 하고 달려가 보니 정말 풀로 엮은 새집과 함께 새털이 가득했고 새똥까지 가득했다. 청소이모님들은 구시렁구시렁하며 별일이 다 있다고 혀를 차셨지만 결국 말끔하게 청소해 주시고 베란다 밖으로 난 물구멍도 잘 막아놓고 내게 이젠 별일 없을 거라고 안심시키셨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며칠 전, 드디어 날씨가 풀리고 볕이 따뜻해지자 나는 겨우내 미룬 커튼과 이불을 빨고 급기야 베란다 물청소와 화분정리까지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작년의 새집사건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화단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나! 구멍을 막았던 것은 떨어져 있고 화단 안엔 새똥이 또 가득했다.
아니 또? 한순간 기가 막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새똥을 치워야 할 것 같아 물을 뿌려 똥을 좀 불리고 틈틈이 또 뚫어놓은 저 구멍을 뭐로 막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튼 마스크를 쓰고 냄새나는 새똥을 치우자니 도대체 어떤 새가 들어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 왜냐하면 우리 아파트 베란다 앞은 나무가 많아 온갖 새가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화분에 있던 작은 돌 두 개를 이용해 구멍을 막아보았다. 돌은 적당한 크기라 구멍을 잘 막아줬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하고 청소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베란다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라 무심히 보다가 어제 일도 있고 워낙 새소리가 가깝게 들리고 날아다니는 그림자가 너무 가까워 보여 혹시? 하고 벌떡 일어나 살며시 내다보니 아이고~~! 진짜 새 두 마리가 들어와서는 나가질 못해 난리를 치고 있는 거다. 생각해 보니 어제 새똥을 치우고 구멍을 조약돌로 막고 냄새나가라고 뚜껑은 열어두었는데 그럼 구멍으로 다시 들어왔나? 돌은 어디 갔지? 저 작은 새가 돌을 어떻게 치웠담?
살펴보니 역시나 어제 막았던 돌멩이 두 개는 흔적도 없고 새 두 마리가 제집인 듯 또 들어왔다. 그리곤 이제 나 가지 못해 날아다니며 똥을 싸고 난리를 피고 있는 중인 거다. 내가 베란다에 접근하려니 더 난리를 치는 녀석들, 어휴~ 얘들아, 내가 더 무섭단 말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정신없이 날면!!! 아무튼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들어와서 살펴보니 한놈은 벌써 나갔는데 나머지 한놈은 아직도 못 나가고 저러고 있다.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조용히 있었더니 결국 나머지 한놈도 창을 찾아 밖으로 날아갔고 나는 그제야 다시 베란다에 나가 똥을 치우며 저놈들이 제집처럼 또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궁리해도 결국 마땅한 재료가 없어 일단 플라스틱 통을 천으로 감싸 구멍에 단단히 넣었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을 텐데 또 여기가 제집인양 들어오면 그땐 어떡하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집에 이사오기 전부터 이 녀석들이 먼저 살고 있었으니 새들이 먼저 입주했는데 내가 쫓아낸 거고 새들은 무일푼으로 방 뺏긴 거네? 아이고 참, 세상에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크다는데 내가 새집을 뺏고 출입도 막은 셈이 된 건가?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난 새들과 공생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그저 기록으로 남겨 미안함을 조금 달래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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