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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오래 쓴 물건 - 2. 김치냉장고 딤채

by 푸른연꽃은 2025. 3. 19.

 

우리나라 식생활에서 가장 필요하고 그런 식생활을 잘 반영한 최고의 작품, 김치냉장고. 나에게도 김치냉장고의 대명사 딤채가 있다. 나의 딤채는 딱 한번, 3년 전 소음이 좀 신경 쓰여서 AS를 신청했었는데 기사님은 내가 냉장고관리를 너무 잘해서 몇 년은 더 쓸 수 있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냉장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냉장고는 언제나 여름용이고 최소한의 시간만 이용한다.) 더불어 이 딤채모델이 화재가 나는 오래전 모델이니 웬만하면 바꾸라는 조언도 함께 하셨다. 불이 나는 모델이긴 한데 불이 나는 이유 중 하나는 한 곳에 오래 두고 쓰다 보면 전선에 먼지가 쌓이고 거기서 발열이 더해져 불이 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러고도 3년을 더 쓰고 나서야  이제 불나기 전에 미리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의 김치냉장고를 살펴보았다. 

 

무려 2004년에 만든 이 딤채는 그러니까 올해 24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위험만 없다면 아직 더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고장도 없고 튼튼하다. 하지만 뉴스에 가끔씩 등장하는 불났다는 딤채 모델이 이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조된 거라 이번 기회에 폐기처분하고자 마음먹었다. 

 

돌아보니 나는 이 딤채냉장고로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보관했었다. 오랜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텃밭에서 땀 흘려 가꾸신 고추며 고구마 등등과 그것으로 가을이면 담가주신 엄마표 김장김치가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중국 오지에서 사 온 동충하초나 귀한 버섯들, 또는 사천성에서 사 온 호두와 백두산에서 사 온 잣도 저장해 두었다. 가끔 강원도 비탈에서 주어 온 배추도 보관했고 겨울이면 밤을 사다가 보관하기도 했으며 명절엔 부침개며 각종 건조생선도 보관했었다. 한 여름엔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와 감자, 고추장이며 된장, 심지어 매실청과 각종 장아찌도 보관했었다. 요즘 들어 어마어마하게 큰 대용량의 김치냉장고가 유행이지만 이 185L 용량의 딤채는 나에게 부족함이 없었고 오히려 조금씩 여유가 있었다.

 

이렇게 별로 탓할 게 없는 딤채는 24년간 고장 한번 없었고 지난 AS신청도 너무 오래돼서 점검차 신청했던 것이었다. 고장 나지도 않은 냉장고를 바꾸려니 좀 그렇긴 하지만 24년이란 세월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갑자기 고장 나 낭패를 보는 것보단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어 마침 이마트 상품권이 있기에 이를 이용해 새로 김치냉장고를 장만하기로 했다. 물론 너무 다양하고 멋진 모델이 많아 갈등이 생겼지만 나의 식생활과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감안해서 다시 뚜껑형 김치냉장고를 구매했다. 이번엔 엘지에서 만든 것으로 샀고 다행히 폐가전은 수거해 주셔서 나의 딤채와도 작별을 고하게 되어 여기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