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 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잎새가 한층 달빛에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세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실히 안 들렸으나....... 

 

<이하 중략>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가볍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었다.

 

 

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1936년 조광(朝光)지 제12호에 발표된 한국 현대 단편소설이다. 떠돌이 장돌뱅이의 삶의 애환 속에 펼쳐지는 인간 본연의 근원적인 애정이

굵은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하얀 메밀밭의 서정과 함께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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