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이유
나무가 먼저일까?
사원이 먼저일까?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
앙코르왓의 일출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으로
2000년 1월 13일 목
캄보디아에 가는 날이다.
만남의 광장에 잠시 들렀더니 캄보디아에서 지구촌글로벌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권국진씨가 왔다고 한다.
다시 캄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함께 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운이 좋다는 말과 함께 아침에 북부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의 택시는 방콕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빨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아침까지 먹을 수 있었다.
바나나잎에 싼 밥이었는데 밥에 설탕을 잔뜩 넣어서 오히려 먹기 힘들었다.
캄보디아의 지구촌글로벌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인 권국진씨를 터미널에서 만나
1층 30번 창구에서 태국의 국경도시 아란야프라켓행 버스표를 사고 5시간 정도가 지난 12시쯤에 그곳에 도착했다.
아란야프라켓에서 태국 국경까지는 툭툭으로, 국경에 도착해서 캄으로 가는 출국수속 ,다리 하나 사이에 있는 캄으로 가서 다시 캄으로의 입국수속을 하는 동안, 처음 당하는 살인적인 더위와 거리의 먼지, 동물과 사람이 뒤범벅된 혼잡함, 수속을 대행해준다는 이들의 성가심까지 합세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캄과 태국은 나뉘어있다.
캄으로 입국하자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난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름한 옷차림, 태국처럼 차가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차며 오토바이, 자전거까지 혼재되어 태국보다 훨씬 낙후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력이 삶의 질이 아닐진대 나는 너무나 쉽게 내 식으로 캄의 첫 인상을 느낀다.
흙먼지와 더위 속에 우리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권국진씨는 픽업을 흥정하여 픽업안에 우리 5명이 타고 짐칸에 권국진씨와 캄사람들 몇몇이 탔다. 드디어 출발! 권씨는 자신의 짐과 우리의 배낭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나중에 말하길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나 막 가져간다고 한다.
가는 길에 보니 드넓은 들판이 추수를 끝낸 채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믄 지평선이다. 이곳을 보니 우리나라가 산이 70%나 된다는 지리적 특성이 객관적으로 이해가 간다. 드믄 드믄 대나무로 지은 시원한 집들이 보이고 도로를 함께 달리는 닭이며 소 돼지들이 보인다. 우리가 탄 픽업은 안쪽에 에어컨이 나와서 참 다행이었다.
5명이 앉기엔 너무 비좁아서 엉덩이가 아팠지만 그동안 들은 장난이 아니라는 길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에 견딜 만 했다.
우리는 시소폰까지 가서 다시 포이펫으로 가는 차를 갈아탔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낡은 일제 도요다 픽업은 성능이 좋은 지 에어컨이 아주 잘 나와서 좋았다.
밖의 짐칸에 있는 권씨가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중간에 잠시 쉬는 사이 대나무 통 속에 든 찰밥 즉 대나무밥을 사먹었는데 팥까지 섞이고 간도 되어서 맛이 좋았다.
파인애플로 목도 축이고 람부탄과 한비야가 극찬한 트루판 포도까지 사서 준비한 우리는 마치 소풍온 것 처럼 즐거웠다.
운전사는 끊임없이 캄보디아 노래를 틀어대는데 그 노래의 이국적 느낌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노래의 대부분 감상적인 나레이션이 곁들여 있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드디어 우리가 우려했던 길로 우리는 들어섰고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길을 운전사는 정말 잘도 간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길 아닌 길이 우리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고 중간 중간 나오는 길보다 더 끔찍한 캄보디아의 다리는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위험천만한 그 길을 통과할때마다 우리는 운전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어서 아저씨는 신이 났는지 감격했는지 더욱 더 노련한 솜씨로 운전을 했다. 잊을 수 없는 길이다.
다리라고 할 수 없는 그 다리엔 무사히 다리를 건네게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돈을 받기 위해 일부러 다리를 망가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길에 지쳤을 때 우리는 캄보디아의 시엠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칸에 탄 사람들은 끔찍한 흙먼지를 몽땅 뒤집어써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몰골이다.
티브에 나오는 캄이며 라오스 등의 사람들이 트럭 뒤에서 눈만 내놓고 두건을 둘러써서 그들이 모두 무장 게릴라인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들은 단지 험한 날씨와 도로사정 때문에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어째든 우리는 시엠립에 저녁 9시가 되서 도착했고 권국진씨가 운영하는 시내의 게스트에 묵기로 했다.
그 집은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고 그 옆에 식당을 짓느라 좀 산만했다.
글로벌엔 방도 없어서 옥상의 도미토리에서 자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시원하고 좋았다.
짐을 풀고 씻고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나는 여의치않은 욕실사정 때문에 제일 늦게야 씻을 수 있었다.
하루종일 차를 타고 하루나 걸려서 드디어 캄에 왔다는 기쁨도 잠시,
겨우 몸을 씻고 12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했다. 너무 힘든 하루였다.
바로 옆에서 우는 닭은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옆집의 스피커는 어쩌자고 그렇게 크게 틀어대는지 캄의 첫밤은 정말 끔찍하기만 했다.
1월 14일
잠을 잤지만 아직도 어제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도록 닭은 울어대고 그 소리는 합창이 되어 이집 저집의 닭이 울어댄다.
스피커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들리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본다.
장관이다.
야자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무척 정열적이다.
해를 보자 오늘의 더위가 겁난다.
어제 예약을 못해서 9시가 되서야 주인의 안내로 봉고가 왔다. 아주 귀엽고 착해보이는 25살의 비엥이라는 운전사가 딸렸다.
그 차로 3일간의 앙코르 일정을 갖게 된다.
오늘은 그 첫 날로 앙코르 톰을 보러갔다. 앙코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어떤곳일까? 사진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일까? 가는 길은 꽤 한적해 보이지만 벌써 꽁무니에 관광객을 태운 오토바이의 질주에서 해가 높이 떠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무그늘이 많이 우거지고 길도 넓다. 앙코르의 첫인상은 탄성이다.
뜨거운 태양 속에 처음 대하는 사원의 위용은 탄성을 지를만큼 신기했다.
이럴수가... 이게 정말 인간이 만든 작품일까? 바이욘사원의 얼굴도 그러려니와 사원안에서 만난 학승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앙코르에 어린 학승이 아직도 살고 있다니. 그 긴 시간의 공백을 그 어린 학승은 알고 있는걸까?
만화책과 전자오락과 여자친구를 좋아 할 그 나이의 학승에게 세월의 무게와 인간과 신의 문제는 너무 벅찬 화두일텐데...
앙코르는 일본정부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보수중이다. 게중에는 이미 색깔이 확연하게 바뀐 보수를 끝낸 곳도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석굴암을 해체하고 보수공사해서 아직도 그 피해로 인해 결로현상과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데 세계의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이 앙코르를 또 보수한단다.
사진기는 쉴틈이 없다.
이럴 때 내가 화가 였다면 그릴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보는 일 뿐이다.
멤버들과 떨어져서 돌아다니다가 일꾼들이 점심식사 하는 곳을 들렀다. 안면 몰수하고 사진찍고 그들의 밥을 나누어 먹었다.
밥과 반찬으로는 생선튀김 한 가지 뿐이다.
보기보다 너무 맛있는 생선 때문에 그들의 식사를 내 마음대로 맛없을 거라 지레 판단한 나를 반성한다.
그들의 먹을것이 불결할거라 생각한 나의 불결을 반성한다.
호수에 숟가락을 씻어 권하는 그들의 친절에 나는 내 친절의 부족함을 반성한다.
앙코르의 거대함보다 나를 감동시킨 작은 친절은 내내 캄보디아를 가깝게 느끼게 한다.
밥그릇은 내전의 상징인 함바, 그 함바는 끄을름으로 밑이 시꺼멓고 때로 찌들어 있었지만
앙코르왓 군데군데 슬프게 앉아있던 발목부상자들,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불구가 된 지뢰피해자들과 함께 여행 내내
나를 슬프게 했다.
인간은 신을 위해서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을 지으면서
서로를 죽이는 일에는 이렇게도 가혹한걸까?
신과 인간의 문제보다
인간과 인간의 문제는 여행내내 나의 화두가 되었다.
유적지는 너무 장엄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날이 더워서 11시까지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2시30분에 다시 출발해서 이번엔 사원의 일부인 프레야칸에 갔다.
그곳 역시 크메르인의 건축술이 훌륭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가이드는 오는 길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품점을 들렀다.
너무 비싸고 살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이곳도 화교가 상원을 장악하고 있나보다.
1월 15일
아침 7시 30분 기상.
오늘은 나의 적극적인 의견을 받아들여 톤레샵 호수를 다녀오는 일정이다.
아침 7시 30분 톤레샵 호수 일정이다. 팜플렛에서 보았던 호수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지 많은 기대가 된다.
가는 길에 낮은 산(나는 그 산을 태산이라 불렀다) 에 올라 강과 수상가옥과 넓은 들이 한꺼번에 보이는 장관을 감상했다.
톤레삽에 도착하니 우리일행이 좀 빨랐는지 조용했다.
한사람 당 1달러에 배 하나를 빌려서 호수로 나갔다.
바다와 같은 호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호수는 너무나 잔잔했고 깊었으며 편안했다.
노를 젓는 순박한 청년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 지 호수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는
발동기의 시동을 끄는 친절함까지 베풀었다.
모든 인위의 소음이 멈추고 뱃전에 물 부딪치는 소리와 호수의 간지러움이 우리를 나른하게 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멀리 보이는 숲과 고깃배들의 귀향이 아름다운 이 톤레샵 호수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월 16일 일요일
주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피곤 때문에 정신이 없는 가운데 주모경을 바친다.
어느틈에 하은이 생각이 난다. 열은 내렸는지.. 멀리 있어 전화도 못하고 소식을 전할 수도 없다
오늘은 일출을 보기로 한 날이다.
5시에 기상하기로 했는데 4시 40분이 되자 옆집에서 캄보디아 음악을 크게 확성기로 틀어 놓더니 개까지 끊임없이 짖어댄다.
닭은 여기에 질세라 온동네 닭이 모두 꼬끼요하며 저마다의 톤으로 울어재낀다.
이곳의 닭은 정말 심한 소음공해다.
이곳의 아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겐 온갖 짐승과 확성기의 소리에서 시작되는 아침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일어났고 앙코르 왓으로 향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는데 가는 길은 이미 오토바이며 자동차의 물결로 가득하다.
매일 뜨는 해를 앙코르에서 맞는다는 일이 무에 그리 다를까만 모두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안고 질주한다.
앙코르에 도착하니 이미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모두들 사원의 5개 탑을 노려보며 조용히 서 있거나 아님 쭈그리고 앉아있다.
해자의 빛이 시간마다 다르게 비춘다.
어둠에 가려있던 침묵의 사원도 깨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장엄한 일출은 끝내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앙코르의 내부로 발길을 돌렸다.
매일 뜨는 해이기에 아무때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 보다.
우리도 우리마음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듯이 ...
하지만 다 보지 못했다고 억울한 마음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태양이 늘 거기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면에서는 3개지만 실은 5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앙코르 왓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계단 폭이 너무 좁아서 다리가 덜덜 덜린다.
오랜 세월 발길에 닳아져서 미끄럽기까지 하다.
탑에 오르니 야자수 숲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회랑의 벽에 있는 조각들은 정교하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힘들게 오른 이에게 아름답고 또 시원한 풍경을 선사한다.
게다가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나를 돌아보게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묻게 해준다.
뜨겁고 더운 이곳에서 그런 생각들은 사람들은 더 지치게 하고 무겁게 만들지만 거대한 사원의 이끼 낀 세월의 무게는 그저 나를 안으로 만 들여다보게 한다.
어느틈에 우리를 발견한 거지 아이들이 몰려온다.
손톱은 물론 손등까지 때에 절은, 발엔 다 떨어진 슬리퍼, 머리엔 이가 우글거리고 hunt마크가 새겨진 우리나라 헌옷을 입고 이 더위에 모자도 없이 여행자들이 먹고 버린 콜라깡통을 줍고 지뢰에 발목이 잘려나간 혹은 두 팔이 잘려나간 채 하얀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는 이 아이들에게 나의 더위는 사치다.
캄보디아의 현실은 눈에 보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건만 삶에 지친 그들의 모습에서 난 막막해진다.
00년 1월 17일
7시 30분 출발-시소폰 12시 20분- 국경 12시 20분- 오후 8시 30분 북부역 도착
드디어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이다.
방을 두고 도미토리 옥상에서 잤는데 역시 새벽닭이 우는 소리 때문에 늦잠을 잘 수가 없어서 5시 30분에 깨어 뒤척이다 결국 6시에 일어났다.
차는 7시 30분에 출발
다행히 국경까지 가는 차를 예약해서 올 때보다 덜 번거롭게 되었다.
운전사는 유난히 얼굴이 까만 아저씨와 베레모를 쓴 기사다.
뒤에 배낭을 쭉 쌓고 비닐을 씌우는데 좀 불안하다. 올때보니 너무나 많은 먼지가 앉았던데...
차는 폭탄맞은 길로 들어섰다. 장난이 아닌 그 길을 우리는 웃으며 지나갔다.
왜냐하면 차안에 들어온 모기를 잡느라고.
운전수 아저씨는 핸들을 놓으면서까지 모기를 잡았는데
나는 한 손으로 모기 세 마리를 잡기도 했다.
내가 잡은 모기를 보여주니 내 손에 잡힌 모기를 아저씨가 뭉개버린다. 확인 사살이다.
모기보다 아저씨가 더 무서워서 한바탕 웃었다. 웃다가 머리를 부딪쳐서 웃고, 위험한 다리를 건널 땐 무사히 지난 기념으로 박수를 쳐주며 웃고, 웃는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웃겨서 또 웃고, 이젠 뒤에 앉아오던 아저씨들과 캄보디아 사람들도 따라 웃는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참 다르고 또 똑 같다.
중간에 시소폰에서 내리라는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물 반 고기반의 호수, 생선 반 파리 반의 시장, 고기 반 국수 반의 국수, 웅덩이 반 길 반의 도로, 구멍 반 다리 반 의 다리, 등등 반반씩의 캄보디아를 기억하며 국경에 도착했다.
역시 너무 쉽게 그래서 허무하게 국경을 통과해서 툭툭(10바트)을 타고 태국의 아란 버스터미널에 도착.
방콕행 버스(125바트)를 타자 피곤과 졸음이 몰려온다.
생각해 보니 아침으로 먹은 바게트와 차가 오늘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중간에 대나무 찰밥과 과일을 먹긴 했지만 이러다 영양실조 걸리겠다.
그런데 우리가 탄 차가 잘 못달리는 것 같더니 급기야 고장이 나서 주유소에서 다른 차로 갈아탔다.
나중에 고장난 차가 다시 왔지만 우리는 잘 몰라서 그냥 있었더니 이 차가 완행이었는지 너무나 느리게 온갖 곳을 다 돌더니 아주 늦은 9시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터미널에서 탄 택시까지 카오산을 몰라 헤메는 통에 다른 택시로 또 갈아타느라 더 늦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차만 탔다.
피곤이 겹치는데 늦은 저녁(제육덥밥)을 먹고 방을 보니 상상을 불허하는 방이다. 셋이 한 침대에서 자고, 욕실과 화장실은 공동인데 너무 좁고 좀 떨어진 곳이라 불편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밖은 가까이에 도로가 있는지 차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너무 힘든 하루였다.
13시간 차를 탔으니...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곳 만남의 관장엔 책이 참 많고 만화책도 있고 일본 아이들이 많은 곳인데 하루정도는 묵을 수 있지만 오래 머물기엔 좀 불편할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이런 곳에서 자본다. 새로운 경험이다.
잠을 자려고 누우니 베니어판으로 대충 꾸민 방이 너무 을씬년스럽다.
위에 선풍기가 달려있는데 모기는 어찌나 무는지 통 잘 수가 없다. 그렇게 곤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미까지 나를 괴롭혀서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00년 1월 18일 화
밤새 거리의 소음이 계속되고 끈적거리는 더위와 매연(연탄가스) 벌레 때문에 잠을 설쳤다.
불편한 잠자리와 모기의 등쌀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세면을 하고 오늘 일정을 돌아본다.
라오스준비를 위해 시내쇼핑을 하고 그 동안 못한 가족의 안부를 묻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 전화카드를 샀는데 사용법을 몰라 경찰서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도중에 60세가 넘은 부부배낭자를 보았는데 나도 늙어서 저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바램으로만 끝나면 안되는데.. 더구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서양인들을 보며 나도 하은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꿈꿔 본다.
그런 날이 가능하도록 체력단련도 더 하고 영어공부도 더 해야겠다.
아닌게 아니라 배가 너무 아파서 너무 힘들다. 화장실도 계속 들락거리고,,
찬물과 음식이 맞지 않아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좀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카오산을 더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집에 전화를 했다. 하은이가 삼일동안 아프다가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한다.
다행이다. 전화 저쪽에서 하은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고싶다.
하은이가 저지레를 해서 테입도 망가트리고 말썽도 자주 피운다고 한다.
그래도 예쁘고 귀여운 우리아기 하은이 보고싶다.
일을 마치고 만남의 광장으로 오다가 깐짜나부리에서 함께한 일본아이 마리를 만났다.
해변에 가서 태웠다더니 정말 예쁘게 태웠다. 참 붙임성있고 예절 바르다.
만남의 광장에서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고 세수까지 하고 밤기차 탈 준비를 한다. 그래도 배는 여전히 아프다.
짬이 나서 그곳에 있는 책을 읽는데 너무 좋은 글이 있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나와 관계없는 것은 없다>
다시 역으로 출발, 8시 30분 농카이행 기차 15-7번 기차를 탔다.
지금은 기차 안이다. 오랜만에 탄 기차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몸도 편안하게 해준다.
옆라인에 은숙이 언니 뒷좌석에 춘희, 명숙, 그 뒤로 정희가 앉았다. 아직 내 옆좌석의 주인공은 안왔다.
너무 졸립다.
기차가 주는 안도감 때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