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 1월 25일 화
9시에 떠난 밤버스는 너무 불편했다.
기차보다 더 힘들다.
중간에 휴게실에 한 번 들르더니 새벽 6시에 북부역에 도착,.
정말 다리를 어디다 둬야 할 지, 춥기는 왜 그리 추운지...
여행이 끝나가려니 점점 불평이 많아지나보다.
간신히 카오산에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리는 수고를 한 뒤에
jand joe하우스에 여장을 푼다. 가격보다 좋은 집이라 인기가 있다.
카오산에서 하루 쉬었다.
00년 1월 26일 수
오늘은 아유타야 유적지 일일투어다.
어젯밤 카오산의 밤은 음악과 장사꾼과 좌판과 차소리로 정신이 멍할지경이었다.
아침에 보니 어젯밤의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청소부는 열심히 치우고 ..
이렇게 많이 먹고 이렇게 많이 버렸구나. 쓰레기를..
갑자기 카오산의 배설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아유타야 마지막 행선지,
폐사지는 정말 조용하고 편안했다.
과거란 사람을 편안하게만드는 매력이 있다.
폐사지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
붉은 돌은 햇빛의 열기를 품고 있어서 따뜻하고 정겨웠다. 온돌처럼.
이곳이 주는 과거의 한가로움이 피곤을 잊게 한다.
하늘은 오늘도 참 푸르다.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2000년 1월 11일
6시 모닝콜과 함께 일어났다.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우리 일행은 차선생님 차로 공항까지 편히 갈 수 있었다.
여유있게 출발해서 오히려 길도 안 막히고 시간이 남았다.
10시 15분에 출발한다던 TG(타이항공)은 김포공항이 붐빈다는 이유로 20분 늦게 이륙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 뒤로 다른 비행기들이 줄줄이 이륙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김포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비행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떠날 때 하은이가 아픈걸 보고 와서 그런지 창 밖의 풍경도 그리 신나지 않는다.
비행기는 6시간 후 드디어 태국의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이용객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고 좀 어둡다. 검색대에서 걸린 칼을 찾느라 좀 지체되었고, 동료들은 환전하느라 좀 시간이 걸렸다. -나는 50만원 중에 5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를 미리 환전했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이라는 긴장감과 전혀 모르는 낯 선 곳에 대한 불안함을 앞세우고 공항 문을 여니 처음으로 느껴지는 태국의 첫 냄새는 더위와 아황산가스냄새였다. 공해가 심각하다.
대부분 차는 일제다.
처음부터 택시를 탈수는 없는 일. 걸어서 공항을 빠져 나와 익히 외운대로 육교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을 금방 찾았다.
하지만 몇 번 버스가 카오산을 가는지 잘 몰라서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과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서툴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장은 장대로 은숙이 언니는 언니대로.. 그 결과 금방 지나간 59번 버스가 카오산을 간다고 하고 시간은 2시간 30분 걸린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에어컨이 나오는 편한 택시나 공항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로 요금 5바트를 내고 맨 뒷좌석에 앉아 시내구경을 하는데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있었고, 대부분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색 치마 혹은 바지를 입었는데 재미있는 건 치마의 길이가 제 각각인 것이다.
치마의 길이는 규제의 대상이 아닌가 보다.
거리 곳곳엔 국왕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걸린 것으로 보아 국왕의 존재를 자랑으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곧 도착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차는 밀리기 시작했다. 아마 좀 더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고 있나보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 중간에 탄 한국학생의 안내로 카오산에 내릴 수 있었다. 그 학생만 믿고 따라 내렸는데 학생이 헤매는 바람에 1시간을 넘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에 잔뜩 젖은 뒤에야 홍익인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홍익인간은 규모가 작고 사람은 넘치게 많았다.
방이 없다고 해서 비빔국수를 시켜서 먹고 배낭을 맡긴 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카오산의 <마르코폴로>에 250바트를 주고 숙소를 정했다.
에어컨도 있고 더블침대에 화장실도 방안에 있는 비교적 괜찮은 곳이다.
나는 춘희와 308호실에 묵었다. 그래도 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살 것 같다.
거리구경을 겸해서 <만남의 광장>을 찾으러 다시 나왔다. 이 여행사는 하대호라는 분이 운영하는 여행사인데 그는 여행업이 천직처럼 느껴지는 분이었다.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들었는데 이러저러한 얘기 중에 이 만남의 광장엔 일본인 여행객이 꽤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식당한쪽으로 책꽂이가 있고 만화에서부터 소설, 종교서적, 잡지 여행안내서를 비롯하여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일 오전에 깐짜나부리 일일 투어를 예약하고 숙소로 오는 길에 카오산 거리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먹으며 생전 처음 보는 자유분방함과 다국적 인종의 재미있는 모습을 보며 방콕의 첫 날을 보냈다.
카오산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여행자들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2000년 1월 12일
오전 7시에 온다던 투어버스는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다. 벌써 날씨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더위가 시작인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거리에서 탁발하는 스님을 보았다. 그 더러운 도시의 아스팔트를 맨발로 다닌다. 발우엔 정성껏 담긴 음식이 있다. 아침을 여기 태국은 주로 사먹나 보다. 노점엔 일찍부터 기름에 볶고 튀기는 냄새가 진동하고 그 와중에 집집마다 놓인 불탑엔 그날 준비한 싱싱한 꽃이 이미 봉양되어 있었다.
겉에서 보기엔 아주 멀쩡하지만 중고차임이 분명한 봉고가 도착한 것은 9시. 꽤 멀리 외곽을 돌아서야 <담넝싸두악>이라는 수상시장엘 도착했다. 그곳에서 날렵한 모터보트를 탔는데 너무 시원했다.
바
람과 같이 물살을 가르고 좁은 수로를 출렁이며 달리는 재미는 유쾌함 그 이상이다.
곳곳에 수상시장이 있는데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라 장사들은 별로 없고 우리같은 관광객이 더 많았다.
중간에 쌀국수를 사먹었는데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었다.
두 번째로 <깐짜나부리>에 도착, <콰이강의 다리>를 보았다.
날씨가 너무 덥고 아직 더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무척 피곤했다. 영화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는 보수 중이었고 지명도 때문인지 관광객이 꽤 있었다. 다리보다는 강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조용해서 오히려 전쟁기념관이 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전쟁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와 죽은 이 들이 있는 만큼 분명 전쟁은 있었다. 그들의 무덤이 있는 묘지에 잠깐 들렀다가 이른 오후 5시에 카오산에 다시 돌아왔다.
하대호씨의 안내로 NK수끼를 먹으러 택시를 타고 갔다. 방콕택시엔 정원초과가 없어서 우리 5명은 한 택시에 탈 수 있었다. 수끼는 태국식 샤브샤브 라고 할 수 있는 음식으로 야채와 각종 생선 및 고기요리를 육수국물에 우려먹는 음식이다. 한사람 당 100바트 정도면 적당하다고 하기에 500바트 정도의 가격으로 먹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방콕의 야경을 보며 돌아왔다. 간혹 그 불빛 사이로 현대며 엘지의 간판이 보여 반갑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상품은 일제이고 그나마 태국의 실질적 상권은 화교들이 갖고 있다고 한다. 하대호씨는 낮과는 전혀 다른 곳이 방콕의 밤이고 그 방콕의 밤을 <악마의 밤>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주로 간다는 <팟봉>은 하대호씨의 만류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에 팔려오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태국북부의 <치앙마이>같은 산골처녀라고들 하니 낮에는 신심깊은 불교국가요 엄연히 국왕이 존재하고 존경받는 사회임이 분명한데 밤이면 악마의 밤으로 돌변하는 그 이상함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일 있을 캄보디아의 일정을 대충 살펴보고 다시 짐 정리를 했다. 모두들 카오산 거리로 나가 몇가지 준비물을 사고 나도 샌달 (100바트)과 긴바지(100바트) 하나를 샀다. 캄보디아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오늘 만남의 광장에서 잠깐 본 대학생들도 막 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 말이 캄보디아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못 기대 반 걱정 반의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