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왓의 신부
앙코르왓의 무희
작은 상점 큰 미소
내전의 후유증
초등학생들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우리나라 물건들!
캄보디아는?
1. 위치와 크기
-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4/5, 인구는 약 7백70만명 이다.
캄보디아는 동쪽과 남쪽으로 베트남, 서쪽과 북서쪽으로 태국, 북동쪽으로는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앙부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메콩강과 메콩강의 수위를 조절해 주는 톤레샵湖가 있다.
주 자원은 고무, 원목 등이고 주 농작물은 쌀과 옥수수이다.
2. 기후
- 전형적인 열대몬순 기후로 5-11월이 우기이고 11-4월이 건기이다.
3. 민족
- 캄보디아의 민족은 크메르족(캄보디아족)이 85%이고 화교도 50만명이나 된다.
공용어로 크메르어를 사용한다.
4. 종교
-캄보디아는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는데 불교가 주종교로 소승불교이다.
폴포트시대에 살아남은 승려는 탁발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스님들은 맨몸에 주홍색 장삼을 두른다.
고대 후난 왕국과 앙코르 왕국 당시 지배계층의 종교는 흰두교였다.
5. 화폐
- 캄보디아의 화폐단위는 릴(Riel)이다. 태국화폐인 바트도 환영을 받으며US$도 통용된다.
6. 캄보디아 비극의 역사
- 15세기 이후에 캄보디아는 동쪽의 베트남과 서쪽의 태국으로부터 잦은 침입을 당하였다.
1967년에 프랑스는 베트남의 3개 지방, 라오스와 함꼐 캄보디아를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연방으로 편입하였다.
- 1941년 프랑스의 세계 2차대전 패배로 캄보디아에는 비시(Vichy)정권이 들어섰고 동아시아의 주축국인 일본의 세력이 강화되었다. 1945년 3월 12일 시아누크는 독립을 선포하고 프랑스와 연계하여 일본군에 저항하였다.
-1970년 시아누크를 축출한 론놀은 1972년 국명을 크메르로 개정하고 서방세력과 교섭하였다. 그러나 크메르 루즈와 월맹에 패한 론놀은 미국으로 망명하고 1975년 4월 17일 수도 프놈팬이 공산화 되었다. 이후 급진적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수많은 국민이 학살당했는데 폴포트의 공산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대학살은 서방세계에 알려져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다.
-13년의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정파간의 다툼도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크메르 루즈는 루비,사파이어,원목등의 산지인 북서쪽의 산악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태러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돌아본곳
앙코르(Angkor)
1. 앙코르의 건설
-앙코르 왕국의 아쇼바르만 1세(889-900)시기에 앙코르에 도읍이 건립되었다. 도읍을 둘러싼 성벽은 한 변이 약 4키로 서쪽과 남쪽에는 폭이 넓은 수로(해자)가 만들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앙코르 톰(큰도시)은 제 4기 공사에 속하며 각 왕들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확대된 도읍은 마지막에는 그 넓이가 1,0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13세기부터 샴족의 공격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앙코르는 185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발견되었다. 과거부터 북쪽 밀림의 큰 도시에 가면 저주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는데 앙리 무오는 앙코르 발견한 다음해인 1861년 9월 여름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천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1866년 인도차이나에 거점을 구축하고 있던 프랑스에 의해 이 유적에 대한 조직적 발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로부터 철수하게 된 이후 이곳에는 엄청난 내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캄보디아는 이 유적을 살필 수 없었다. 이후로 현재에는 국제적인 민간협력에 의해 앙코르 왓의 복구계획이 다시 수립되어 진행중이다.
2. 톤레삽 호수
캄보디아의 북서부에는 메콩강의 수량을 조절해 주는 톤레샵(Tonle Sap)湖가 있다. 대호수라는 의미의 이 호수는 넓고 비옥한 저지대의 평원이 둘러싸고 있다.
3. 압사라 춤
압사라춤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추는 춤이라 한다.
4.경제
캄보디아는 그동안 내전으로 인하여 경제가 무척 나쁘다. 우리나라에서 보낸 헌옷과 가방들이 시장에서 팔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입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