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농사라는 걸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제가
작은 땅을 얻게 되어 드디어 흙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자 땅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그 흔하게 보아 온 농기구들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괭이며 호미며 물조리개,
그리고 닭똥냄새가 나지 않는 퇴비도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이고요...
토요일이면 새벽에 일어나 괭이로 땅을 일구어 도톰하게 올리고
퇴비도 적당히 뿌려주었습니다.
일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손에 물집이 잡혔는데
정돈된 저 밭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고추 모종을 사다 심고
대나무 지주대를 세우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제 하는 양을 보더니
대나무 가지 치는 법을 알려주고 가시더군요..ㅎ ㅎ
초보 농사꾼이 하는 양이 엄청 어설퍼 보이고
낫을 휘두르는 폼이 무척 위험해 보였던가 봅니다.
모종을 사다 심은 상추가 너무 잘 자랍니다.
그 새 잎을 따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까워서 차마 못 따고 기다리다 보니
좀 쇠고 말았습니다.
맛요? 이렇게 맛있는 상추는 처음입니다.
이 상추는 씨를 뿌려서 키운 건데
양상추보다는 좀 다른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양상추가 시원한 맛이라면이 상추는 쌉쌀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상추에 쑥갓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쑥갓을 심었는데 정말 얼마나 예쁘게 순이 나오는지...
게다가 꽃은 얼마나 이쁘다고요...
연꽃을 좋아해서 연꽃과 비슷한 잎을 가진 토란을 심었습니다.
책에 보니 뭘 심을지 몰라 애매한 땅에 토란을 심으라고 쓰여 있더군요.
하지만 전 가장 좋은 자리에 토란을 심었는데
잎이 얼마나 예쁘고 깔끔한지 연을 보듯 토란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토란을 캤는데 줄기는 말려두었습니다.
여름에 육개장 끓일 때 넣으면 좋겠지요?
이건 들깨입니다.
들깨가 있어서 미리 뿌려 놓았다가
비오기 전날 부랴부랴 옮겨 심었더니
세상에 편한 농사가 들깨더군요...ㅎㅎ
게으른 농사꾼이 짓기에 너무 좋은 식물입니다.
들깨를 심어 놓으니 잎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나중에 들기름을 짰는데 소주병으로 6병이나 나왔어요.
그 고소한 냄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요...
봄에 고추 모종을 20개 정도 심었는데 얼마나 많이 열리는지...
따기가 무섭게 또 열립니다.
맛은 좀 매웠는데 새벽에 밭에 나가 이슬 머금은 고추 몇 개 따다가
고추장 찍어 아침을 먹으면
반찬 걱정 없어 좋고요... 마트에서 파는 고추는 못 먹게 됩니다.
가을에 좀 많이 따서 초간장에 삭혔더니 초겨울까지 밑반찬으로 그만입니다.
드디어 방울토마토 차례군요..
방울토마토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열매도 잘 맺고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
밭에서 따서 바로 입 안에 넣으면
가득 번지는 새콤달콤함 때문에 자꾸 손이 가게 됩니다.
여름 장마에도 잘 버텨준 방울토마토는 늦여름 초가을까지 정말 수확이 많았습니다.
텃밭을 처음 일구며
생명의 신비함과 먹거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먹거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필요한지도 배웠습니다.
그동안 저의 먹거리를 길러주신 농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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