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의 성품에 대해 〈종회부(鍾會賦)〉에 이렇게 적혀 있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天)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地)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은

군자의 덕(君子之德)을 갖었음이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氣像)을 뜻하고,

 술잔에 동동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仙食)이라.”

 

초(楚)의 굴원(屈原)은 국화를 정절의 꽃으로 찬양했다.

 

 

회왕(懷王)의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노닐면서

《초사이소경(楚辭離騷經)》을 지었는데 그 글에서

 “아침에는 목련꽃에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진 국화 꽃잎을 먹는다.

(朝飯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고 궁핍한 생활을 읊었다.

 

 

먹을 것이 없어

 봄이면 목련꽃에 맺힌 이슬로 목을 축이고

가을에는 국화꽃을 먹으며 연명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시류에 물들지 않고

국화처럼 고고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진(晉)의 연명(淵明) 도잠(陶潛)은

 일찍이 팽택령(彭澤令) 벼슬을 그만 두고

향리로 돌아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그는

 “친구와 다니던 세 갈래 길 거칠어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구나.”라고 적었다.

 

 

나무의 대표 격인 소나무와 초본류 중에서

국화를 예로 들어 자연이 예와 다름없음을 노래했다.

  

도연명(陶淵明)이 얼마나 국화를 사랑했는지

송(宋)의 주돈이(周敦?)가 쓴 〈애련설(愛蓮說)〉에 따르면

 

“초목의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많다.

 

진(晉)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난히 국화를 사랑하였다.

(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고 적고 있다.

 

국화를 노래한 시로 도연명의 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동쪽 담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쓸쓸히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도연명이 국화를 가꾸면서 욕심 없이 사는 그 고절한 선비의 모습에서

일반인은 높은 절개를 보았고

차츰 길상의 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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