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탑 : 전라북도 지방 기념물 제35호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1860~1957) 처사가 30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다. 이곳 탑사에는 당시에 120기의 탑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80기만 남아 있다. 대부분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았지만 천지탑 등의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 명산에서 가져온 돌들이 한두 개씩 들어 있다.

마이산 석탑은 섬세하게 가공된 신라 왕조의 탑들과는 달리 가공하지 않은 천연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막돌허튼식'이라는 조형 양식으로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이 적용된 이 탑들은 정성과 탁월한 솜씨로 쌓아졌다.

탑사 내의 탑군을 이루는 탑들은 천지탑, 오방탑, 약사탑,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흔들탑)이 탑을 보호하는 주변의 신장 탑들처럼 제각기 이름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한 바람에도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 탑에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고, 특히 겨울철에도 탑단에 물 한 사발을 올려놓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고드름이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신묘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또 탑사에는 두 권의 서책이 전해 내려오는데 당시 이갑룡 처사가 산신들의 계시를 받아 적은 서른 권 불량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마이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이곳 탑사는 여러 유적들 특히 대웅전, 산신각, 미륵불, 영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복원되면서 명실상부한 전통 사찰로 자리 잡았다.(안내문 발췌)

( 내가 30여 년 전 이곳에 왔을 땐 이갑룡 처사가 밧줄을 타고 탑을 쌓는 사진이 있었고, 일제로 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쌓았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이갑룡 처사는 1860년 3월 25일 전북 임실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부모상을 당하자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후 인생의 허무와 무상을 느껴 전국 명산에서 수양하다가 25세에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 탑을 쌓았다.(안내문 발췌)

 

2. 금당사

   

3. 은수사

-은수사 청실배나무, 천연기념물 386호

청실배나무는 장밋과 산돌배나무의 변종이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수령 65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는 2.5m이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찾아 기도하면서 그 증표로 씨앗을 묻은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한국재래종으로 매우 희소할 분 아니라 학술적 가지 및 종 보존 차원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성계와 은수사

은수사는 고려 장수였던 이성계가 왕을 꿈꾸며 기도를 드렸던 장소로 전해진다. 기도 중에 마신 물이 은같이 맑아 은수사(銀水寺)라 불린다.

현재 샘물 곁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있고 왕권의 상징인 금척을 받는 '몽금척수수도'와 어좌 뒤에 그림인 '일월오봉도'가 경내 태극전에 모셔져 있다.

신라시대부터 소중한 제사를 지내던 소사터의 기록과 태종실록을 바탕으로 매년 군민의 날 전날인 10월 11일 산신제를 지내는 마이산 산신제단이 바로 뒤 수마이봉 아래에 있다.

 

4. 화엄굴

마이쌍봉이 서로 이어지는 잘록한 부분에서 동봉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에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 이 샘물은 아래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동봉의 봉우리에서부터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이다.

화엄굴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이 이 굴에서 연화경, 화엄경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남녀, 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에 속한 숫 마이산, 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 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럼 생겼다. 이 봉우리 아래 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 물을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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