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동서원(道東書院)은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원래 조선 오현 중 수현이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원이다.
1568년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사우를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 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 1597년 왜란으로 전소되었다.
그 후 1604년~5년, 2년간에 걸쳐 지금의 자리로 사우를 옮겨짓고 서원 일곽을 재건하여 보로동서원으로 부르다가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령을 받고 1610년 사액 현판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불구하고 존속한 전국47개 주요 서원 중 하나이다.
도동서원은 산지형 서원의 배치형태로 진입공간, 강학 공간, 제향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밖에 신도비, 유물전시관, 전사청, 증반소 등이 있다. 진입공간에는 외삼문과 누각인 수월루, 강학 공간 내에는 강당인 중정당, 동재인 거인재, 서재인 거의재, 장판각 등이 있으며 제향 공간에는 사당이 있다.
강당과 사당, 그리고 담장이 1963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서원 전역이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강학 출입문인 환주문은 그 구성이 특이하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서울 정릉동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대유, 호는 한훤당, 시호는 문경, 본관은 서흥이다.
고려후기 사족인 증조부 중곤이 수령과 청환을 역임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현풍현에 이주하게 되면서 그곳을 근거지로 삼게 되었다.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웠는데 스스로 '소학 동자'라 일컬었다.
1480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그 뒤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등이 되었으나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가 2년 뒤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 되었다.
유배지에서도 학문연구와 후진육성에 힘써 희천에서는 조광조에게 성리학을 전수하여 우리나라 유학사의 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조광조, 정여창,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조선 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었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동서원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수령 400여 년에 달하는 은행나무였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이라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았으나 그 거대한 몸집은 감탄할 만하였다.
지난번 정읍 무성서원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보수 중이라 건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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