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12. 수. 더움
어제 선생님이 친척들 모임을 연이어 치렀더니 너무 피곤해서 몇 년 만에 처음 낮잠을 잤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새벽부터 밤까지 연일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친척들은 일 년에 몇 번이지만 이곳에 사는 선생님은 계속 손님들을 치러야 하니 참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더니 우리 일행이 있는 자리에서 내일 또 14명의 파워블로거들이 방문할 텐데 저녁과 아침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며 걱정을 하신다.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활짝 웃으시며 좋아하신다.
다음은 선생님과 나의 14인분 음식장만 이야기다.
사실 난 주부경력이 한참이지만 14인분의 음식은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도와드리는 일만 하겠다고 했던 것이고 지난번 선생님댁에서 잣죽과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보고 선생님께 요리 또는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생각한 음식은 벌써 머릿속에 메뉴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배추겉절이, 나물 (곤드레, 명아주, 눈개승마, 절인갓) , 돼지고기두루치기, 채소샐러드, 얼갈이 된장국, 등이었다. 음식장만은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일찍 일어난 나는 새벽에 산책을 나갔고 어제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다는 말을 얼핏 들어 9시에 맞춘다고 생각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벌써 차를 대기하고 계셨다. 내 신발이 없기에 산책 나갔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하신다.
얼른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 오늘이 봉평장날이었고 꽤 규모가 컸다. 선생님은 익숙한 길로 들어서서 늘 거래하는 집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주인은 주차장까지 오토바이로 배달해 주셨다. 근처 안경점의 주인과 친분이 있으신지 그분은 주차공간도 마련해 주시고 친절하게 차도 내어 주셨는데 공연얘기를 잠깐 하시는 거로 보아 함께 평창군일을 하시나 보다 하고 짐작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구들마을에 돌아와 나는 배추부터 다듬어 절이고, 파, 부추다듬고, 상추, 고수 및 샐러드용 채소 씻고 등 준비하는 시간만도 한참이 걸렸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점심때가 되자 일행 중 한 분이 함께 해서 일이 더 쉬워졌고 선생님은 어느 틈에 콩국수를 말아 주시고 일행분은 봄에 만들어 놓은 쑥개떡을 쪄주셔서 맛있게 점심으로 대신했다.
*선생님의 양념
1. 된장 - 메주를 만들어 지금 내 방에서 띄워 직접 만든 된장이다.
2. 간장 - 된장 만들 때 함께 만든 조선된장
3. 디포리 - 누가 가져온 디포리를 달군 팬에 손으로 직접 볶아서 국물을 만든다.
4. 양파 - 양파껍질을 버리지 않고 바짝 말려두었다가 국물요리할 때 미리 끓여 육수로 사용
5. 올리브유
6. 멸치액젓 -친정 엄마가 생멸치를 사다가 만든 멸치젓을 고운 천에 걸러 액젓으로 사용
7. 고춧가루 - 가을에 홍고추를 반건조한 뒤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김치 할 때마다 갈아서 사용
나는 선생님 옆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필요한 도구를 집어 주거나 계속 나오는 설거지거리를 씻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직장생활을 했는데 언제 요리하는 걸 배웠냐며 ㅎㅎㅎ, 단수가 보통이 아니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오후 6시, 식사시간에 맞춰 음식이 차려졌고 14명과 스텝관계자들의 저녁시간이 끝났다. 나머지 음식으로 우리 구들마을 일행도 저녁을 먹고 나니 정말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샘이 일을 도우고 어찌어찌 서로 치우다 보니 일이 마무리되었다. 참 대단한 하루였다. 밤하늘의 별은 총총하고 일행은 시원한 마당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조금 후 조용히 나오신 선생님은 내일 아침은 황태콩나물해장국을 끓이라는 메뉴선정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에게 도와달라는 말로 들렸다.
2024. 6.13. 더움
새벽 4시. 잠이 깼다. 역시 기온차로 안개가 자욱한 평창의 아침이다. 새들이 노래한다. 평화로운 아침풍경이다.
아직 잠들어 있을 일행들이 깰까 조금 더 누워있다가 얼른 세수하고 어제 말려 둔 그릇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6시가 좀 넘자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 메뉴가 황태해장국, 계란말이, 샐러드. 아침이라 간소하다.
선생님은 엄청난 양의 콩나물과 어제 잘라둔 황태포를 넣고 미리 끓여둔 육수를 사용해서 황태콩나물해장국을 끓이셨는데 쌀뜨물까지 알뜰히 챙겨 넣으셔서 진하고 보얀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젊은 친구들이라 계란말이도 하셨는데 뚱뚱한 계란말이는 처음 해본 다고 하시는데도 너무 잘하셨다. 내가 불조절을 해 드리니까 손발이 척척 맞는 내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최고의 조수라고 또 칭찬을 해 주신다.
선생님은 처음 만나는 14명의 음식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셨다. 부모가 자식을 먹이듯이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고,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발효액을 아낌없이 썼으며 지난해부터 갈무리해 온 재료도 아낌없이 내어 그들을 대접했다. 마치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듯 말이다. 난 정말 감동했고 숙연해졌다.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과 시간을 함께하며 인간에 대해 이렇게 사랑을 베플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좋은 사람도 많이 보고 만나기도 했지만 소리 없이 담담하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선생님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편안하고 고요해질 수 있었다.
오늘은 나와 선생님 둘이 14명의 아침을 준비해야 해서 내가 뷔페식으로 하자고 권하고 상을 차려놓으니 사무장과 선생님도 순순히 따라주셨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곧 침, 뜸체험이 이어져서 바로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휴가 받은 엄마대신 한샘이 나타나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참 예의 바르고 싹싹한 딸내미다.
침, 뜸 체험 후 블로거들은 족욕체험을 끝으로 돌아갔고 우리 일행은 드디어 일에서 벗어나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구선생님 덕분에 오래간만에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었다. 함께 한 일행분들의 개인사와 각자의 취미, 앞으로 평창에 땅을 구해 정착하고 싶다는 바람들을 들으며 모두 자연을 사랑하고 온화한 사람들 같아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쩜 이렇게 생각도 비슷한지...
얼마 뒤 마을 노인들이 강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이 남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초대한 것 같다. 큰일이다. 내일 일산 킨텍스에서 K-팜 전람회에 참석하는 일이 갑자기 정해져 다들 집으로 퇴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짐을 챙기고 있었던 터라 혼자 뒷정리하실 선생님이 좀 걱정되어 부랴부랴 대충 정리를 해놓고 원주로 향했다.
선생님은 올해부터 수행자가 되었다고 하셨다. 작년 겨울 스승께서 너는 수행자가 되라고 하셔서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하셨고 딱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란색옷을 입는 것으로 표시를 한다고 하셨다. 대부분 채식을 하시고 여태껏 하시던 대로 명상수행을 하신다고 하셨다. 수행자가 되고 명상수행을 계속하는 이유가 뭐냐는 나의 우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명상을 통해 사람들이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려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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