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4일)

 

 

 바우길은 강원도가 만들어 낸 길이다.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길을 잘 다듬었다고나 할까?

 

대관령에서 선자령 정상과 연결되어 있는 바우길을 찾았다.

새벽 6시,

캄캄한 신 새벽길을 나섰을 때 어둠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어둠과 빛이 적당히 숨바꼭질하는 새벽!

발길은 그만큼 더  더뎌졌다.

 

선자령 가는 길에서 벗어나 바우길로 접어들자

아침에 나무들이 일제히 세수한 맑은 공기와,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들을 일제히 몸 풀게 하는 바람이

뺨에 와 먼저 부딪쳤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 저 만치서 길을 재촉하는 다람쥐,

잘 익은 나뭇잎을 적시며 흐르는 계곡물,

 

아, 국사성황당이 가까워질수록 경쾌한 장단소리에

  숲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빛과 함께 깨어나 앉는다.

 

獨樂幽棲 독락유서

- 이 깊고 그윽한 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나만의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싶다.

 

 

 

 

 

 

 

 

 

 

 

 

한때는 직장 산악회에 가입해서

강릉 주변의 산행에  열심히 참여했건만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부터는 일행에게 누가 될까 두려워 산행을 꺼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대산은 가끔씩 혼자라도 가서 전나무숲을 보거나

적멸보궁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얼마 전엔 태백 근처까지 출사를 갔건만  태백산 산행은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돌아서기도 했는데...

 

 

 

 

 

 

아무튼

새로 마음을 다지고 배낭엔 작은 렌즈만 넣어 무게를 최소화시키고

천천히 태백산 천제단까지 등반하기로 했다.

 

 

 

 

 

 

 

이미 새벽에 올라 일출을 본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중간에 따뜻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올랐다.

 

간이 휴게소를 지나 오르막에 이르러서는

허리가 휘어져 네발로 갔다.

 

 

 

 

 

 

 

 

정상에 도착하니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파란 하늘과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산 능선의

아름다움에 추위는 물론

고된 줄도 몰랐다.

 

 

 

 

 

 

 

 

 

좋은 일이야

(시인: 이성부)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 마리 고기 같아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것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갇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산을 오르다 보면 호흡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심장 소리에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무거운 발걸음에 집중하기도 한다.

 

숨이 벅차다가도  어쩌다 부는 바람에

잠시 몸을 맡길 때면

마음은 한없이 단순해지고 고요해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산으로 神을 만나러 오고

또 어떤이는 그리운 이를 만나러 오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을 만나러 온다.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참, 기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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