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살면서 가장 많이 다닌 산은 단연 오대산이다.

오대산은 개인적인 인연까지 더해져 계절마다, 이유 없이 훌쩍 다녀오곤 했다.

 

더위가 극성을 부려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즈음,

아침 기온을 살펴보니 대관령은 20도 안팎이다.

 

해뜨기 전에 오르고 싶어 새벽에 출발했다.

월정사는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이 안된다.

 

상원사도 번쩍번쩍하게 새단장을 했고 규모도 커졌다.

누군가 내가 예전에 찍어두었던 상원사 사진을 본다면

아마 '여가 거야?'라고 할 것 같다.

 

적멸보궁 근처 샘물은 겨울이면 얼어있기도 했는데

뚜껑 있는 우물처럼 새로 만들어 놓았고 주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1986년 처음 본 월정사, 상원사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 지금 또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마법 앞에

나는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비로봉 정상까지는 여름꽃을 찾아보며 갔다.

정상에 오르니 잠자리 떼가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녀 정신이 없다.

올해 첫 잠자리를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귀여운 다람쥐들을 많이 만나

즐거웠다.

사람들의 먹이에 익숙해져서 졸졸 따라다니며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꼭, 치악산 비로봉까지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날도 흐리고 몸은 찌뿌드하고, 어깨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구룡사 계곡 물이나 보러 가자 했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계곡 주변엔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 움큼 따서 모아 입에 넣으며 이게 웬 호강인가 싶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세렴폭포까지는 시원한 계곡과 산딸기 밭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정표를 보니 비로봉 정상까지 3키로 남짓.

여기서 멈춰야했다.

지인들은 모두 치악산은 만만하게 보고 가면 안 되는 산이라 했다.

악(岳) 자 들어 간 산이라고.

 

더구나 난 허약체질에 저질체력.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절대 함께 등산하지 않는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

 

하지만,  조금만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려오지 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은 비로봉 정상까지 갔다 왔다.

 

일기예보엔 비가 안 온다고 했건만,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길은 미끄럽고,

안개는 자욱하고,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이고.

 

0.7km를 앞두고 참 많이 갈등했다.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기가막히고 두려웠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해 보였다.

 

장장 7시간을 걸었나 보다.

내려오는 길은 더더욱 힘들었다.

무릎도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려 조심 또 조심.

오전 8시에 출발해서 내려오니 2시 가까이 됐다.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으니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산행코스>

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

 

달마산

 

-해남 여행 첫째 날

5시간이나 걸린 긴 운전 끝에 오후 3시경 해남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도솔암에 가기로 했다. 날도 흐리고 도솔암에서 보는 일몰도 염두에 두어서 바로 도솔암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했다. 주차장엔 몇몇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주차장 옆에 나 있는 좁은 소로를 30여분 올랐을까? 바로 도솔암이 보였다. 암자라지만 너무 작아서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경관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지다. 이렇게 멋진 곳, 하지만 험한 암벽에 암자를 짓다니...! 종교의 힘은 대단하고 인간의 정성도 대단하다. 일설에는 월정사에 계시던 스님이 꿈에 계시를 받아 이곳에 허물어진 암자를 다시 세우셨다고 한다.

 

멋진 일몰을 기대했건만 날은 흐리고 내일은 비예보까지 있어서 하늘이 충충하다. 아쉽지만 비 맞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며 도솔암을 내려왔다.

 

도솔암

 

 

대흥사와 고양이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의발이 전해지고,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는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배출되면서 禪과 敎를 겸비한 팔도의 종원이 되었다. 1789년에는 정조대왕으로부터 '표충사'편액을 하사 받아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게 되었다. 천분의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과 서산대사 부도 등의 성보문화재가 있다.

 

-2021년 5월 14일 새벽 5시, 일찍 기상해서 준비를 마치고 6시에 가련봉 등산을 위해 대흥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어제처럼 기온은 높지만(낮기온 32도) 안개가 낀 듯 날이 흐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풀냄새와 나무 냄새,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지의 산이라 조금의 두려움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교차한다. 날이 점점 흐리더니 사찰 공사로 정신이 없는 대흥사를 지나고 숲길로 들어서자 어둠이 더 짙어진다.

나는 대흥사-일지암-만안재-가련봉-대흥사 코스로 길을 잡았다.

10시 전에 퇴실해야 하는데 등산 후 씻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단 코스로 정한것이다.

 

-지난번에 왔던 일지암 이정표까지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경사가 높긴 하지만 수월했다. 이후 돌길과 가파른 구간이 군데군데 있었다. 아직 등산 초보에 저질체력인 나를 다독이며 머릿속을 떠도는 온갖 잡념도 하나씩 둘씩 내려놓고 호흡에 집중해 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만안재에 도착했다. 숲에서 밖으로 나온 만일재 풍경은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사방으로 드믄드믄 산 아랫마을과 바다가 그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진 비바람에 허리를 펴지도 못하겠고 연신 머리칼이 얼굴을 때려 고개도 들 수 없다. 

 

-만안재부터는 길이 험하고 더 가파르다. 안개와 바람 때문에 시야가 가려 언뜻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등산은 선자령에서 겪어봤지만 여긴 초행이니 좀 더 걱정스럽다. 예전엔 밧줄이나 자일을 이용했는지 바위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드디어 가련봉 이정표가 보이고 땅 떠러 지지만 안개에 가려 지척이 구분 안 되는 가련봉 정상에 닿았다. 인간 승리다. 막바지엔 네발로 기어올랐으니 말이다.

 

가련봉 정상

 

- 내려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시간을 보니 왕복 4시간 걸렸다. 체력도 부족했고, 일지암에 다시 들러 사진 찍느라 허비한 시간도 포함한 것이니 다른 이들은 좀 더 빨리 다녀올 수 있을 듯하다. 암튼 너무 기뻐서 날아갈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등산은 나의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할 듯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