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요가선생님이 번역하신 행복하게 사는 기술을 읽고 있다. 지난 한달살이 중 고선생에게 빌려 잠깐 읽다가 너무 좋아서 교보문고에서 주문했다. 그동안 바쁘다 보니 잠깐씩 읽다가 미뤄졌는데 이곳 다낭에 가져와서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다. 그냥 읽고 덮기엔 너무 좋은 책이라 조금씩 발췌해 보기로 한다.

 

서문 중에서,

스와미 라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낸 고통의 늪에 빠져 있다. 일상적인 삶과 영성이라고 여기는 것을 갈라놓는 높고 두꺼운 벽을 스스로 쌓아 놓고는 그 벽을 허물려고 애쓰며 완전히 지쳐있다. 너는 신의 창조물이다. 그리고 행복은 너의 창조물이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면 과거를 애통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노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를 즐기게 될 것이다. 네게 머물고 있는 창조주의 창조성이 네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네 안에서 흐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더 이상 세상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고 세상 안에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스와미 라마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면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기술>은 지금 행복하기를 배우는 안내서입니다.

-히말라야협회의 영적 지도자 판티트 라즈마니 티구나이트 Pandit Rajimani Tigunait, Ph.D-

 

멀리 일본, 중국, 네덜란드 상인들이 와서 '내원교'라 불렀다고 한다. 17세기 초 일본상인들이 건설하여 '일본인 다리'라고도 한다. 다리 양 끝에 원숭이와 개의 석상이 있다. 일본, 중국, 베트남 문화가 조화롭게 섞인 내원교는 호이안의 랜드마크가 될만하다. 다리가 보수 중이라 못 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공사가 끝나있었다.

 

 

옛 내원교 사진, 근처에 일본박물관? 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이안 곳곳에도 일본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 당시 일본은 전성기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던 듯. 

 

 

 

17세기 후반 중국상인 꽌탕이 지었다고 한다. 내가 본 호이안 가옥 중 가장 아름다웠다. 집은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졌는데  옻칠처럼 빛나고 결 따라 반들반들 윤이 났다. 검은 칠이 자칫 집을 어둡게 보일 수도 있지만 붉은색의 등과 소품들로 포인트를 주어 그마저도 매우 아름답다. 선풍기 날개도 붉은색이었다.

 

 

실제 주인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집은 잘 가꾸어져 있고 깨끗하다. 주인 같아 보이는 노인이 본인은 중국인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아마 소통의 문제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셨다.

 

전형적인 중국 사합식 비슷한 양식으로 내부엔 작은 정원과 새장 등이 있었다. 새가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로 연신 노래?를 하니 집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주인은 연세가 많아 보였는데 내게 몇 번이나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더니 나중엔 아참, 한국사람이었지라고 하며 웃으신다. 한국어로 Good을 묻기에 '좋아요'라고 했더니 잊지 않으려고 노트에 적으셨다.

 

 

둘러보는데 집안에서 동네상인들이 만두? 를 빚으며 내게 권한다.  나도 좀 쉬어가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윤이 반들반들 나는 검은색 탁자에 앉았다. 그들이 빚고 있던 만두는 중국식 만두 같은 모양을 했는데 아줌마들은 베트남식과 믹스된 걸 주겠다고 했다. 실제 이름은  화이트로즈 white rose였다는 걸 나는 나중에 메뉴판에서 보고 알았다.

 

맛은 정말 좋았다. 나중에 들어온 서양커플도 나를 보며 연신 엄지를 치켜들며 미소 짓는다. 양이 좀 작아 더 먹을까 했지만 점심을 위해 참았다. 만두소는 새우와 야채였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곁들였다.

 

 

 (나중에 보니 주인은 내가 낸 만두값 5만동의 일부를 자릿세로 받고 있었다.)

 

주로 중국 광둥성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다. 매우 화려한 치장이 특징. 관우, 장비, 유비의 도원결의 내용을 담은 대형 그림들이 화려하다. 중국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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