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세 걸음만 흘러도 스스로 맑아지듯

내 안에는 마르지 않고 흐르는 치유의 힘이 있다.

 

-박노해의 걷는 독서 中-

 

 

 

마음시선 #15 스스로 맑아지듯 (youtube.com)

 

 

 

2024. 8.30. 금

 

원주친구의 제안으로 자연염색체험을 하러 갔다. 주로 쪽염색과 치자염색을 했는데 치자의 노란빛과 쪽의 푸른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체험자들에겐 인견 머플러가 제공되었다.

 

강사가 다양한 염색작품을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였는데 나는 쪽과 치자가 반반 물든것이 가장 좋아 보여서 비슷하게 흉내내기로 했다.

 

 

쪽과 치자물에 천을 담그고 물로 행군다음 식초물에 담궜다가 다시 행구고를 반복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집에 가져와 소금물에 다시 정련했다.

 

별것 아닌 듯했지만 지는 해에 물들인 천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풍경은 평화롭기도 하고 아름다웠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 제법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요즈음, 논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걸 보니 낮에 아무리 더워도 가을은 가을!

 

이천 호국원에 아버지 성묘를 다녀왔다. 가면서 보니 지난번보다 배우자 유골함이 많이 늘었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갈 때마다 눈에 띄게 늘어난다. 

 

 

엄마는 허리가 안 좋으셔서 순환버스를 이용해서 아버지가 계신 23 구역까지 갔다.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하기에 걸어서는 불가능하다. 납골당은 추석성묘객을 맞이하기 위해 벌써 청소도 해놓고 여름내 자란 풀을 베고 있었다. 돌아올 때 보니 성묘객이 점점 많아져 순환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제법 길다.

 

 

너무 덥고 해가 뜨거워서 실내 쉼터에서 쉬다가 여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동생이랑 점심을 먹었다. 언니는 다리를 다쳐 올해 추석성묘는 불참했다. 

 

 

복실이는 구들마을에서 기르는 개다. 구들마을 입구 산밑에 집이 있는데 목줄이 길어서 나름 동선은 길다. 내가 아침 산책을 가려면 복실이 집을 지나쳐야 하는데 어느 땐 짖고 어느 땐 본 척도 안 한다. 언젠가 복실이 집 근처에 있는 페퍼민트를 따러 가까이 갔더니 어찌나 짖는지 난감했는데 내가 손을 내밀자 언제 짖었냐는 듯 금세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제일 좋아한다. 가끔 콩물도 주고 닭고기도 주고 황태포도 주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복실이는 아무 때나 뜬금없이 나를 보고 짖는다. 선생님께 복실이의 괘씸함에 대해 얘기했더니 놀아달라고 짖는 거라고 해석해 주었다. 그래도 나는 복실이가 괘씸해서 못 본 척 며칠을 보내다가 다시 갔더니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린다. 복실아! 나랑 밀당하는 거지?

 

한 번은 매일 묶여있는 복실이가 하도 불쌍해서 사무장에게 내가 산책시키면 어떨까요? 했더니 작년에 어떤 입소자가 복실이 산책시키러 나갔다가 복실이가 하도 나대서 혼났다는, 즉 복실이에게 끌려다니느라 온 동네를 헤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 선생은 나름 복실이를 잘 제어해서 가끔 산책을 시킨다. 아무튼 복실이는 대부분 묶여있다.

 

반면, 고양이 제로는 우리가 고기회식을 하거나 모임이 있으면 어느 틈에 나타나서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사랑도 듬뿍 받는다. 둘이 비교가 돼서 나는 늘 묶여있는 복실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책도 못할 만큼 나대는 복실이라니 나도 포기하고 가끔 복실이에게 먹이만 주고 쓰다듬어주는 걸로 만족했다.

 

시골엔 진드기가 많아서 나도 물린 경험이 있는데 복실이는 사무장이 잊지 않고 약을 잘 뿌려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목을 긁고 있어서 살펴보니 털 속에 진드기가 보였다. 털이 많고 길어서 이름이 복실이가 된듯한데 진드기를 보니 큰일이다 싶었다. 이후 비도 계속 오고, 바쁜 일이 생겨서 복실이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진드기는 어찌 됐는지 확인도 못하고 그만 퇴소를 하고 말았다. 닭고기를 주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지금도 날뛰며 기뻐하던 복실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