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아버지 윤기현과 어머니 김순달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향 통영의 품에서 자란 윤이상은 13세 무렵 자신의 작품이 영화관에서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작곡가의 꿈을 키웠다.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작곡을 배우는 등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에 귀국하여 항일활동 중 1944년 체포되어 두 달간 옥고를 치렀다.

1967년 유럽에서 작곡가로 입지를 굳혀가던 윤이상은 국내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서울로 강제 납치되어 소위 동베를린 사건이라 불리는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되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최종심에서 10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옥중에서도 창작은 계속되었다. '나비의 미망인''율''영상'을 완성했다.

'영상'은 4년 전 방문한 평안남도 '강서고분'에 대한 음악적 해석이었다.

 

2년간 지속된 감옥에서의 고문과 병고 끝에 독일 정부의 조력과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ㅎ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으르기리게 티 등 동료 음악가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항의에 힘입어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다.

 

2006년 국가정보원의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윤이상이 연루도;었던 동베를린 사건이 1967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과장되고 확대 해석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이상 기념관 별채엔 그의 독일 집이 재현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머문 가구와 집기들이 있다.

 

서양음악을 했지만 그는 한국인이었고 동양적 영감을 음악에 접목시키려 하였다.

그가 북한에서 고구려 벽화를 보고 만든 '영상'엔 도교사상이 녹아 있다.

음 하나가 완전한 우주임을 말하는 윤이상, 

그는 한국과 통영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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