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깨 책방&카페

오전 11:00~7:30

휴일 : 월, 화

위치 : 여주시 북내면 중암리 357-2(여주시 북내면 중암 2길 49)

주차 : 뒷마당

 

집 근처에 이렇게나 멋진 책방이 있다니...!

 

주인은 50여 년간 모은 책과 음반을 한 곳에 모아

이곳에 책방 겸 카페를 차렸다.

 

 

안주인은 미술을 전공하셨다는데

역시 깔끔한 인테리어는 그녀의 손에서 나왔을 것 같다.

 

내가 학창 시절에 보았던 전집류와 단행본들이 이곳에 가지런히 놓인 것을 보니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예전에 나는

40세가 되면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작은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월급날이면 책 한 권과 음악 CD 1개,

영화 DVD를 사 모았다.

 

하지만,

40세가 되어갈 즈음,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모든 꿈을 접고

책도, CD도 DVD도 다 정리했다.

 

 

 

주인 부부와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다.

 

마침 평일이라 손님이 없어

책방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책을 읽고 돌아왔다.

 

가끔 비가 오면,

아님 날이 좋아서

아니면 그냥..

 

이곳을 찾아보고 싶다.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면

난 참 재미없고,

고지식한 사람에 속한다.

 

오랜 세월 그리 살아온 내가 하필 이 나이에

이 갑갑한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그림 그리기다.

 

그러니까 내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재능이 있거나,

미적 소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3년 전 대학 평생교육원에 등록해서 

연필로 뭘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미가 붙어 민화도 조금 배웠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 모든 상황에 재를 뿌렸다.

강의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집에서 혼자,

가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시간도 잘 가고, 성취감도 있고

뭔가 잘 그린 것 같은 작품? 이 나오면

자랑도 한다.

 

목포여행을 준비하며 독립 책방을 검색하다가

'고호의 책방'을 알게 됐다.

 

어쭙잖은 그림 그리기 취미 덕분에 선택된

고호의 책방은 예술, 혹은 미술 관련 책이 많다고 했다.

마침 목포의 명물 빵집 '코롬방제과'도 갈 겸

겸사겸사 들러보았다.

 

오후 시간이고 평일이라 그런지 책방은 한가했다.

과연 그림 관련 책들의 화려한 표지가 시선을 끈다.

 

둘러보다 보니

내게 아이패드를 사게 만든 유튜버 작가 '이연'씨가 쓴 책도 있다.

그 옆에 있던 영어로 쓰인 책도 

그림 공부에 도움이 될듯싶어 한참 펼쳐보았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책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꽃그림책.

박미나 작가의 '빨강머리 앤의 정원'이라는 책을 사기로 했다.

 

주인과 결재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서

이 책을 산다고 했고,

주인은 그럼 한번 여기서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다.

 

책방지기 주인은 백선제氏다.

 

주저하는 내게 틈도 주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복종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방 한편에 있는 작은 공간에 앉은 주눅들은 나에게

백선제 씨는 나만을 위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펜 드로잉 설명은 얼마나 진지하고 재미있던지

마치 연필을 당장이라도 쥐어주면

아주 잘 그릴 것 같은 착각까지 하게 했다.

 

설명을 마치고 그는 실제로 연필을 그려보자고 했다.

난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난 연필을 그려본 적이 없으니

 

솔직히 많이 당황했지만,

난 어떤 부분을 먼저 그려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관찰'을 얘기했고,

'끝까지 그리라'는 얘기를 했고,

선을 그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한선으로 그으라'했고,

'특징'을 잘 파악하라고 했다.

 

암튼 난 그의 설명을 들으며 생애 최초의 연필그림을 완성했다.

아래 사진은,

그날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집에 와서 복기하며 그려본 것이다.

 

 

그의 강의는 계속되었고,

중간중간 서울에서 목포에 내려와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도

제법 흥미롭게 곁들여졌다.

 

그는 목포에서의 삶에 매우 만족해했고,

목포음식에도 매우 진심 어린 애정을 보였다.

 

내가 살던 강릉에서 공군으로 군 복무를 했다는 대목에선 

세상이 참 좁기는 하다는 생각에 웃음도 나왔다.

 

무엇보다 그의 강의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이다.

 

그러니 그림을 그릴 때 똑 같이 그릴 수도 없고,

'내 마음대로 내가 보는 대로 그려야 한다' 고도했다.

 

그렇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세상이 정한 모습이나

타인의 눈으로 보지 않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사물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사려고 만지작거렸던 영어로 된 책을 가져오더니

예를 들어 설명했고,

난 떠날 때 결국 그 책을 사겠다고 했다. 

 

 

 

그의 강의가 2시간을 훌쩍 넘길동안,

다행히 손님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난 전문가의 값비싼 그림 강의를

오롯이 독차지할 수 있는 행운을 마음껏 누렸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여행운이 좋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렇게나 멋진 강의를 해준

백선제 씨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열정적인 그의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후 

한껏 고무된 나는

1일 1 그림을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구매한 책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봐주면 좋겠다.

 

 

 

백선제 씨의 도움에  힘입어

나의 그림 취미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도시반, 시골반 조용히 바쁜 원주.

북크닉 원주! 를 통해 독립서점과 특색 있고 개성 있는 서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찾은 '터득골 북샵'

산길을 꼬불 고불 오르며 과연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까 걱정까지 하며 갔더니

정말 주인장의 개성 넘치고 매력 넘치는 숲 속 책방이 떡 하고 나타났다.

 

온 사방이 산으로 나무로 둘러싸인 터득골북샵.

주인의 섬세한 글귀도 읽어 보고,

주제별로 나뉜 작은 책방을 기웃거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늦은 오후라 커피보다는 다른 것을 주문하려다 눈에 띈 '팥죽'

책방에서 먹는 팥죽 맛은 일품이었다.

 

원주에 머물러 있는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작품집도 반가웠고,

'터득골북샵'을 주제로 한 안현지 논문집도 특이했다.

서점지기가 만들었다는 책 '오냐 나무'와 '오냐 로드'도 너무 좋았다.

 

저 멀리 산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있으려니

우드스탁에서 들리는 바람 지나는 소리가 너무 맑아 마음도 이내 맑아지는 듯했다.

 

봄날 오랜만의 나들이는 

터득골이어서 더욱 즐거웠다.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만, 책과 자연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터득골을 

어찌 안 올 수 있을까?

 

나무에 물이 오르면 다시 찾아가야겠다.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겠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답하겠다.

나는 스스로 자중하면서 즐거운 위로로서

좋은 집과 좋은 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이제 모든 인간사회가 지녀야 할 즐거운 목표라고 생각한다.

 

윌리엄 모리스 평전에서, 터득골북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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