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
쯔비벨무스터 찻잔을 사고 오랜 시간을 그냥 보냈다.
겨우 내 보살펴 주었더니
바이올렛이
각각 분홍과 보랏빛으로
꽃망울을 터뜨렸기에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잔을 데우고
느릿느릿 기어드는 오후의 햇살을 음미하며
차를 마셨다.
쯔비벨과 나의 바이올렛이 함께 했다.
맛있다.
허무도 이 순간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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