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렸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미케비치를 찾았다. 광활한 해변이 정말 끝이 없었고 절로 걷게 되었다. 주로 맨발로 걷는 여행자들이 많았는데 마침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바구니배를 이용한 고기잡이가 한창이었다. 바구니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아가 그물을 치고 다시 여럿이 그물을 잡아당겨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는데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을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보잘것없었다. 쓰레기반 작은 물고기 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몇번을 반복해서 그물질을 했다. 여자들도 함께 줄을 당겼는데 작은 힘을 합해 장단을 맞춰 줄을 당기는 모습이 꽤나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보였다. 그들에겐 삶이고 현실이고 경제활동이었겠지만...

 

 

요가선생님의 출장에 동행했다. 선생님이 연수에 참가하는 동안 나는 영월투어에 나섰다. 고심 끝에 인도미술박물관으로 정했다. 영월에 몇 번 들렀지만 인도미술박물관은 처음이다. 민화박물관과 책박물관도 둘러보려 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인도미술박물관은 폐교자리에 박여송 관장이 인도를 다니며 모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티켓을 끊자 직원이 관장님이 지금 설명을 하고 있으니 가서 들으라고 재촉한다. 관장님은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지만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인도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관장님은 먼저 온 두 분에게 인도의 미술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고 나는 여러 미술품 중 그림자를 보기 위한 등잔에 시선이 멈췄다. 관장님이 빛을 비추자 새와 동물들이 하얀 벽에 그림자를 이루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선명한 윤곽을 보여 주었다.

 

 

 

 

이곳엔 다양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손으로 직접 만든 여성들의 작품이 가장 아름다웠다. 바느질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어느나라던 여인들의 삶이 순탄치 않아 보여 마음이 아프지만 고된 노동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핸드메이드 작품들은 그래서 더 귀하고 아름다웠다.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그림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수작품들!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하다.

 

 

작품을 감상하고 관장님께 짜이를 시켰더니(6천원) 인도에 갔었냐고 물으시곤 인도의 음식도 맛보겠냐고 하신다. 당연히  맛보겠다고 하니 접시 가득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셨다.

 

인도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고 추위에 떨며 마셨던 뜨거운 짜이, 새벽 열차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뒤 추위에 웅크리고 앉아 짜이 파는 소년을 불러 마신 달콤하고 따뜻한 짜이, 어느 땐 그 맛이 그리워 인도에 다시 가고 싶기도 하다. 이곳 미술관의 짜이는 약간 싱거운듯 했지만 함께 나온 토마토소스와 고수대신 넣었다는 관장님표 참나물소스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레시피북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요가샘을 졸라 인도요리를 배우기로 잠정 허락을 받았다.

 

아무튼 내가 짜이를 시키는 동안 한 무리의 단체손님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카톡의 여행자클럽에서 만난 여인들로 어찌나 유쾌하던지... . 그러더니 미술관에서 파는 인도스카프를 하나씩 사곤 페이즐리와 연꽃문양에 색을 칠하며 또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무료로 제공하는 인도사리를 입고 인도콘셉트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더니 급기야 내게까지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워했다. 그녀들의 수다에 혼이나가 점심도 굶고 놀다 보니 3시가 되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이번 인도미술박물관 탐방은 의외의 사람들을 만나 좀 산만했으나 그만큼 또 즐거웠다. 벌써 함께 여행하자고 카톡안내도 보내왔다. 그림을 잘 그리는 회원과 인스타그램의 인기 사진작가, 인제에서 온 민화선생님까지 다양한 곳에서 유쾌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유쾌하고 즐거워졌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가을의 하루를 보내고 왔다.

 

 

강릉에 살 때 엄마집을 가려면 으레 지나가던 횡성, 그곳에 미술관 자작나무숲이 있다. 언젠가 횡성 풍수원성당과 함께 들렀던 곳, 원종호관장이 직접 심고 가꾸었다는 미술관은 벌써 10여 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쇠락해 있었다. 입장료에 음료값이 포함되어 잠깐 앉아 비치되어 있는 사진집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2024.8.9. 비

 

여름이지만 정말 덥다. 평창은 그나마 시원해서 다시 원주로 갈 때마다 기온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평창에 도착했더니 선생님께서 어제 싱가포르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한다. 함께 점심을 준비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손님부부가 복실이를 산책시키고 오신 거다. 두 분은 싱가포르에서 어제 도착하셨고 바로 평창 요가샘을 보러 오셨다고 한다. 참 각별한 손님인가 보다. 두 분은 선생님이 인도에 있을 때 알던 분이고 스와미 라마와 스와미 베다 두 스승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한다. 물론 연세가 있으시니 그럴 확률이 높지만, 평창에 와서도 관광은 하지 않고 구들마을 주변을 산책하며 조용하게 여행을 즐기고 계신 걸 보면 보통 평범한 분은 아닌 듯하다.

 

점심으로 콩국수와 한식을 준비했는데 두 분은 정성껏 드시고 뒷정리까지 하려고 하셨다. 연세가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사모님은 아직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일할만큼 건강해 보인다. 단지 우리의 좌식생활 때문에 무릎이 많이 불편한 것 빼고는 식사도 잘하시고 입에 맞지 않을 것 같은 한식도 잘 드신다.

 

오후엔 고선생과 정교수도 합류했고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긴 시간 '융쾅'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선생이 융쾅선생님께 스와미라마를 처음 만났던 정황을 여쭙는 것이 계기가 되어 한 시간 넘게 스와미 라마와 명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융쾅선생님의 목소리는 매우 온화하면서도 낮고 따듯했다. 요가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동시통역을 해 주셨다. 다음은 그날 내가 들은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찍은 후 대충 정리한 것이다.

 

 

* 스와미라마와의 만남에 대하여(융쾅)

 

-  스와미라마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와 특별한 개인교류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신실하게 꾸준히 명상을 한다면 스승과 같은 레벨의 의식으로 그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준비하고 신을 만나고자 할 때 신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신과의 만남은 당신의 마음과 의식 수준에 달려있습니다.

 

-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신을 만들고 그러한 신을 만나려고 합니다. 내 틀 안에 있는 신을 만나려고 합니다.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신은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에게 무엇을 구할 때도 내가 한정지은대로 , 당신이 오시는 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 오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도 괜찮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신이 우리에게 오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원하는 대로 접속할 수 있도록 나를 확장해야 합니다.

 

- 나는 평소 크리슈나나 예수, 부처에게 기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진리와 만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기도는 굉장히 심플했습니다. 그리고 신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하지 않고 내가 신을 향해 터닝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의 특징인 '사랑, 기쁨, 진리'를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스와미 라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납니다. 그분을 만나려 한다면 진정성과 진실함, 결단력 같은 마음의 힘이 중요합니다.

(요가선생님의 스승께서도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명상할 때와 같음을 유지하고 호흡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하셨고 굳은 결단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다고 덧붙였다.)

 

- 1986년 스와미 라마가 싱가포르에 오셔서 나도 사람들과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늘 하던 대로 사랑, 기쁨, 진리를 생각하며 명상을 했는데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고 명상 중에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으며 계속 집중하게 되었고 몸은 더욱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우주의 신성한 에너지가 몸에 들어올 때 우리는 몸이 반듯하게 세워집니다. 우리가 먼저 밖을 정돈하고 안을 정돈하면 내면의 힘이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스와미 라마가 싱가포르에 왔을 때 나는 그분에 대해 잘 몰랐으나 매우 흥미로운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분과 명상 중에 나는 더욱 고요해지고 그가 최고의 존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분은 넘버원이었습니다.

 

- 처음엔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에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이전부터 계속해오던 사랑, 기쁨, 진리를 탐구했기에 그분을 만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내면은 점점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진 것처럼 여러분도 그런 방법으로 스와미라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스와미라마의 이야기가 끝난 후 유명한 철학교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스와미라마가 이야기했을 때 느낀 아름다운 내적충만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푸우~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마는 내면으로부터 말하고 교수는 지성을 통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고선생은 융쾅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본인도 융쾅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파장을 함께 느꼈다고 했다.

 

오늘 뜻밖에 손님으로 오신 융쾅선생님으로부터 스와미 라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특별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금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고 뜻밖의 나를 만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긴 이야기를 듣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모임을 마무리하려 할 때 융쾅선생님이 뜻밖에 오늘 오후 9시에 당신이 명상지도를 해 주시겠다고 제안하셨다.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너무 놀랍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미소가 만발했다. 설거지를 빨리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9시가 되자 우리는 강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융쾅선생님과 함께 명상을 했다. ( 명상 중에 나는 매우 중요한 경험을 두 번째로 했다. 지난번 명상에서는 첫 번째 의미 있는 체험을 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매우 기쁘고 행복한 체험이라 기록해 둔다.)

명상이 끝난 후 융쾅선생님은 다리가 아프다고 양해를 구하시더니 의자에 앉으셨고 이어 질문을 받겠다고 하셨다. 이야기 중에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 등산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져서 돌아오는데 그것이 혹시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회피하는 것인가? 에 대해 물었고 융쾅선생님은 등산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나중에 고선생과 좀 더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꼈다) 

 

 

밤이 깊어 선생님 부부는 숙소로 가시고 우리는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강당에서 함께 잤다. 새벽 빗소리에 눈이 떠졌고 선생님부부는 6시에 평창역으로 가셨다. 올 11월쯤 다시 올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고...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무례? 함을 무릅쓰고 동영상을 찍어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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