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내가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독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요새 열심히 보고 있는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때문이다.
목포여행을 준비하며 목포가 처음이라 갈 곳이 많았지만,
근현대사 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었다.
역사의 질곡이 담겨 있는 아픔도 그러려니와,
요새 열심히 보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차승원과 이정은이 고교 때 수학여행 온 목포 근현대사 박물관 앞에서
예전 고교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 때문이다.
'미스터 선샤인'이후 나의 최애 드라마가 된
'우리들의 블루스'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들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들의 아픔과 말 못 하는 사정에 감정이 이입돼서,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의 고민과
어긋난 시간들이 남일 같지 않아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리고 과거에 엉켜있던 인물 간의 이야기가 너무
아파서
또, 아름답게 느껴진다.
좀 이른 시각에
박물관을 먼저 찬찬히 둘러보고,
드라마 찍은 곳을 열심히 찾느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유달동 사진관'을
처음엔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
다시 미련이 남아
드라마를 생각하며
'유달동 사진관'을 지나가다가
문뜩,
지금 가장 나다울 때,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드라마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그 아름다운 조우가
벌써부터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사실 그동안 난 독사진을 거의 안 찍었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더구나
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하면서
정작 내 사진은 5장이나 될까?
때문에
과거의 나는 있는데 정작 현재의 나는 없다.
사진을 안 찍으니
현재의 나를 확인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사진관에서.
사진사는 뜻밖에 젊은 아가씨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신경 좀 쓰고
화장도 좀 잘하고 나올걸,
살짝 후회하며 가게를 둘러보니
여러 명의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젊은이들의 콘셉트 사진이다.
잘못 왔나?
이윽고,
그녀가 가격과 옷매무새 정리에 대한 안내를 하는데
내 귀에 낯익은 음악이 들려왔다.
가게 안을 흐르는 음악은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ain't no sunshine'
나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애쓰다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 노래 직접 선곡했나요?
그녀는 직접 노래를 선곡한다고 했고,
내가 재차 어떻게 이런 옛날 노래를 아냐고 했더니
부모님 나이도 그렇고 해서 듣고
또,
나 같은 나이의 손님이 오면 튼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아니 손님에 맞춰 음악을 선곡한다고?
그녀는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나를 안심시켰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게 하느라 애썼고
굳어버린 내 얼굴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맘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동안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자꾸 질문을 했는데
무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임에도
그녀는 매우 진지하게 대답을 잘해 주었다.
대학을 다니다가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혼자 서울에 가서 드디어 사진가가 되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요새 젊은이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야무지고 전문가다운 자세로 손님을 대하고
손님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음악을 선곡하고,
그러면서도 친절한 그녀의 태도는
참으로 멋졌다.
나도 저 나이에 저랬었나?
의문이 든다.
그녀가 찍은 흑백사진 속의 나는
참 많이 낯설었다.
뽀삽은 절대 안 한다는 이유로
더 적나라하게 보인 사진 속의 나는
정말 나일까? 싶었다.
노안이 오고부터는 거울을 봐도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거울은 대충 윤곽 보는 용도로 보고 지내다가
돋보기 쓰고 제대로 본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이제 열매로 치자면 한참 무르익다가 말라가는 중.
이렇게 지금 본래의 내 모습을 확인한 사건은
결국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때문이다.
더불어,
그녀의 재치와 젊음.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해 준 흘러간 팝송.
나의 젊은 날과
'우리들의 블루스'의 주인공들까지 오버랩되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나와 함께하는
이 목포여행이
난,
갑자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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