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파정

경포호수 가운데 있는 정자로 송시열의 글이 새겨진 새바위에 있다.

* 경포호는 명승 제108호로

과거 바다였던 곳이 해안사구로 막히면서 형성된 자연석호이다.

 

호수가 거울처럼 맑아 경호라 하였으며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하여 군자호라고도 불렸다.

 

호수 가운데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조암(鳥岩)이 새겨져 있는 새바위에 정자 월파정이 있다.

 

경포호 주변에는 누정이 많은데 신 증 동국여지승람에는 12개로,

여지도서에는 16개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경포대를 비롯한 해운정, 경호정, 금란정, 상영정 등 정자가 있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해운정

-해운정은 조선 중종 25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촌 심언광이 건립한 별당 양식의 정자이다. 예전에는 정자 앞까지 경포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정자 앞에 작은 연못이 있다. 정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소박하다.

해운정에는 명나라 사신이 쓴 경호어촌 현판과 시가 있으며 오희맹이 쓴 해운소정, 송시열이 쓴 해운정 현판, 율곡 이이, 박광우, 송규렴, 한정유 등이 쓴 시문이 있다. 그의 후손이 주변에서 두부요리를 하는 식당을 하고 있다.

 

 

* 경호정(鏡湖亭)

1927년 주민들이 창회계를 조직하고 강신 활동을 위해 건립. 해서와 전서로 쓴 경호정 현판이 걸려 있다.

 


* 금란정(金蘭亭)

 

경포대 못 미쳐 우람한 벚나무 뒤편으로 '금란정'이 있다.

이 정자는 조선 말기 선비 김형진이 경포대 북쪽 시루봉 아래에 건물을 짓고 매화를 심어 학과 더불어 노닐던 곳이라 '매학정'이라 불렀다. 그 후 '금란계원'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현 위치로 옮겨진 후 금란정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안내문 참조).

오래전 내가 도서관에 근무할 때 금란계의 총무이신 분이 금란계원 문집을 기증하겠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이제 계원들의 연세가 많고 한시를 짓거나 한문으로 문장을 짓는 이가 없어 금란계 문집이 거의 마지막일 듯싶다고

하시며 자신의 나이가 그중 젊어 총무라고 하셨다.

지금쯤 모두 돌아가시고 금란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듯싶어 아쉽기만 하다.

 

 

* 활래정

선교장 행랑채 바깥에 있는 정자로 방지 가운데 삼신선산을 모방한 가산을 만들어 노송을 심었다. 

오래전,

선교장 활래정에 연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8시쯤 도착하니 문을 안 열어 당황했다.

연꽃 필 무렵이니 여름이라 해가 퍼져 연꽃사진을 좀 더 멋지게 찍고 싶은 욕심에

좀 일찍 들어가면 안 되냐고 했더니 안된단다.

안을 들여다보니 숙박을 겸하는지(고택체험 숙박)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암튼 한 시간을 주차장에서 기다린 후 표를 끊고 들어가 바로 활래정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조금 후 관리인(?)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더니 혼자 뭐라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데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깜짝 놀랐다.

혼자 중얼거리듯 '표도 안 끊고 와서...'라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나는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냐고 물으니 말끔히 쳐다보는 기색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난 정말 화가 나서 당장 매표소로 가자고 관리인을 데리고 가서

매표소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나를 보고 표도 안 끊고 와서 라는데

내가 표를 안끊고 왔냐고 하면서 표를 보여주고(물론 그 시간에 나밖에 없었으니 확인이고 뭐고 명백한 일이다)

여기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옆에 멀찍이 서 있다가 내가 표 확인하는 걸 보더니 벌써 어디론가 도망쳐 사라졌다.

나는 괜히 매표인에게 넋두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스러우면 표를 보자고 하거나 매표인에게 물으면 될걸

들으라는 듯 표도 안 끊고 왔다고 도둑 취급하는 말을 흘리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암튼 매표인이 대신 내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해서 마음이 좀 누그러지려는 찰나,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이 사람이 아까부터 와서 왜 자꾸 시끄럽게 하냐며 나를 보더니 밖으로 나가란다. 

난 더 깜짝 놀라 '나가라고요?'  '당신은 또 누구냐?'니까

내가 주인인데 아침부터 왜 남의 집에 와서 떠드냐는 것이다.

(떠들다니... 난 목소리도 작고 잘 따지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조용조용 얘기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지만 느닷없이 소리 지르며 '표 물러줄 테니 나가라'라고 쫓는 것이었다.

 

난 정말 창피해서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재수가 없으려니 하고 돌아설 밖에.

 

게다가 나도 강릉에서 꽤나 점잖은 포지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누가 볼까 거기에 더 머물고 싶지도 않고.

암튼, 미친 듯 소리 지르는 사람과 같이 소리치고 싸울 수 있는 사람도 못된다.

 

주차장에 돌아와 마음을 추스르는데 이를 모두 보고 들었던 매표인이

주차장까지 쫓아와 정말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한다.

매표인이 왜 사과를? 

 

집에 돌아와 강릉시청에 전화를 하고 오늘 사건을 얘기했다.

더구나 선교장은 강릉시에서 재정 지원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공무원이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다 듣고 나더니 한숨을 푹 쉬며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집의 이런 면면이 나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강릉시와의 문제, 방문객과의 문제 또한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겨울에 멀리서 선교장을 보려고 왔다가 문이 잠겨서 그냥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기 소유라고 아무 때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나보다.

 

위의 활래정 사진은 그날 찍은 것이다.

이후 선교장 근처도 안 가고 강릉에서 살았다.

 

이때 사진도 대부분 지웠는데 몇 개 남아있는 걸 찾아냈다.

선교장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그날의 사건을 잊지 못한다.

 

자초지종은 들어보지도 않고

'내 집에서 나가라' 고 소리치던 그 아저씨가 너무 싫어서다.

본인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경포팔경은 다음과 같다.

1. 녹두일출 錄荳日出 한송정 터에서 보는 일출

2. 증봉낙조 甑峰落照 시루봉 일몰의 낙조

3. 죽도명월 竹島明月 죽도에서의 달맞이

4. 강문어화 江門漁花 바다와 호수에 비친 고깃배의 불빛

5. 초당취연 草堂炊燃 초당마을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6. 홍장야우 紅粧夜雨 홍장암에 내리는 밤비

7. 환선취적 喚仙吹笛 환선정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

8. 한송모종 寒松暮鐘 한송정에서 치는 저녁 종소리

 

하늘과 바다, 호수와 술잔과 님의 눈동자에 비친 5개의 달을 맞이할 수 있는 달맞이 명소이기도 하다.

 

 

* 경포대 현판 글씨 - 유한 지(1760~?) 조선 후기의 문인, 서예가

 

* 경포대

-명승 제108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 고려말 1326년 창건되었다. 여러 번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1897년 부임하여 1899년까지 강릉 군수를 역임한 정헌시에 의해서라고 한다.

 

-조선초에는 태조와 세조의 순력이 있었으며 경포대에서 경포호를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다워 시인묵객의 경승처로, 시문학 및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며, 신라시대 호랑들의 순례처로도 알려졌다.

 

-율곡이 10세에 지었다는 경포대부와 숙종 어제시를 비롯한 명사들의 기문과 시판이 걸려있다.

 

 

 

* 삼가 박수량의 경포대 시

鏡面磨平水府深  거울 같은 경포호수 맑고도 깊어

只鑑形影未鑑心  형상은 비추어도 속마음이야

若敎肝膽俱明照  호수가 마음까지 비춘다면

臺上應知客罕臨  경포대에 오를 사람 몇이나 될까

 

* 어촌 심언광의 경포대 시

芙蓉不獨古名城  부용만이 유달리 알려진 고장일까

採採蘋花亦稱情  마름꽃 따는 광경 또한 정겹기만 하네

道察飛潛魚鳥在  새가 날고 고기 뜀도 모두가 깊은 이치

理包高下海山成  높고 낮음 분리하여 산과 바다 이루었네

 

江湖寂寂英雄去  영웅은 가고 없고 산하는 쓸쓸한데

天地悠悠日月行  천지에는 해와 달만 유유히 운행하네

仙訣未求醒醉外  취했다 깨는 길이 신선되는 비결이라

永郞殘石酒痕明  영랑 신선 노닌곳에 술 자국 완연하네

 

 

경포대를 늘 지나며 출퇴근한 적이 있다.

그때 직장은 초당동에 있고 집은 교동택지에 있어서

경포호수를 빙 돌아 출근하다 보면,

계절마다 바뀌는 호수의 물빛이며, 물고기들의 도약에 마음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경포대 주변의 꽃들도 너무 아름다워 가끔은 출근하다가

샛길로 빠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야근하고 돌아갈 때면

경포대에 색등을 켜놓은 것이 매우 신비로웠고

호수는 마치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봄이면 벚꽃을 보러 가고

주변에 있는 금란정이나

근처의 해운정도 가끔 갔었는데

한참 사진에 관심을 갖던 때라 아침 일찍이나 빛이 좋을 때 찾았다.

 

지인들이 오면 으레 경포대를 가자고 해서 함께 걷지 못하면 차로 드라이브를 했다.

강릉 토박이 김 선생님은 경포 주변에 상가가 자꾸 생기고

박물관이 들어오거나

주차장이 넓어지는 걸 늘 경계했다.

언젠가는 해일이 온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실제로 2002년 루사로 수해가 났을 때 경포대 주변 상가가 침수됐고

나도 출근하다가 앞차가 물에 빠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빽으로 나와서 혼비백산한 기억이 있다.

 

이제 경포대를 올라보면

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툭 트인 조망을 자랑하는데

근래에 엄청난 위용의 호텔이 들어서 바닷가 쪽 시야를 압도해 버린다.

 

경포대의 벚나무가 나날이 굵어지고 고목이 되던 어느 해

벚나무 몇 그루가 안타깝게도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 경포대 앞쪽은 그냥 언덕이지만 예전엔 그곳에 굵은 벚나무 몇 그루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이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다만 7번 국도에서 경포대 들어오는 입구의 벚나무들은 관리를 잘해서

해마다 멋진 경치를 보여 준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이다.

하지만 그냥 친구가 됐다.

 

내가 학산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을 고치고 마당을 만들고

텃밭에 바질과 블루베리를 심을 즈음

그녀는 과감히 직장을 접고

그녀 또한 명주군왕 릉 근처에 시골집을 마련했다.

 

나는 내가 아끼던 묵은 기와에 그린 그림과

내가 아끼던 휘어진 옹기항아리와

내가 아끼던 파란 수국과

내가 아끼던 토분을 주었다.

그녀와 그녀의 집에 딱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밥을 차려주는 친구다.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나물을 삶고

찌개를 끓인다.

 

며칠 전 대관령에 날이 풀려 쑥이 나왔다고 그녀가 전화를 했다.

나는 부리나케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내가 안 가본 바우길로 안내했다.

쑥을 얘기하면서 걷기를 준비한것이다.

 

중간에 너무 멋진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뷰를 가진 곳에 서서는

크게 손짓을 했다.

정말 감탄할 만한 멋진 장소였다.

 

봄볕에 흥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그녀는 자리를 깔고 있었다.

 

작은 개울물 소리가

마치 찻잔에 차를 따르는 소리로 들릴만큼 멋진 곳에

자리를 잡고 그녀는 먹을거리를 펼쳐놓았다.

나를 위해 소풍 자리를 마련한

그녀는 나의 친구다.

 

그녀의 집은 햇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대관령 바람이 지나가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들린다.

그곳에서 바람과 햇빛과 꽃과 나무,

그리고 자신과 더불어 살고 있다.

우린 서로를 가리키며 도대체 무서운 게 뭐냐며 서로를 놀린다.

 

요즘 그녀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가고 있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또 부럽다.

 

햇살을 마주하고 나는 그녀와 긴 얘기를 했다.

 

그리고 침묵과 혼자 있음이 더 필요함을 느낄 때쯤 

헤어졌다.

 

그녀가 찾는 그것이

내가 찾는 그것이 될 수 있길 기원해본다.

 

집에 돌아와 나는 그녀가 나눠주어 더욱 많아진 쑥을 넣고

쑥 버무리를 했다.

 

쑥을 씻다가 두릅 3개를 보았다.

그녀가 첫 두릅이라며 따 준 거다.

 

쑥과 올해의 첫 두릅을 입에 넣으니 향기가 진하다.

 

그녀와 함께 한 봄이 무르익어간다.

 

 

사실 난 돼지고기 요리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돼지고기에서 나는 냄새에 좀 민감한 편이라 즐기진 않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세상엔 돼지고기 말고도 먹을게 아주 많다.

 

태백산 등산 후 중간에 간식을 먹은 터라 뭘 먹기 애매해서 

장성 장날구경을 하려고 장성시장엘 갔다.

그런데 시장 주변이 조용한걸 보고 이상해서 날자를 보니

내가 장날 날자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어이쿠 참, 낭패다 싶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자칫 밥때를 놓칠것 같아서 장성 중앙시장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작은 동네라 장사를 문을 열려있는데 주인도 없고 불러도 아무도 반응이 없다.

 

그러다 혹시나해서 문이 열려있는 '먹어봐유 돼지국밥집'을 들어가서 

문 연 집이 없어 굶게 생겼다고 궁시렁 대니 국밥 하나라라도 드시겠냐고 하기에

별 기대도 안하고 그러겠다고 했다.

 

잠시 후 국밥에 간단한 밑반찬이 나왔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금새 비웠다.

사실은 부산물을 너무 많이 주셔서 조금 남겼다.

 

돼지국밥을 먹은것도 처음이려니와

그와 비슷한 순대국밥은 항상 돼지 특유의 냄새를 느꼈었는데

이 집은 어떻게 요리했는지 정말 맛있었다.

 

주인아줌마에게 너무 맛있다고 밥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하고

돌아왔다.

 

혹시 장성에 가거들랑 '먹어봐유 돼지국밥' 한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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