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롱센의 홍야오족을 찾았다.

야오족 중에서도 화려한 복식을 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다.

 

 관음각에 숙소를 정하고

추위에 떨며 밤을 보냈다.

불기운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솜이불에 의지한 채

옷을 몽땅 입고 자던 그 추운 기억들.

 

 

 

 

 

 왼쪽 할머니는 한쪽 눈이 잘못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말할때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답다.

산을 오르며 그녀가 부르던 홍야오족 노래를 녹음하지 못한것이 너무 안타깝다.

 

더구나 손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어느틈에 수를 놓아 손수건 한장을 사라고 내놓는다.

   

왼쪽의 여인은 2001년 이후  나와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는데

홍야오족의 긴 머리는 예로부터 유명한 듯..

 

약간의 돈을 요구하더니

긴 머리채를 주저없이 풀어헤쳐 그녀들의 올림머리 모양을 재현해 보였다.

 

아마도 태어나면서 계속 머리를 기르는듯 하다.

 

가끔은 가채를 머리에 묶어 올린 홍야오족 여자들도 있었는데

이 여인의 머리칼은 진짜였다.

 

롱센의 티티엔(梯田계단식 논)은 한 겨울이라

멋진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봄이 되어 논에 물을 대면 장관이라고 한다.

 

 

  

이곳엔 장족도 살고 있었는데

이곳 장족은 티벳의 장족(藏族)과 달리 장족(壯族)이라 불린다.

아마 광시장족할때의 장족인것 같다.

 

평상시 그네들 복식은크게 유별나지 않다.

아마  축제때나 명절이 되야 그들의 복식을 볼수 있을 것 같다.

 

 

 

이후.....

세월은 흘러...

2003년 겨울

다시 롱센 야오족을 찾았다.

 

사진속의 그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벌써 둘째를 낳았고

그녀의 집도 둘러볼 수 있었다.

 

 

 

 

 물론 한쪽 눈이 안좋은 할머니도 다시 만났고...

두분 다 어렵지만은 않은 살림을 사는 것 같아

다소 안심했다.

 

단지 그녀집에서 먹은 닭값이 넘 비싸서

약간 불쾌해지려는 것만 빼고는... 

 

 

이젠 그녀들 뿐만 아니라

관광지가 되버린 까닭에

많은 야오족 여인들이 머리를 풀어 관광객을 모으는 일이 흔해지고

관광상품이 되어버렸다.

 

 

 한번 다녀 온 곳을 다시 가기란 참 어렵고도 쉬운 일이다.

중국처럼 넓은 곳인경우는 더 그렇다.

 

두번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홍야오족의 두 여인!

 

 

 

 

 

 

 

 

 

 

 

 

 

2001년 12월

 

지도 한장에 의지한 채

귀동냥으로만 듣던 정양 풍우교를 찾았다.

 

 

  

주로 동족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오면서 만난 묘족과 화려한

홍야오족의 모습을 보고

이제 막 소수민족에 반해가기 시작했다.

 

 

 

동족 어린이들.

 

 

 

 

머리에 흰 수건을 쓴 모습이 전에 우리 엄마들이

일할때 수건을 쓰던 모습과 언듯 비슷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2004년 2월,

 

이곳을 다시 찾은 날은

우연히도 신년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날이었다.

 

구정이 며칠 지난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온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로 이 행사는 거창했다.

 

누군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네들이 믿고 있는 듯한 토속神을 수레에 싣고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모여

장난치듯 따라가고 있다.

  

전통복장에 검은 썬그라스(날씨 흐림),

그리고 챙이 넓은 카우보이 모자! 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예쁜 소년들을 꽃처럼 단장시켜

 

행사에 참여시킨 것이다.

 

이 아름다운 행렬을 보게 된 것 정말

 

행운이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어른들에게 전통주를 대접하고

손님들에게도 권한다.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과 함께

새해의 정을 나누는 흥겨운 분위기로

동네는 한동안 시끌벅적 하다.

 

이런 동네잔치가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 이젠

 보기 드믈게 되었다..

 

 

 

 

 

 

 

 

 

 

토루(土樓)를 보는순간 

그곳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토루를 다녀온 후

이곳은 제게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있도록 용기를 준 곳...

 

 

 혼자서도 여행을 할 수있겠구나~ 하고

용기를 준 곳이 바로 이곳 토루여행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을 몰랐고 그래서 자동카메라 하나 들고

무작정 떠났으니까 참,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게 바로 저 였습니다.

 

 

토루의 모양은 둥근것과 네모난것이 있습니다.

객가인(客家人)들이 이곳에 이주해와서 지은 성이라는데

 

 

아직도 이렇게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시는 우물도 잘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빠사는 귀주성과 광시성의 경계에 있는 마을입니다.빠사라는 마을을 알게된 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2002년 1월 광시성의 산지앙(三江)을 찾았다가 우연히 중국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이 사람들이 내가 중국소수민족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본인들도  가려는 이곳을 저에게 안내했습니다.

 

 

 

여자분은 중국의 무슨 잡지사 기자라고 했고 남자분은 언어학자라고 했는데나중에 보니 둘은 연인이더군요.오래전 일이라 메모를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다녀 온 후 이메일도 몇 번 오고갔는데 이름도 까맣게 잊었네요.

 

빠사에 도착해선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이곳에 대한 정보가 전혀없어 무작성 마을로 들어갔습니다.맨처음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이곳 빠사의 묘족 어린이들과 변발의 묘족 남자를 보았을땐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와 마을이 온통 캄캄해지고어둠속에서 변발의 묘족들이 하나 둘 나타날때의 두려움과 경이로움이란....

 

지금도 그날의 가슴두근거림이 그대로 기억납니다.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고 화려했던 복장을 한 이 처녀들은 이제 모두 결혼을 했겠지요?

 

 

 

 

이후....

 

저는 2004년 1월 이곳 빠사를 다시 찾았습니다.너무 많이 변했더군요.그사이 이 마을은 묘족들의 민속촌이 되어 있었더더욱 외국인들의 카메라는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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