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까( 隴嘎 long ga ) 마을의 묘족

 

 

 

귀주성 류즈(六枝)에서 다시 윗쪽으로 가면 먀오족(苗族)의 한 지계로

머리모양이 독특한 칭먀오( 箐苗)족이 살고있는 롱까마을이 있다.

 

 

보기엔 평범한 시골인데

내가 가던 날은 날씨가 너무 추워 마을곳곳에

 고드름과 얼음꽃이 피어 있었다.

 

 

풀끝에 달린 얼음꽃이 마냥 예쁘게만 보인다. 

 

 

 추워서 그런지 밖에 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안보이고

우연히 열린 문틈으로 옹기종기 모여

수를 놓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또래끼리 모여 tv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 5살짜리 꼬마는

어찌나 나를 잘 따르는지 계속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내게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이미 상품화되어 있는 마을이지만

때가 겨울인지라 입장료도 없고

나를 보자 서로 전통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사진안찍을거냐고

북새통을 떤다.

 

 

 

평소엔 왜 전통복장을 안하고 있냐는 질문에

날씨가 너무 추워 전통옷을 입을 수 없다고 한다.

 

칭먀오족의 독특한 머리장식은 진짜 머리카락이 아니라

검은 실로 만든 가채인데 한 10 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머리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이 8살짜리 꼬마 아가씨는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너무 귀엽기도 하지만 너무 순수하고 웃음도 많아서

내 카메라에 가장 많이 남아있게 되었다.

 

나중에 이 꼬마소녀의 집을 들르게 되어

잠깐이나마 불을 쬐고 쉴 수 있었던것도

작은 이 꼬마의 친절때문이었다.

 

 

평소엔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나와 추위에 떨기에

미안해서 얼른 사진만 찍고 돌아가게 했다.

 

나중에 마을을 돌다보니

이 아가씨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6월에 큰 축제가 있고 그 축제기간엔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다며

그 때 찍은 사진첩을 들고 나와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곳에도 tv의 위력은 대단해서 어두운 방안에서

그녀의 남동생과 아빠와 몇몇의 동네친구들은

tv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마을을 내려가는 길을 묻고 돌아가려고 하자

먼저 만난 이 동네의 꼬마들이

내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며

전송을 해주었다.

 

동네 개까지 총 출동해서 나를 전송하는

눈물겨운 일이 이 묘족마을을 뒤로 하는 내게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해 주었다.

 

<   여 행 기 록  >

1. 귀주성 안순 난짠(안순 남부터미널)에서 류즈(六枝)행 버스(19위엔)를 타고 류즈에 도착(2시간 소요)

2. 류즈역 근처의 숙소인 馨夢圓招待所(형몽원초대소)-더운물샤워가능,전기요 있음,30위엔

3. 터미널게시판에 수오까행 7시가 쓰여 있지만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음

4. 터미널 앞에 아침 7시에 나가 작은 빵차로 수오까( 梭嘎)까지 갔음(10위엔)-40분 소요

   (류즈는 기차역과 터미널이 좀 떨어져 있고 빵차가 이 두 곳을 거쳐 손님을 태운 뒤에 수오까로 감)

5. 수오까는 묵을만한 숙소가 없는 작은 마을이었음

6. 수오까에서 묘족이 있는 롱까隴嘎 long ga 까지는 걷기엔 꽤 먼 거리이지만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 있음.(7위엔-10분정도)

 

 

 

사천성 성도를 본의 아니게 몇 번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이곳 성도에서도 보게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중국은 성장과 분배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날이 새로 생겨나는 고층빌딩과

베이징 올림픽을 일년 앞두고 곳곳이 파헤쳐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채 자신들의 생활을 고수하고 있는 소시민의

모습과 무척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낡은 아파트가 자리한 비좁은 골목길에 차린 야외 이발소가 그러하구요,

 

아침이면 생겨나는 길거리 요우티아오나 국수집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것도 그렇습니다.

 

중국여자들의 노동력과 바꾼 거리의 식당은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고요

.....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날로 커져서

이곳 성도만 해도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것 같습니다.

한해동안 힘들여 농사를 지어도 도시 근로자의 삶을 따라갈 수 없는건

이곳 중국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농촌은 우리나라처럼

노인이나 손자들만 남아있는 이상한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막상 도시의 숲속으로 들어온다해도

배운것도 없고 자본도 없는 상경자들의 삶은

 과연

그들이 꿈꾸던 그대로의 생활일까요?

 

 경찰의 단속을 피해 계속 자리를 옮겨다녀야하는

노점상은 무거운 복숭아 바구니를 메고

 다 팔아도 얼마 안될것 같은

하루의 벌이를 위해 오늘도 더운 땀을 흘립니다.

 

 할머니가 이 아이에게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며

신문을 팔게 하는 걸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로 보였는데

팔아야 할 저 신문 보다는 앳되고 해맑아 보이기까지 한

소년의 얼굴이 더 인상적입니다.

 

 

 화려한 도시의 성장과 나날이 물질의 풍요를 갈구하는

성도의 변화를 보면서

이미 우리나라가 겪고있는 성장의 그늘에 가린

농촌과 도시 근로자의 그늘이 보이기에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절로 갖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계속 성장할것이고

성장을 요구할 것입니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될 즈음이면

지금의 성도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겠지요...?

 

 

 

 


 

 

홍위엔(紅原) 초원은 사천성 북쪽 아빠장족강족 자치주에 있습니다.

규모가 크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가도 가도 보이는 건 초원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초원이란 이런곳이구나... ...

하고 절로 고개가 끄떡여지는 그런 곳 입니다.

잠깐 지도를 볼까요...

 

곳곳엔 넓은 초원과 마오뉘우(毛牛)라고도 하고

보통 야크(yak)라고 부르는 털소와

양,말 등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옵니다. 

 

 

도로를 지나는 야크떼들을 위해 가던 차가 멈추기 일쑤이고요...

 

 

마을에 들어서니 초원의 도시답게

대부분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곳은 바로 초원이구요,

그 초원에서 저는 한 가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마초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와 4남매 입니다.

 

 이들은 초원에서 전형적인 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도시로 일을 하러 나갔고

모든 일은 엄마 반마초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족 여인은 (모자에 꽤 관심이 많아서 제 모자를 잠깐 쓰고 있네요...ㅎ ㅎ)

남편없이 드넓은 초원에서 개와 아이들과 야크와 살고 있었습니다.

 손님을 보고 어느틈에 화장도 하고 나와서 반겨줍니다.

손님을 반기는 것 또한 이들 장족들의 긍정적인 성품을 보는것 같아

저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잠시 집안(천막 안)을 둘러보는 사이

보이지 않던 딸 반마치준이 야크를 몰고 돌아 왔습니다.

뜻밖에도 여리디 여린 소녀가 아침이면 야크를 몰고 나갔다가

저녁이면 돌아 온다니 새삼 우리나라의 9살 어린이들을 떠올려봅니다.

 

수줍은 미소와 해맑은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운 9살짜리 반마치준은

한 눈에도 똑똑해 보이는 소녀였습니다.

 

 소녀가 몰고 온 야크를

장남과 엄마가 애써 묶어놓고 있습니다.

천막주위에 많은 밧줄이 있었는데 야크들을 묶어 놓아야

내일 아침까지 안심할 수 있습니다.

 

힘쎈 야크를 끌어와서 묶느라 애쓰는 엄마를 도우는 건

역시!

믿음직한 장남입니다.

  

현재 중국은 많은 변화와 물질적 변혁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소수민족들 또한 그 소용돌이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더 많은 보수를 위해 가장은 도시로 나가고

젊은 엄마와 4남매는 아빠장족의 전통을 근근히 유지하며

초원의 유목민으로 살고있습니다.

 

장차 이 아이들이 자라서 유목민으로의 삶을 

살아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한어를 배우며

초원과 도시의 이중적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말입니다.

 

어떤 삶이 행복하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만..

먼 조상부터 이들 삶의 터전인 이 초원에서의 삶을

떠나서도 이들이 행복하길 기원 할 뿐입니다.

 

엄마가 야크와 씨름하는 동안

 쌍둥이는 팔씨름도 하고

  

야크를 다 묶은 엄마는 바지런히 또 할일을 찾아냅니다.

야크젖을 짜는 일 입니다.

 

소수민족 여인들의 삶은

나그네가 보기에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눈 코 뜰새 없이 늘~ 일을 하며 지냅니다.

집안 일이며, 동물을 거두는 일이며, 엄마와 아내의 일까지..

거기에 자수도 하고, 옷감도 짜고, 염색도 하고

농사도 짓고..

그러나 이 여인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미 한어를 익히고 한자를 쓸 줄 아는 형과 

똘똘한 소녀 반마치준은

장족들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나그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준비한 이 가족들의

마지막 이벤트는

장족들의 고유의상!

 

시대가 바뀌어 초원에서의 삶이 사라진다해도

아직 이들의 피속엔

자랑스런 초원의 아빠장족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나그네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화후(花湖)는 사천성 아빠장족강족자치州 루오얼까이현 중부에 있습니다.

熱爾草原의 푸른 보석이라 일컬어지며,

루오얼까이 시내 곳곳에

이 호수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사진만 보고도 너무 아름다운 호수일것 같아

빵차를 빌려 아름다운 초원을 지날때까지만 하더라도

날씨는 참 좋았습니다.

 

초원의 특성상 멀리 보이는 먹구름이 그리 가까이 있다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호수에 도착할 즈음... 비는 폭우로 변해버렸습니다.

 정문에서 표를 끊고

호수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말을 빌려서 가는데

비가와서 조금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비바람을 맞으며 10여분 지나니 호수가 보였습니다.

 

 물이 많을 땐 호수의 범위가 꽤 넓어지나 봅니다.

호수 주변으로 기-인 나무판자가 놓여있어서

걷기도 좋고 제법 운치도 있습니다.

 

멀리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전망대도 있습니다.

 

비가 오다가 그치고 구름사이로 가끔씩 해가 보입니다.

왠일인지 제가 사는 강릉의 경포대를 떠 올립니다.

규모는 이곳이 훨씬 크지만,

경포호수가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행중에 만난 이 조용한 호수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줍니다.

근처의 목책에 기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시간을 보냅니다.

 

날이 저무는것도 잊고 앉아 있다가

하루일을 끝내고 말을 타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넓은 초원엔 이제 사람도 드물고

정문까지 태워줄 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허둥지둥 급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제 초원의 집으로 돌아온 양떼가 눈길을 끕니다.

제 각각 주인을 달리하기에

하얀털에 물감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 초원에서 잠이 들 양떼는 오히려

집(?)으로 향하는 여행자를 배웅합니다.

 

*루오얼까이에서 화후까지 빵차대절-125위엔(2인)

*화후문표-70위엔(1인)

*정문에서 호수까지 이동하는 버스-20위엔(1인)

*맛있게 먹은 음식-마오차이(冒菜)10원,짬봉혹은 육개장 맛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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