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귀주성 씽이(興義)는

완펑린(萬峰林-만봉림-봉우리가 많아서)으로 유명한 곳이다.

광시(廣西)의 계림(桂林) 풍광이  

이강과 어우러진 카르스트 지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라고 한다면

이곳 완펑린은 江은 없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산과 어우러진 마을의 모습이 

그에 못지 않은 풍광을 자랑할만한 곳이다.

 

완펑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빠지에(巴結) 혹은 완펑후(萬峰湖만봉호)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는데

실은 완펑린을 보러갔다가 우연히 만난 호수였다.

 

완펑린 가는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급기야 안개까지 겹쳐서

도저히 앞을 보기 어려웠다.

하루를 더 기다려 아침부터 노심초사하며 날씨를 눈여겨보았지만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비도 간간히 내리곤 했다.

아무리 물어봐도 오늘은 완펑린을 볼 수 없다는 말만 듣고

할수없이 완펑후 부터 보러가기로 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내 눈을 놀라게 한건

빠지에 장날풍경이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

  

빠지에 거리를 통과 하자 바로 오면서 보이던 완펑후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다.

주변 마을에서 배를 타고 장날 물건을 싣고 오느라 배들도 꽉 찼다.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싣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춘절이 가까와서 인지 물건도 사람도 꽤 많다.

물건들은 대부분 짚으로 잘 보관해서 손상을 방지하나보다.

 한가롭게 배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아저씨도 있고,

 

 

 

열심히 바나나를 배에서 내리는 젊은 친구도 있고,

시장 한켠에서 신발 고치는 아저씨와

맛난 국수 한그릇!에

열중하고 계신 할머니도 있고,

 

 

 

 시장구경을 마치고

뜨끈한 또우화(豆花-순두부)한그릇 먹고 나니

추위가 좀 가신다.

 

벌써 봄을 알리는 유채꽃은 완펑후를 수놓고 나는

완펑린을 보러 발길을 재촉했다. 

 

 

 

 

<여행안내>

 

1. 운남성 쿤밍이나 귀주성 안순 귀양 등지에서 씽이(興義)행 버스를 탈 수 있다.

2. 씽이에는 난짠(남쪽 터미널)과 시짠(서부터미널)이 있는데 시짠은 주로 장거리버스가

   난짠은 씽이 주변을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3. 완펑후(빠지에)는 씽이 난짠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내에서 난짠까지는 택시를 탔다(5원),

    버스는 1路 버스가 있다.(1路 버스는 시내 중심가나 판지앙빈관 근처에서도탈 수 있는데

    이 1路버스는 완펑린과 납후이(納?)마을도 간다(1위엔)

4. 난짠에서 빠지에 버스요금은 10위엔이고 40분 정도 간다.

5. 빠지에는 호수마을이라 생선요리가 많다. 호수가 인공호수인듯 별로 볼 것은 없었다.

6. 씽이에서 묵은 숙소는 판지앙삔관(盤江賓館pan jiang hotel)인데 시내가 가깝고 깨끗하고 따뜻하고 친절했다.

    물론 가격도 싸고... -單人房도 있다-50위엔

 

  

중국 귀주성 귀양에서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칭옌(靑岩)이라는 마을에 고성이 있다.

 

이미 운남성의 리지앙(麗江)을 보고 온 사람이라면

글쎄 꼭 가볼만한 곳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리지앙 고성을 두 번 가보았는데

처음에 갔던 90년도 말의 리지앙과 작년의 리장은

 급변하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보는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너무 많은 단체중국인 관광객들로 상점은 넘쳐나고 전에 느꼈던

호젓하고 고즈넉한 고성의 분위기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근처의 백사마을은 좀 조용했는데

그곳도 머지않아 리지앙처럼 변할것 같아

당분간 리장 고성은 가지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이곳 칭옌고성은 명나라때 포의족(布依族) 토사(土司)가 주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성안엔 사원도 있고 사당도 있고 천주교당과 기독교당도 있는

매우 재미있는곳이었다.

 

고성엔 리지앙고성처럼 상점이 꽤 많이 있었지만

겨울철이라 그런지 문닫은 곳이 많고 여행객도 없어 한산했다.

 

 

 

고성안에 있는 화실과

 

 그림이 아름다운 찻집도 있고

 

 

 

한담하고 있는 동네분들도 있었다.

 

 

 

성루에 올라가니 방어를 위한 포도 있고 성밖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역시 고성답게 돌로 쌓은 골목길은 더할나위 없이 운치있고

마음에 쏙 든다.

 

우연히 주은래 부친의 집을 발견했는데

굳게 잠겨있어서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만난 장날은 나의 칭옌행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는데

 

  

 

 

붉은 향(香) 조금 사고 연신 만족한 웃음을 짓고 계신 할머니!

  

 너무나 향기로운 난(蘭)이 시장 골목을 향기롭게 하기도 하고

안팔리는 차(茶)를 놓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  포의족(布依族) 할머니의 모습은

칭옌고성 장날 만난 내 여행의 선물이었다.

  

 

여행안내

1. 귀양커처짠(貴陽客車站)앞  고가다리를 돌아 중국석유 앞에서 화시(花溪)행 버스를 탄다

    (3위엔)-30분 소요

2. 화시에서 내려 다시 그 자리에서 칭옌(靑岩)행 버스로 갈아 탄다(3위엔)-20분 소요

3. 칭옌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고성에서 내려 달라고 한다.

   가다 보면 표지판과 고성의 망루가 보인다.

4. 고성입장료 34원

5. 돌아가는 길은 왔던 방법대로 하면 된다.

6. 고성이 마을과 연계되어 있는데 여기 주민은 돈 안내고 들락거린다. 나도 슬쩍 갈 수 있었는데

    푼돈때문에? 대한민국의 명예를 더럽힐까 두려워 돈 내고 들어 갔다.

 

 

 

 

중국의 비행기는 추우면 안 뜬다?

 

 

카이리발 귀양행 기차는 3시간 거리를 무려 30 여시간이나

지체한 끝에 드디어 귀양(貴陽)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춘절과 이상기후로 도로가 얼었다는 이곳 귀주성은

햇볕마져 귀하다는 귀양이 아니던가!

잔뜩 찌푸린 날씨에 한기가 스며든다.

 멀리갈 기운도 없어 기차역 주변에 있는 좋은 숙소에서(=따뜻한 숙소)

오늘은 일단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뒤 꽤 괜찮고 비싸보이는

역앞의通達빈관에 갔더니 방이 없단다!

 

할 수없이 좀 걷다가 明珠 빈관에 갔다.

128위엔 짜리 방인데 많이 낡았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전기요가 없고 온풍기가 안된단다.

길이 얼어 차도 못다니는 엄동설한에 따뜻한 그 무엇도 없다는 말에 미련없이 나와

주변의 숙소를 무려 5군데 알아봤는데

전기가 안들어와서 온풍기도 안되고

오히려 나머지 숙소들은 방에 불도 못키고 있었다.

 

지치고 춥고 배고픈 나는 밍주빈관에 다시 가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은 했고 전기불도 켤 수 있었지만 밤새 추위에 떨다가 밤을 새고 난 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터미널에 가서 가장 빠른  계림행 버스(집으로 가려고)를 알아보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좋은 숙소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귀양엔 버스터미널이 3개있는데 하나는 기차역과 나란히 있는 버스터미널이고,

또 하나는 기차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체육관 터미널이고

또 하나는 귀양커처짠 이라는 곳이다.

계림을 가려면 귀양커처짠에 가야하는데 물론 플랜카드가 걸리고 전광판까지 동원하여

모든 버스가 안간다는 내용이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국인 홍여진 어린이와 그 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버스가 없으니 비행기를 이용하자고 했고

비행기에서 보게 되겠네요 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먼저 계림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는데

630위엔 짜리를 여행사 대행이라고 740위엔에,

그것도 1월 29일것 밖에 없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사버렸다.

 

오늘이 1월 26일인데 29일표밖에 없다니 금방 있던 표가 도대체 다 어디로 간걸까?

갑자기 단체손님들이 왔나?

비행기표까지 샀으니 31일 새벽 1시 인천행 비행기는 일단 안심이다

그러니 그동안 묵을 숙소를  다시 구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귀양에 오래 있어야 하니 말이다.

 

드디어 시장안에 보기 드문 깨끗한 숙소를 발견하고

이곳에 머물기로 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숙소가 시장에 있으니 온갖 먹을것 넘쳐나고

밥도 먹고, 군고구마도 먹고, 오리고기며 빵이며 꽈배기까지

신나게 배를 채운 나는

따뜻한 방에서 목욕도 하고 온풍기까지 틀고 오랜만에 잘 수있었다.

 

다음날 28일 아침

늦게 일어나 아무리 길이 얼어도 근교까지야 하며 리장고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느낌이 나는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장날까지 만나는

 행운의 하루를 칭옌에서 보낼 수 있었다.

 

칭옌고성을 둘러 보고 숙소로 오다가

근처의 터미널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그래서 근처 여행사에 들른게 화근? 이었다.

내가 29일 계림표 끊었는데 혹시 더 일찍 가는 비행기표 없냐?고 묻자

대뜸 비행장이 폐쇄돼서 비행기 안뜬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비행장이 폐쇄?

전쟁도 아니고 왜?

비행장이 얼어서 비행기가 못떠서...

 

숙소로 돌아오며 일단 먹을것을 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시장엔 아직 물건들이 많은것 같은데

뉴스를 보니 전깃줄이 끊어지고 길이 차단되고 광주의 수많은 인구가 발이 묶이고...

아~ 그래서 명주빈관 주변 과 기차역 근처는 전기불이 안들어왔구나~

그럼 큰 일이네...앞으로 더 큰일이다..

 

밤새 지도를 펼쳐놓고 귀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의 탈출을 고민했다.

귀국날짜가 촉박하니 비행장 있는곳이 안전할거야..

그럼 쿤밍이나 충칭 성도까지 가야하는데

갈 수가 없다. 버스도 기차도 없으니 말이다.

 

긴 밤이 지나고 다시 버스터미널 세곳을 다 뒤지고

비행장 알아보고 기차역 알아보는동안 저녁이 되었다.

결론은 모두 갈 수 없다 이다.

 

5시 5분쯤 기차역을 배회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씽이씽이 (興義)하면서 다니기에

얼른 쫓아갔다. 운남성 근처의 씽이말이냐?

거기까지만 가면 운남성은 커녕 계림도 갈 수 있는데..

사설버스의 호객꾼이었다.

체육관터미널 뒤에 큰 관광버스가 있고 몇몇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전 내가 씽이를 다녀왔기에 물었다.

가는 길이 굉장히 험하고 더구나 얼었으면 굉장히 위험할텐데

어떻게 너희들은 갈수있느냐?

고 했더니 갈 수있단다.

내가 생각해도 갈 수 있는정도의 길이라 생각했기에 한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비행기표 환불하고 숙소에서 짐가져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6시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한다.

 

미끄러운 귀양시내가 어찌나 화가 나는지...

간신히 여행사에 환불하러 갔더니 이 아줌마 5시에 칼같이 퇴근해 버렸다.

아!

그 버스 타지 말라고 그러는가 보다..좋게 생각하고

애써 마음을 추스려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이 또 지나고 드디어 29일.

오늘 8시 45분 계림행 비행기가 제대로 뜨는지, 비행장은 문 열었는지...

여행사가서 물으니  모른다 이다.

오늘 밤 비행기가 뜨는지 안뜨는지를 모르다니..억장이 무너진다.

조금 떨어진 민항표파는곳까지 갔다.

역시 지금으로선 모른다며 공항에 전화해 보란다.

전화하니 또 모른다이다.

오늘 날씨가 그나마 좀 좋아져서 12시가 넘어야 알 수 있단다.

 

난 일단 짐을들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12시 이후에 비행기가 못뜨면 한국여행사에 연락해서

인천행을 딜레이 시키겠다고 미리 연락해 놓고 ...최악이다.

 

공항은 시장바닥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밤을 샌듯하고 그러다보니 쓰레기며 짐이며 엉망이다.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 노트를 꺼내 그동안 밀린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신나게 자고 있던 옆 좌석의 아가씨가 낯선 글자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그녀의 비행기티켓엔 두개의 표가 더 붙어 있었고 27일부터 계속 비행기가 못떠서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나보고 오늘 8시 45분 비행기도 알수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후 6시쯤 되어 지난번에 만난 한국인 가족을 만나고

밀린 고생얘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꽃을 피우다가

8시 45분 계림행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전광판을 보게 되었다.

 

계림행 비행기는 다행히 2시간 정도 늦은 밤 10시경에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타자 너무 기뻐서 집에 연락도 하고 그동안의 고생이 마치 꿈만같아

마음이 들떠있는데 비행기가 한참을 지체한다.

워낙 늦는 일에 익숙해져서 좀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오고 난 관비(關閉)라는 말만 알아들었는데

사람들이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옆사람에게 물으니 비행기가 못뜬단다 비행장 얼어서..

이젠 놀라는 일도 하도 많아서 일순 멍해진다.

 

항공사에서 다행히 시내에 있는 좋은 호텔에 투숙시켜줬는데

여기 역시 온풍기도 전기요도 없어 밤새 추위에 떨며 지새웠다.

 

1월 30일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모닝콜을 해줘서 지하의 식당에 가니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먹어본지 오래라 너무 좋아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촛불을 켜고 배부르게 밥먹을때만 해도 걱정이 없었는데

우리숙소는 20층의 6호와 7호

순간  미칠뻔 했다.

아침에 죽먹고 20층까지 올라가 짐챙겨서 20층을 내려와야 한다니...

캄캄한 계단은 비상등도 없고 간신히 올라가 짐을 챙기다가

화가나서 헐레벌떡 거리며 20층에서 바라본 귀양시내를 사진으로 남겼다.

귀양시내는 차가 안다녀 한산하고 하늘은 우중충하고

난 귀양에 귀양온것 같아 너무 서글프다.

 

복무원이 서둘러서 황급히 20층을 내려갈때의 심정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싶은 마음뿐.

 

다행히 우리를 바로 탑승수속시키더니 오전 11시쯤 비행기는 귀양을 이륙해서

40분만에 계림 공항에 도착했다.

계림공항에 도착하자 무사히 탈출한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한국인 가족의 짐 하나가 분실되는 불상사가 또 발생했다.

내가 먼저 귀국하는 바람에  그 가족들이 무사히

짐을 다시 찾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끝까지 마무리를 못해준게 많이 마음에 걸린다.

 

귀국날 계림에 도착한 나는 계림공항에서 또 2시간을 지체한 뒤

인천행 동방항공에 몸을 싣게되었는데 

내 좌석번호가 1번A.

처음 본 나의 1번 좌석표는 비즈니스석이었다.

 

우와! 이런횡재가 ! 하는것도 잠시, 비즈니스석을 즐기기는 커녕

너무나 지친 몸은 인천에 도착할때까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집에 온 후 너무나 힘든 이번 중국여행을 통해

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중국이 그동안 성장의 가속화로 세계 여러나라를 놀라게 하긴 했지만

재난이나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공무원이나 국가의 자세는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측못한 기상이변이기는 하나 춘절과 겹쳐 수많은 인구가

길에서 떨며 고생을 하고 있는데 서로 혼선을 빚어 표를 팔고 차는 안가고

안내도 없고 귀성객이나 국민을 위한 배려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길이 얼은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한심한 삽하나 들고 나온 정부관리들 눈치우는 모습 사진찍기 바빴고

(이런걸 전시행정이라고 하나요?)

아무짝에도 도움안되는 보온병 두개 놓고

혹은 그 많은 인구가 북적대는데 만두 한상자 나눠주고 사진찍고..

 

참 한심했습니다.

 

아울러 지구의 기상 이변이 앞으로 계속될텐데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지 한번 짚어봐야할 듯 합니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길이 두절되고 추위와 배고픔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합니다.

 

중국을 한 10 여년 다녀보았지만 이번 만큼 최악의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속에서 만난 소박하고 친절했던 평범한 중국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1. 중국 기차는 추우면 못 간다?

 

2008년 1월 22일 새벽 6시 20분 나는 운남성 진핑(金平)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꺼조를 거쳐1월 23일 새벽 5시 30분 귀주성 안순(安順)에 도착했다.

안순에서 오전 7시에 귀양(貴陽)가는 버스가 있기에 춥지만

아침으로 또우장과 찹쌀떡을 먹으며

대합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드디어 지루한 추위와 기다림끝에 7시가 되었고 표를 파는 복무원도 다 출근했는대

표를 안판다는 것이다.

왜요? 물으니

펑루(凍路) 즉 길이 얼어서 그렇단다.

그래서 길이 녹을 시간,  즉 10시가 되면 표를 판다고 한다.

분명 밤새 험한 길을 달려 운남에서 안순을 왔는데

한시간 거리인 귀양을 못간다니...그리고 분명 눈도 안왔고,

  비가 온 도로가  좀 얼긴했다만 차가 못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합실 밖에 나가 보니 택시기사가 100위엔에 귀양안가겠냐고 호객행위를 한다.

버스가 못간다는데? 했더니 작은 차는 갈 수 있단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기를 쓰고 10시를 기다렸는데(넘 힘들었다)

12시로 다시 미뤄졌다. 차라리 미리 말해주면 하루 쉴것을 다시 12시까지 참기로 했다.

그 사이 복무원이 물 딱 한주전자 끓여오고, 보온병 두개 갖다놓고

 그 것 놓인 책상을 사진찍어 간 일이 그네들이 한 일.

 

안순에 도착한 후 6시간이 넘은 12시 5분전이 되자 복무원은 표를 팔기 시작했고

 엄청난 새치기와 밀린 인파로 인해 북새통을 떨고 난 뒤

두대의 버스가 동시에 귀양을 향해 출발했다.

기다리며 먹은 것이라곤 찹쌀떡 한개와 뜨거운 물 몇 모금,

밤새 지친 몸과 마음은 더 지친다.

 

드디어 환호성을 지르는 승객을 태우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도착한 버스는

 차단 된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속수무책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번의 시도 끝에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도로를 차단 해서인지 차가 뜸하다.

길은? 멀쩡하다.

적어도 내눈엔 쌓인 눈도 없고 비가 좀 얼어있지만 차가 다녀서 다 녹은 상태...

도대체 왜 길을 막고 못다니게 한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차가 쌩쌩달려 귀양에 1시 도착!

귀양커처짠(貴陽客車站)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내가 가려는 최종 목적지인 카이리(凱里)행 버스가 2시 40분에 있다.

카이리행 버스는 3시에 출발했고

가는길은 온갖종류의 차가 뒤범벅이 되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귀주의 지형때문에 고속도로 대부분은 고가다리가 많았는데

다리 대부분이 빙판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이 정도면 빙판도 아니지만..

 

아무튼 3시간 거리의 카이리행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카이리에 도착했고

카이리 시내는 온통 빙판길이다.

움직이는 일도 귀찮아 터미널 가까운 物貿賓館(60위엔)에 묵기로 했는데

온풍기도 있고 전기요도 있지만

파이프가 얼어 뜨거운 물은 없다고 물병 두개를 주고 간다.

한국인이라며 매우 친절한 주인아줌마이지만 뜨거운 물이 없다는데야

나도 더 이상 조르지 못하고 이틀만에 처음 세수란 걸 하고

전기요에 감사하며 다리를 뻗고 잤다.

내일 을 기다리며...

 

1월 24일 아침!  10시쯤 거리로 나섰다.

이틀동안 피곤했던 터라 또 밥 구경을 못한 처지라 일단 밥 먹으러 숙소를 나서니

온 시내가 살얼음판이다.

간간히 내리는 비가 전부 얼어버린듯,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어 가보니 채소도 온통 얼어버린걸 팔고 있다.

배추며,상추며,오이 등등 다 얼어버렸다.

뜨거운 훈둔을 시키며 요새 날씨가 어떠냐는 질문에 많이 춥다고 한다.

어제 cctv뉴스엔 분명 -3도 였는데...말끝에 펑루가 되서 버스도 안다닌단다.

깜짝놀랐지만 어제 버스타고 왔는데 무슨 버스가 안다니랴 싶어 그냥 그러냐고 하고 말았다.

 

다시 시내를 나와 카이리 주변의 묘족 마을을 둘러보러 터미널로 갔더니

정문에 마침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내용인 즉 길이 얼어 당분간 터미널 페쇄한다는 내용이다.

모든차가 안간다는것이다.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설마 오후되면 차가 다니겠지....하고 왕빠(피씨방)도 찾을겸

시내 중심가로 나섰다.

춘절을 앞둔 중심가는 다른곳에 비하면 활기차보이긴 했지만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걷는 사람들만 보였다.

 

점심까지 챙겨먹고 한글자판이 지원안되는 카이리 시내의 왕빠5곳을 전전한 끝에

다시 숙소로 향하던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기차역을 찾았다.(1번 버스)

기차역은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버스가 도통 안다니니 기차로 다 모인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일 10시 30분 광조우(광동성 廣州)에서 출발해 귀양으로 가는

기차의 입석표를 구할 수 있었다.

자리없음 뭐 기차로 3시간 거리인데...좀 참지...

 

숙소로 돌아와 친절한 주인 아줌마에게 푸념을 하니 답은 펑루때문이란다.

카이리를 얼마나 기대하고 왔는데 꼼작도 못하고 있다가

내일 다시 귀양으로 가야한다니 기가막힌다.

 

1월 25일 아침

 어제 본 뉴스에

(후난성 귀주성 등등에 60년 만에 큰 눈이 내려 길이  막히고

생필품이 떨어지고 전선이 끊어졌다고 함)

마음이 불안해져 기차표 예매를 잘한것같다고 생각하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틀이나 고생해서 온 이곳을 아무곳도 못보고 간다는게 속상하지만

 나와 인연이 안되서 그런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아! 카이리 기차역은 만원이었다.

발을 어디에 두어야할지...짐들은 왜이리 많고...

한시간 기다리 끝에 드디어 k65 내가 탈 기차 티켓팅을 하기 시작하자

나도 힘을 내어 앞으로 계속 전진 전진...해서 간신히 개찰구를 벗어났다.

휴우~ 승리자의 한숨을 쉬는것도 잠깐 계단부터 꽉막혔다.

30분 기다려 계단을 통과하지마자

역무원이 확성기를 대고 느닷없이 휴게실로 들어가 쉬란다.

10시 30분 기차타러왔는데 지금 왜 쉬라고 하지? 물어보니

기차가 늦는단다 왜 늦냐니까 연착이란다.

기차가 연착될 수 있지 뭐...일단 기차를 탔으니 늦어도 저녁때쯤이면

귀양에 가 있을꺼야...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승무원이 다시 방송을 하자 사람들이 웅성웅성대며 일어나더니

어디가서 라면에 과자에 먹을것들을 사오느라 분주하다.

중국사람들은 시간나면 먹는게 일이니까.. 저러다 기차오면 어쩌려고..난 기다린다.

사실 배가 안고픈것도 있고 쓸데없이 더러운 화장실 들락거리는건 더 싫고..해서

귤하나 먹고 만다.

 

12시가 지났다.

몇 번 기적소리가 들렸는데 우리기차가 아닌가보다.

광주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좀 시간이 지체되긴하겠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어딘가로 가서 국수도 사오고 볶음밥도 사오고

모양새가 밤샐태세이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다시 물어본다.

친절한 역무원이 오후 4시쯤 기차가 온다고 휴게실에서 식사를 해결하란다.

뭐? 오후 4시 ? 그럼 이추운 휴게실엔 왜 들여보냈어?

아! 갑자기 미칠것 같다.

 

의자에 멍 하고 앉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일에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말을 건다.

국수를 먹고 있는데 국물이 튈것 같다고 옷을 추스려준다.

 

돌아보니 젊은 상해처녀와 건축일을 한다는 선전의 아저씨...

말끝에 나보고 왜 밥을 안먹냐고 묻는다.

티켓팅을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밥을 사오냐고 물으니

선전아저씨가 자기가 국수한사발 들고 나타나 내게 권한다.

넘 고맙지만 난 여러끼 굶은 상태라 국수는 힘든데 성의가 넘 고마워 열심히 먹었다.

 

먹을것이 해결되자 본격적으로 한국인인 내게 질문이 �아졌는데

이 선전아저씨 사는곳 만큼이나 돈이 많은것 같다.

중국에 안가본곳이 없을정도...

이럭저럭 시간은 가고 4시쯤 어떤 *친 사람이 기차왔다고 소릴지르자

사람들은 먹던것 팽개치고 짐싸들고 나갔는데 거짓말이었다.  

복무원이 사람들 안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난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10시 30분 귀양행 k65 기차는 저녁 7시에 비로소 탈 수 있었다.

고생끝에 낙이라더니 기차만 타면 안심이 될거라 생각한 나는

10 여시간만에 탄 기차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탄 기차는 이미 만원상태이고 카이리에서 엄청난 인구가 다시 투입되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억지로 기차에 오르긴 했는데 정말 발둘곳이 없다.

바닥은 이미 먹은 음식물과 쓰레기로 엉망이고 아무리 입석이지만기차칸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에 카스에서 우루무치행 기차를 입석으로 탄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그래도 여긴 3시간 거리니까...하고 위로하며

가방을 통로에 구겨넣고 간신히 몸을 세워본다.

 

같이 탄 상해아가씨는 연신 우거지상이다.

 귀양에선 비행기로 상해갈거니까 여기서만 좀 참으면 되겠지 가 그녀의 심정일것이다.

 

10 시간 기다려 탄 기차가 꿈쩍도 안한다.

기차만 타면 모든 고생이 끝날 줄 알았던 난 너무 당황해서

기차가 왜 안가냐고 물었다.

안내방송은 커녕 승무원들이 오고가는 일도 힘들기에 옆사람들에게 물으니 연착이란다.

무슨기차가 계속 연착?

중국의 기차는 대부분 시간을 지키는경우가 많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다른가싶다.

 

7시에 탄 기차는 새벽 2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난 미칠뻔했다.

더러워서 ...

담배냄새때문에..

그리고 웃겨서..

 

모두 기다림에 지쳐  혼이 나간상태가 되었는데

같이 서 있던 젊은 청년이 내가 한국인인줄 알고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주위사람들 모두 한국사람 처음 본다고 관심이 대단하다.

짧은 중국어가 안되면 필담으로 얘기했는데

주로 처음엔 어디사냐?

가족은? 나이는?직업은?월급은?

하다가

질문이 궁해지는걸 보고

이번에 내차례 라고 선언한 뒤 내 질문이 시작됐다.

 

중국기차는 날이 추우면 왜 안가냐?

중국버스는 길이 얼면 왜 못가냐?

집앞에 얼음은 왜 안치워서 사람들 미끄러지게 하냐?

도로가 난장판인데 경찰이나 공안은 왜 안보이냐?

차가 안가면서 표는 왜 파냐?

기차가 안가면서 왜 안내도 없이 표를 파냐?

....

 

 

엄청난 사람들로 가득찬 기차안

 

그리고 말했다.

중국사람은 참을성이 많은것 같다.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걸 보면..

정말 어떤 사람도 불평하는걸 듣지 못했다.

이거 아직도 의문이다.

 

1월25일 오전 10시30분 기차는 휴게실에서 기다리게 하다가 저녁7시에 기차를 타게하고

1월26일 새벽 2시에 움직이기 시작해서

가다가 서고 를 반복한 끝에 점점 귀양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새벽 5시쯤되자 모두 지쳤고 나도 지쳐 몸을 가누기 어려워졌는데

이때 큰 짐을 갖고 탄 두 부부가 내게 자기 짐에 앉으라고 도와주셨다.

잠깐 손이라도 기댈곳만 있어도 황송한 터에 자기 짐에 앉게해준 고마운 두분 정말 고맙습니다.

  

 

 짐에 앉게 해준 두 부부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엉망인데 라며 사진찍는걸 마다하셨던 두 사람

하지만 내가 중국 귀주성의 기차안에서 하루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거라고 도와달라고 하니 선뜻 협조해주셨다.

 

 지치고 힘든 기차에서 카메라를 대자 웃음을 머금는 젊은이..

 

아침이 되자 먼동이 텄지만 귀양으로 갈수록 얼음꽃이 곳곳에 보였다.

날이 추운가보다

 25일 10시30분에 떠나야 하는 카이리발 귀양행 기차는다음날  26일 오전 10시 쯤 되어

귀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3시간 거리를 무려 30시간에 걸려 온 것이다.

 

 

 

2. 중국의 비행기는 추우면 안 뜬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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