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헤아려보니 7,8년 된 것 같다.

 

어릴 때 강아지를 기른 기억 때문에

난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눈에도 고양이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투르키예는 개와  고양이의 천국이었다.

 

아래 사진은 아야소피야 주변에 있는 '개사료 자동판매기'이다.

물론 개사료이지만,

지나가는 고양이도 와서 먹고

심지어 주변의 새들이 독차지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코인을 넣으면 자동으로 

사료가 나온다.

 

 

매일 이곳을 지나며

개와 고양이가 나란히 사료를 먹고 있는

진기한 풍경을 보았는데

사진을 못 찍어 아쉽다.

 

튀르키예의 개들은 덩치가 너무 커서 좀 무섭다.

주인 없는 큰 개들이 공원을 가로질러 뛰어다니거나

길 한가운데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이른 아침 개와 함께 평화롭게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해 보인다.

 

새가 날아다니고

낯선 고양이가 와서 몸을 비비고

개들이 나른한 오수를 즐기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이곳에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고양이 때문에 만난 아름다운 '다프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원에 갔다가 아름다운 다프네의 무릎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자리가 없어 다프네 옆에 앉았는데

이 고양이가 이번엔 내 무릎으로 와서 애교를 부린다.

 

너무 귀여워서 옆에 있던 다프네와 인사를 했는데

그녀는 공원 옆에 있던 대학교의 학생이라고 했다.

 

내가 본 터키최고의 미인이었는데

늘씬한 몸매에 딱 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 눈에 확 띄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고양이 털이 범벅이 되어

울상을 짓던 그녀.

그래도 고양이를 내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씨까지 예뻤던 다프네다.

 

덕분에 우리는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때문에 웃음을 터뜨리고

사진을 서로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펜싱선수라고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조금 뒤 프랑스청년이 와서 인사를 하자 남자친구라고 소개한다.

 

여행 후 한 달이 지났지만

고양이 때문에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날은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2023. 6.20.

 

* 누루오스마니예 자미(nuruosmaniye camii)에서 생긴 일

 

이스탄불 여행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을 갖고 이스탄불 대학 근처 책방과 그 언저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내내 미뤄둔 그랜드바자르가 보여 방향을 틀다가

누루오스마니예 자미를 발견했다.

 

마침 머플러를 챙겨 왔기에 자미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자미 안은

고요하고 또 고요해서

오랜만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이스탄불 여행에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곳곳에 오래된 자미(=모스크)와 성당 등이 있다는 것.

 

대부분 대리석으로 지어진 것이 많아 더운 여름에 가면 

꽤 시원하고 쾌적하다.

게다가 물도 항상 있고 화장실까지 갖추어져 있어 참 좋다.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여행 마무리를 위해 수첩을 꺼내려는데

부르카를 쓴 두 여인이 내게 다가오더니

옆에 앉는다.

 

대부분 부르카를 쓴 여인들은 이방인을 피해 가거나

무심히 지나는 게 일상인데

이 여인들은 내 옆에 앉더니 투르키예어로 말을 건넨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미소로 대신했더니

계속 말을 이어가는데

'알라'라는 단어가 반복돼서 나온다.

 

두 여인은  영어를 전혀 못하고

난 투르키예어를 전혀 못하니 의사소통은 불가하다.

 

그럼에도 두 여인은 굴하지 않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결국 답답한 내가 구굴 번역앱을 켰다.

 

다음은 그녀와 나의 구굴대화 내용이다.

 

그녀들의 이름은 라비아 Rabia 와 무카데스 Mukaddes이다.

그중 라비아가 꽤 적극적이었는데

그녀의 말인즉

 

라비아 : Sence bu dünya nasıl meydana geldi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됐다고 생각하니?

 

나 : Bu zor bir soru. 어려운 질문야

 

라비아 : Evet ama hiç düşünmedin mi 그래, 하지만 생각해 본 적 있어?

              bu dünyayı benim Allah'ım yarattı 나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ttoneun dangsin-eun nuguleul midseubnikka 너는 누구를 믿니? (무함마드를 아니?)

 

나 : ( 순간 당황했지만 곧 이 두 여인은 나에게 이슬람교 전도를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Kime inandığına bağlı 사람마다 믿는 대상이 다르지(그리고 알라는 잘 몰라)

      

라비아 : Peki sana yardımcı olmanı ister misin 그럼 내가 도와줄까?

             bana şimdi yarım saatimizi ayırırsanız Ömür boyu bir tarlanın olup olmadığını düşünmenize ayıracağınız vakti

             지금 나에게 30분만 시간을 준다면 함께 고민할 시간을 갖게 될 거야.

 

나 :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 그러나  이 또한 소중한 경험이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

      직업이 뭐냐고 했더니 라비아가 종교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그의(알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의(알라) 조수라고 한다.

 

     너무 어려 보여서 나이를 물으니 23이라고 했다.

     외국인에게 알라를 알리려면 영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외국인에게 알라를 알려주는데 영어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일어서려니까 계속 붙들고 

5분만, 10분만 시간을 달라고 한다.

 

비행기를 타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둘러대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benim rabbim buna izin vermiyor 주인님이 허락을 하지 않아

namahrem erkeklerini görmesi yasak boy 남자를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라고 한다.

 

손은 찍어도 된다고 해서 주소와 이름을 적는 동안 사진을 남겼다.

 

거짓말한 것도 미안하고 해서 메모할 때 쓰던 볼펜을 주겠다고 하니까

갑자기 기도목걸이를 빼서 나를 준다.

그러더니 옆에서 웃고만 있던 무카데스는 팔찌를 빼서 준다.

너무 놀라 

가방을 뒤져보니 머리끈이 있어서

나도 무카데스에게 아끼는 하트 머리끈을 주었다.

 

두 여인의 아쉬운 눈길을 뒤통수에 느끼며

나는 허둥지둥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발랏에 가던 날,

 

몹시 지치고 힘들어 무심히 걷고 있었는데

두 소녀가 나를 보더니 hi!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너무 귀여워서 쳐다보니

포즈까지 취하고

급기야 내게 오라고 손짓까지 한다.

 

튀르키예말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의미로 읽혔다.

 

아이는 빠르게 철창이 있는 반지하로 들어가더니

공책을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했다.

 

소녀는 한국어공부를 하고 있었고

내가 한국사람으로 보였는지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곤 튀르키예어로 

숫자를 읽기 시작했다.

 

하나,

툴,

셑트.

넽트....

 

내가 다시 읽어주며 발음을 교정해 주자 어찌나 좋아하던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는 이 소녀에게

나는 제니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기뻐 날뛰던 소녀는

언젠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 뒤

반지하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손에는 장난감 기타가 들려있었고

소녀는 나를 위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명랑하던지... ,

난 그만,

여행의 고단함을 잊고 말았다.

 

시간이 늦어 통역하던 아줌마의 초대도 사양하고

소녀의 이름도 안 물어본 나의 불찰을 탓하며

숙소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소녀들의 노래와

서툰 한국말을 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소녀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여행을 준비하며 늘 고민하는 일,

짐을 줄이고 카메라를 가져갈까? 

아님 가벼운 똑딱이만 가져갈까?

 

결국 라이카 X Vario를 챙겼다.

초행이라 모든 것이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라이카를 챙겼다.

 

그리고 숙소가 구도심과 바닷가 가까이 있어

오며 가며 잠깐씩 경조흑백으로 담아보았다.

 

늘 기대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라이카 X vario!

 

이번 여행에서도 나의 친구가 되어 주고

돌아와서도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위로해 주었다.

 

이스탄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아주 오래된 모스크와 성당, 성곽, 유물 등

 

그곳을 살아가는 튀르키예인들의 삶도

과거와 현재를 아름답게 융화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음식이 그렇고 음악이 그러하고

옷차림과 종교가 그러했다.

 

그것들은 낡아서 아름다웠고 

새로워서 신선했다.

 

내가 좋아하는 흑백, 

그중에서도 경조흑백으로 찍고,

영상도 만들어 보았다.

 

Istanbul 여행 2023, 과거와 현재의 조우 #2 'Black & White'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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