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11. 화

 

입소한 지 이틀, 어제도 잘 잤다. 새벽에 일어나 얼른 씻고 산책하기로 했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다 보니 온 세상에 안개가 자욱하다. 가져온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니 감자밭에 꽃이 가득하고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참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을 따라 늘어선 예쁜 집들과 펜션엔 사람이 없는지 고요하다.

 

 

 

 

사방엔 새들의 노래만 가득하고 잘 익은 오디는 땅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한 시간쯤 걷고 숙소에 돌아와 어제 다하지 못한 텃밭을 정리했다. 풀을 뽑다가 진드기에 물렸는데 금세 퉁퉁 부어오른다. 신고식을 치르는구나 싶다.

 

아침식사는 어제 마트에서 사온 블루베리와 텃밭에 있는 페퍼민트로 우린 페퍼민트꿀차. 크로와상. 그리고 맑고 맛있는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 한 줌!

 

이 아침의 평화가 마음까지 평화롭게 한다. 좋은 아침이다.

 

 

 

 

10시에 목공체험이 있어 목토랑 공방에 갔다. 도마를 만드는 체험인데 젊고 유능한 주인이 자세하고 재미있게 알려주었다. 샌딩도 처음해 보고 물론 인두싸인도 처음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아 아무튼 즐거웠다. 동료들과 처음 외출을 함께한 시간이었다. 

 

 

나는 '달빛 고요'라는 글을 새겼는데 처음이라 도구 다룰 줄 몰라 좀 어설프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방체험이 늦게끝나 서울대 학식을 못 먹게 되어 장평시내의 맛집에서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신세계'라는 중국집이었는데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옆에 막국수집도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

 

저녁 8시부터는 중국과의 월드컵 예선전을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1-0으로 중국에 승리했다. 응원하며 포장해 온 탕수육과 족발 등을 먹었다.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예의 바르고 온화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2024. 6.9. 일

 

구들마을입소를 위해 평창에 왔다. 내일이 정식 입소이지만 오늘 미리 도착한 것이다. 밑반찬 몇 개와 수박, 혹시 몰라 삼겹살도 샀다. 침구류와 일복으로 개량한복과 간단한 책을 준비해 왔다.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고선생이 먼저 도착해서 둘이 저녁을 먹는 동안 황선생님이 오셨다. 내가 만든 음식을 극찬을 하시며 맛있게 드시니 기분도 좋다. 고선생은 돌아가고 황선생님도 돌아가고 이제 나의 방에서 첫밤을 보내게 되었다.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된다.

 

2024. 6.10. 월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 5시. 오늘은 오후  3시부터 활동이 있어 오전이 비어있다. 마침 어젯밤 성혜님이 육백마지기에서 보내온 은하수사진이 생각나 나도 육백마지기에 데이지꽃을 보러 길을 나섰다. 몇 해 전부터 오려고 했으나 불발됐던 청옥산 데이지를 이렇게 쉽게 보게 될 줄이야. 인연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굽이굽이 산을 돌아 한 시간 남짓 걸린 육백마지기엔 하얀 꽃물결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애매하여 평창읍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우연히 평창한식뷔폐에 갔는데 베트남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또 이용하기로 했다.(1인 8천원, 주차는 가게 옆 공용주차장)

 

 

 

 

오후일정은 제초작업과 청소등으로 시간을 보냈고 나는 나의 텃밭도 얻게 되었다. 이미 지난 입소자가 상추며 치커리 부추 등을 심어놓아  잡초만 뽑고 물만 주면 될 것 같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여기서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2024. 6.5

 

오랜만에 고선생이 연락을 했다. 평창 황토구들마을 체험활동 입소를 권유한다. 바람도 쏘일 겸 길을 나섰다. 평창 IC에서 10분 정도 걸렸는데 오늘은 거주하게 될 방과 주변을 둘러보고 결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구들마을 사무장으로 고선생과 친분이 있는 황선생님과의 첫 만남이다. 왜냐하면 고선생이 평소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대충 어떤 분인지 짐작은 가고 왠지 나와 잘 맞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선생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아무튼 평창구들마을을 잠깐 돌아보았는데 내가 머물 소나무방은 아주 작고, 화장실이 실외에 있으며 공동 주방을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통나무로 잘 지어진 집과 계곡물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산촌에 자리한 이곳을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입소한 분들 4명과 나까지 5명의 인원이 3달간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중간입소라 1달 반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구들마을을 돌아보고 황선생님께 전화를 하니 집주소를 보내며 집으로 와달라고 한다.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산으로 둘러싸인 외딴 숲속에 집이 보였다. 황선생님은 내가 길을 잃을까 염려하셨는지 마중을 나오셨는데 첫눈에 매우 아름답고 단정한 느낌이 들었다. 친절하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고 얼마 뒤 고선생이 도착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입소하겠다는 뜻을 보였고 두 사람은 매우 반가워했다.

 

저녁 후 황선생님의 요가이야기와 수련, 고선생의 건강 관련 이야기와 신앙 등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고 늦은 자정이지만 황선생님의 주도하에 오랜만에 명상도 할 수 있었다.

 

밖에 나가 캄캄한 밤하늘의 북두칠성과 별자리를 이야기하다 차를 마시기도 하며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피곤한 줄도 몰랐다.

 

벌써 여름이지만 이곳 평창은 저녁이 되니 쌀쌀해졌고 선생님의 황토흙집은 난방을 해서 매우 따뜻했다.

 

 

 

2024.6.6

 

새벽 5시에 눈이 떠진 나는 어젯밤 함께 본 별들의 세상이 어찌 변했나 싶어 마당으로 나갔고 새벽의 맑은 공기와 새들의 합창은 이곳이 매우 평화로운 곳임을 절로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일찍 일어난김에 마당의 잡초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나와서 반가워하셨다. 아마도 풀 때문에 번거로왔나 보다. 고선생은 출근을 하고 나는 마당일을 하다 쉬고 있는데 아랫마을에 친구분이 열무를 몇 단 들고 방문했다. 함께 차를 마시다 보니 전남 강진에서 찻집을 하다가 이곳 평창에 터를 잡고 펜션을 운영한다는 김씨는 어찌나 말을 재밌게 하고 친절한지.... 아무튼 김씨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잊어버릴까 염려가 되어 언젠가는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가 돌아가고 선생님이 아점메뉴로 황탯국과 잣죽을 고르라 해서 난 당연히 잣죽을 원했고 얼마 뒤 극진한 아침을 먹게 되었다. 올리브유를 두른 토마토,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부추로 가볍게 만든 샐러드는 건강한 맛이었고 잣죽은 어젯밤의 피곤도 잊을 만큼 맛있었다.

 

 

설거지와 마당의 잡초를 어느 정도 정리해 드리고 늦은 오후에 나는 다시 원주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하루 더 있으라 했지만 준비할 것이 많아 마음이 바빴다. 오는 10일이 입소날자이지만 나는 9일 오후에 미리 입소하기로 하고 마트와 시장을 오가며 준비물을 챙겼다.

 

어제 선생님이 하신 말씀들이 얼핏 생각났다.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고... 그러고 보니 만남을 주선한 고선생과 나의 인연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내년쯤으로 잠정계획하고 있던 나의 이런저런 계획들이 조금 앞당겨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마도 이번 만남과 체험활동이 내게 큰 의미로 남을 것임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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