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8. 화. 맑음

 

잠을 설쳤다. 잠깐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깼더니 6시가 넘었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은 안샘엄마가 따라나섰다. 내가 늘 가던 강변길이 아닌 동네를 경유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지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할머니도 만나고 잣공장 근처의 수레국화꽃도 감상했다. 안샘엄마는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나는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중간에 그만 돌아간다고 하려다가 꾹 참았다. 아주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빨리 걷는 사람과 구태여 함께 걸을 이유가 없다. 새벽 산책길의 호젓함은 나 혼자 즐겨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간단한 아침이라 몸도 가볍고 맛도 좋다. 수도가를 대충 정리하고 요가샘 옷과 신발 등을 정리했다. 오늘 무슨 일로 그리 바쁘셨는지 허둥지둥한 흔적들이다. 9시 30분에 요가샘이 강당에서 요가수업을 하신다고 해서 갔더니 나와 장샘과 봉평에서 온 젊은이까지 3명이 함께했다. 요가샘은 평소의 모습과 요가할 때의 모습이 완연히 다르다. 깊은 호흡을 할 때마다 조금씩 평화로움을 느끼고 이제 조금씩 집중력도 좋아진다.

 

 

 

 

요가수업이 끝나고 봉평 젊은이, 나와 요가샘은 떡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난 콩설기를 좋아해서 만족했다. 이후 2시간 넘게 낮잠을 잤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다.

 

모두 외출했는지 숙소가 조용하다. 저녁준비를 하려는데 장선생이 부엌에 들어오신다. 요가샘이 오늘은 카레를 먹자고 메뉴를 정해 감자와 양파, 남은 삼겹살을 찾아 넣었다. 아차, 요가샘은 고기를 안 드시는데 넣어버렸다. 결국 요가샘은 드시지 않았지만 장샘과 구샘은 어찌나 잘 드시던지 함께 끓인 황탯국과 그 많은 카레가 동이 났다. 밥도 결국 내 쌀로 했는데 이젠 식재료를 구분해서 사용해야겠다. 물론 좋은 마음이기는 하나 내 식재료가 항상 부족하다.

 

식사 후 함께 강당에서 쑥뜸을 했다. 오래전에 한번 해보고 거의 처음인데 쑥뜸을 하니까 몸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

 

 

쑥뜸을 하면서 요가샘이 중간 퇴소자가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다들 놀라워하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요가샘이 많이 속상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름 잘해주려고 애썼는데 결과가 그렇게 됐다. 덕분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난 그분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암튼 어려운 일이다.

 

 

 

2024.6.17일. 월

 

숙면을 취해서인지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내 발소리에 잠이 깰까 봐 살금살금 걸어서 산책을 시작했다. 오전 5시 30분. 오늘은 로봇잔디깎이를 설치한 집을 지나다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변의 집중 가장 맘에 드는 집이었는데 역시 집을 고치는데 꽤 많은 수고와 돈을 들인 집이었다. 뒷곁도 안내를 해 주었는데 멋진 뒷곁과 잔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집의 매력은 집 앞의 소나무다. 너무 잘생긴 강원도의 금강송이다. 주인도 그 소나무 때문에 집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고 한다. 

 

산책 후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늘의 작업, 옥수수 곁순제거가 시작되었다. 옥수수는 씨앗을 심기도 하고 모종을 심기도 하는데 나는 알갱이 3개를 한 구멍에 넣고 싹이 나면 2개만 남기고 제거했던 기억이 있다. 구들마을에서 심은 옥수수는 팝콘 옥수수고 씨앗으로 심었지만 벌써 곁순이 많이 자라 제거하기엔 좀 늦은감이 있다. 아무튼 뙤약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쪼그리고 앉아 곁순을 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보기엔 해가 뜨기 전 선선할 때 할 일이지 이렇게 더운 날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서 할 일은 아닌 듯싶다. 2시간쯤 했을 때 내가 좀 쉬었다 하자고 제의하니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하신다. 좀 미안해서 30분 정도 더 하고 일단락 지었다. 이젠 근처 옥수수밭만 보면 모두들 '이 밭은 곁순제거를 안 했구먼' 하고 혀를 차며 웃곤 한다. 덧붙여 이젠 옥수수를 심어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고추농사가 그렇고 배추농사가 그렇고 감자, 고구마 모두 농부의 땀으로 맺은 결실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먹고 다루어야겠다.

 

땀 흘리고 난 후 오랜만에 학식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학식이란? 평창에 있는 서울대캠퍼스의 구내식당밥을 말한다. 오늘메뉴가 고구마닭갈비라고 해서 모두들 기대를 했는데 가격도 싸고 깨끗하고 맛도 좋았다. 

 

저녁은 휴가갔던 원샘엄마가 흑산도에서 사 온 홍어로 밥을 대신했다. 7시엔 히노끼로 만든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밤하늘의 달을 보며 호강에 겨운 야외 족욕을 했다. 물은 따뜻하고 공기는 상쾌하고 하늘의 별은 초롱했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연일 생기니 정말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2024.6.14. 금. 더움

 

평창 구들마을에서 농촌 살아보기 체험 중이다. 오늘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K-팜 행사에 참가했다. 각자 거주지가 달라 오늘 킨텍스에서 만나 일정을 함께했다. 행사는 킨텍스 제2전시실에서 이루어졌는데 행사가 빈약하고 엉성하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국단위 행사임에도 불참이 많다. 한창 바쁜 농촌이라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 같다. 태양잡초뽑기와 톱니호미를 팔고 있었는데 농촌생활은 잡초와의 전쟁이라 다양한 도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원샘은 태양호미를 샀는데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역시 고령화로 인한 농촌의 실태를 반영한 듯 보무도 당당한 다용도의 트랙터가 멋지다. 가격이 너무 비싸지만 정부보조가 있어서 그나마 구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저런 중장비를 다룰분들이 농촌에 있을지 걱정스럽다.

 

 

행사장에서 가장 눈에 띈 식물재배기, 스마트팜은 일단 그 화려함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아직 현실화하기엔 많은 장벽이 있다. 시설투자비와 영양적 가치, 환경과의 조화... 등. 

 

그리고 우리의 평창군 소개부스!

 

정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난감하다. 일단 전국단위의 행사였지만 미참가 시군도 상당하고 행사진행도 매우 어설펐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내가 봐도 문제가 몇 개씩 보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프린트물로 소개를 대신한 걸까? 이걸 누가 읽을 것이며 대다수의 부스가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고 생산물 샘플 몇 개 늘어놓은 것으로 행사를 하고 있으니 누가 이행사를 보러 올까? 싶다.

 

평창을 알리고 장점을 홍보하고 더 많은 귀촌, 귀농인을 오게 하려면 적어도 이런 식의 행사는 매력이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행사운영에 대한 반성과 대대적인 변화가 꼭 필요해 보인다. 

 

2024.6.16. 일요일

 

오후 5시 30분에 구들마을 도착, 고선생과 요가샘과 저녁을 먹기로 해서 조금 일찍 왔다. 고선생은 좀 늦는다고 해서 내가 밥과 반찬을 준비했다. 고선생은 언니텃밭에서 얻어왔다며 본인몫의 반찬을 모두 꺼내놓았다. 상추물김치와 상추, 감자등을 가득 가져왔다. 고선생이 잘 먹는 멸치볶음을 주었더니 좋아라 한다. 거의 다 먹었을 때 요가샘이 도착했는데 내가 만든 잣죽과 콩비지김치를 조금 드시고 만다.

 

고선생과 밤 10시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024. 6.12. 수. 더움

 

어제 선생님이 친척들 모임을 연이어 치렀더니 너무 피곤해서 몇 년 만에 처음 낮잠을 잤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새벽부터 밤까지 연일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친척들은 일 년에 몇 번이지만 이곳에 사는 선생님은 계속 손님들을 치러야 하니 참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더니 우리 일행이 있는 자리에서 내일 또 14명의 파워블로거들이 방문할 텐데 저녁과 아침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며 걱정을 하신다.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활짝 웃으시며 좋아하신다.

 

다음은 선생님과 나의 14인분 음식장만 이야기다.

사실 난 주부경력이 한참이지만 14인분의 음식은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도와드리는 일만 하겠다고 했던 것이고 지난번 선생님댁에서 잣죽과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보고 선생님께 요리 또는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생각한 음식은 벌써 머릿속에 메뉴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배추겉절이, 나물 (곤드레, 명아주, 눈개승마, 절인갓) , 돼지고기두루치기, 채소샐러드, 얼갈이 된장국, 등이었다. 음식장만은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일찍 일어난 나는 새벽에 산책을 나갔고 어제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다는 말을 얼핏 들어 9시에 맞춘다고 생각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벌써 차를 대기하고 계셨다. 내 신발이 없기에 산책 나갔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하신다.

 

얼른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 오늘이 봉평장날이었고 꽤 규모가 컸다. 선생님은 익숙한 길로 들어서서 늘 거래하는 집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주인은 주차장까지 오토바이로 배달해 주셨다. 근처 안경점의 주인과 친분이 있으신지 그분은 주차공간도 마련해 주시고 친절하게 차도 내어 주셨는데 공연얘기를 잠깐 하시는 거로 보아 함께 평창군일을 하시나 보다 하고 짐작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구들마을에 돌아와 나는 배추부터 다듬어 절이고, 파, 부추다듬고, 상추, 고수 및 샐러드용 채소 씻고 등 준비하는 시간만도 한참이 걸렸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점심때가 되자 일행 중 한 분이 함께 해서 일이 더 쉬워졌고 선생님은 어느 틈에 콩국수를 말아 주시고 일행분은 봄에 만들어 놓은 쑥개떡을 쪄주셔서 맛있게 점심으로 대신했다. 

 

*선생님의 양념

1. 된장 - 메주를 만들어 지금 내 방에서 띄워 직접 만든 된장이다.

2. 간장 - 된장 만들 때 함께 만든 조선된장

3. 디포리 - 누가 가져온 디포리를 달군 팬에 손으로 직접 볶아서 국물을 만든다.

4. 양파 - 양파껍질을 버리지 않고 바짝 말려두었다가 국물요리할 때 미리 끓여 육수로 사용

5. 올리브유

6. 멸치액젓 -친정 엄마가 생멸치를 사다가 만든 멸치젓을 고운 천에 걸러 액젓으로 사용

7. 고춧가루 - 가을에 홍고추를 반건조한 뒤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김치 할 때마다 갈아서 사용

 

나는 선생님 옆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필요한 도구를 집어 주거나 계속 나오는 설거지거리를 씻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직장생활을 했는데 언제 요리하는 걸 배웠냐며 ㅎㅎㅎ, 단수가 보통이 아니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오후 6시, 식사시간에 맞춰 음식이 차려졌고 14명과 스텝관계자들의 저녁시간이 끝났다. 나머지 음식으로 우리 구들마을 일행도 저녁을 먹고 나니 정말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샘이 일을 도우고 어찌어찌 서로 치우다 보니 일이 마무리되었다. 참 대단한 하루였다. 밤하늘의 별은 총총하고 일행은 시원한 마당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조금 후 조용히 나오신 선생님은 내일 아침은 황태콩나물해장국을 끓이라는 메뉴선정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에게 도와달라는 말로 들렸다.

 

2024. 6.13. 더움

 

새벽 4시. 잠이 깼다. 역시 기온차로 안개가 자욱한 평창의 아침이다. 새들이 노래한다. 평화로운 아침풍경이다.

아직 잠들어 있을 일행들이 깰까 조금 더 누워있다가 얼른 세수하고 어제 말려 둔 그릇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6시가 좀 넘자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 메뉴가 황태해장국, 계란말이, 샐러드. 아침이라 간소하다.

 

선생님은 엄청난 양의 콩나물과 어제 잘라둔 황태포를 넣고 미리 끓여둔 육수를 사용해서 황태콩나물해장국을 끓이셨는데 쌀뜨물까지 알뜰히 챙겨 넣으셔서 진하고 보얀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젊은 친구들이라 계란말이도 하셨는데 뚱뚱한 계란말이는 처음 해본 다고 하시는데도 너무 잘하셨다. 내가 불조절을 해 드리니까 손발이 척척 맞는 내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최고의 조수라고 또 칭찬을 해 주신다.

 

선생님은 처음 만나는 14명의 음식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셨다. 부모가 자식을 먹이듯이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고,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발효액을 아낌없이 썼으며 지난해부터 갈무리해 온 재료도 아낌없이 내어 그들을 대접했다. 마치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듯 말이다. 난 정말 감동했고 숙연해졌다.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과 시간을 함께하며 인간에 대해 이렇게 사랑을 베플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좋은 사람도 많이 보고 만나기도 했지만 소리 없이 담담하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선생님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편안하고 고요해질 수 있었다.

 

오늘은 나와 선생님 둘이 14명의 아침을 준비해야 해서 내가 뷔페식으로 하자고 권하고 상을 차려놓으니 사무장과 선생님도 순순히 따라주셨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곧 침, 뜸체험이 이어져서 바로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휴가 받은 엄마대신 한샘이 나타나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참 예의 바르고 싹싹한 딸내미다.

 

침, 뜸 체험 후 블로거들은 족욕체험을 끝으로 돌아갔고 우리 일행은 드디어 일에서 벗어나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구선생님 덕분에 오래간만에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었다. 함께 한 일행분들의 개인사와 각자의 취미, 앞으로 평창에 땅을 구해 정착하고 싶다는 바람들을 들으며 모두 자연을 사랑하고 온화한 사람들 같아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쩜 이렇게 생각도 비슷한지...

 

얼마 뒤 마을 노인들이 강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이 남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초대한 것 같다. 큰일이다. 내일 일산 킨텍스에서 K-팜 전람회에 참석하는 일이 갑자기 정해져 다들 집으로 퇴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짐을 챙기고 있었던 터라 혼자 뒷정리하실 선생님이 좀 걱정되어 부랴부랴 대충 정리를 해놓고 원주로 향했다.

 

선생님은 올해부터 수행자가 되었다고 하셨다. 작년 겨울 스승께서 너는 수행자가 되라고 하셔서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하셨고 딱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란색옷을 입는 것으로 표시를 한다고 하셨다. 대부분 채식을 하시고 여태껏 하시던 대로 명상수행을 하신다고 하셨다. 수행자가 되고 명상수행을 계속하는 이유가 뭐냐는 나의 우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명상을 통해 사람들이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려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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