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20.34도

 

아주 오래전 백룡동굴 입구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프로그램은 그 백룡동굴 탐방이다. 동굴 가는 길은 정말 환상의 풍경이었다. 무릉도원이랄까?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 잘 보전된 곳에 백룡동굴이 있었다. 백운산의 백자와 발견자 김무룡의 룡자를 따서 백룡동굴로 명명했다고 한다. 탈의장에서 정해진 안전복과 해드렌턴, 장화, 허리띠, 장갑을 착용 후 안내원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밖은 30도를 오르내리지만 동굴 안은 10도 안팎이고 너무 시원했다. 발견 이후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제대로 보존된 동굴은 원시 그 자체라 허리를 숙이고, 게걸음으로, 때론 엎드려 기거나 네발로 기어야 하는 난코스가 있어서 65세 이상은 나이제한을 두고 있다. 아무튼 내가 본 환선굴도 좋고 고씨동굴도 좋고 만장굴도 좋지만 단연 백룡동굴이 최고다. 입장료 18000원이 아깝지 않았다. 더구나 가이드의 맛깔스러운 동굴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를 더했으며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했다. 강력 추천!

 

2시간 코스의 동굴탐험을 마치고 함께 평창시장 맛집을 찾아갔는데 오랜만에 맛보는 옹심이 칼국수가 정말 맛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마침 평창장날이라 손님도 많았는데 다행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진 않았다.

 

 

 

맛있는 옹심이를 먹고 마침 장날이라 장구경을 했다. 날이 더워 대충 보고 가는 길에 웰컴투동막골 세트장을 가기로 했다. 모두 그 영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트장은 이제 인기가 시들해졌는지 깨끗하지만 낡아 있었다. 걷다 보니 오래전 봤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중 압권은 단연 팝콘이 터지던 장면.

 

 

우습게도 더 좋았던 것은 입구에 있던 폐광산터널이었는데  안에서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 나왔다. 잠깐만 앉아 있어도 금세 시원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 2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요가샘과 고선생이 저녁밥을 먹으라고 깨운다. 맛있게 차려진 저녁을 대접받고 보름달구경을 하다가 요가샘 집에 가서 명상을 했다. 오늘은 꽤 긴 시간 명상을 했는데 지난번 보다 더 좋았다. 곁에서 두 사람의 집중력과 흔들림 없는 자세가 느껴져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잘은 모르지만 두 사람의 고요한 에너지가 절로 느껴져 신기하기도 했다. 자정이 깊어 고선생은 나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갔다. 밤운전이 걱정됐지만 보름달과 함께 운전해서 너무 좋았다는 문자로 도착을 알렸다. 나도 화장실을 핑계로 보름달을 한 번 더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4. 6.19. 수. 34도

 

아침산책은 평소 거리의 반쯤에서 돌아왔다. 벌써부터 햇살이 장난 아니게 눈부시다. 그늘만 이용해서 걷고 오다가 맛있는 오디나무를 발견했다. 한 움큼 따 먹고 내일아침 또 먹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비밀정원이 생긴 것처럼 웃음이 나온다. 

 

텃밭채소로 가벼운 아침을 먹고 오늘은 평창에 있는 평창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교육을 받으러 안샘차를 타고 출발했다. 애써 준비한 프로그램이지만 인원이 적다. 그래도 전국에서 평창의 인기가 꽤 높다고 한다. 감동적인 것은 성공한 귀농귀촌인과의 대화였다. 전직 교장으로 유기농 사과재배에 성공한 분, 서울에서 0 하나를 잘못 보고 정착한 후 된장과 배추농사까지 다양한 품목을 계약재배에 성공한 분, 몸이 아파 평창에 왔다가 약용버섯을 길러 성공한 세 분의 고생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감동적이고 마음을 울렸다. 결국 듣던 우리까지 눈물바다가 될 정도로 고생한 끝에 지금은 다들 자리가 잡히고 오히려 귀농하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열정까지 불태우고 있는 세분을 보며 인간승리라는 생각을 했다. 귀농귀촌, 귀어하려는 분들은 나처럼 살아보기 체험이나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해 현장의 소리를 들어보고 간접 경험도 해 보고 각 시도의 농촌담당 공무원의 도움을 받으면 시행착오를 좀 줄일 것 같다.

 

교육이 끝난 후 메밀로 유명한 봉평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먹고 마침 봉평장날이라 구경하면서 장을 봤다. 정말 맛있는 블루베리와 송편, 찹쌀떡, 체리를 샀다. 요가샘은 찹쌀떡을 맛있게 드신다.

 

 

숙소로 오는 길에 안샘이 황창연신부님의 빌립보 생태마을을 제의했다. 너무 더운 날이라 거절할까 하다가 고선생이 부탁한 청국장가루도 살 겸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도 궁금했었기에 다녀오기로 했다. 빌립보 생태마을은 평창강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독대가 멋지다. 날이 너무 더워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진 성당도 잠깐보고 숙소로 향했다.

 

 

오후일정은 쿠킹클레스.  요가샘이 비빔밥으로 메뉴를 정해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 오래간만에 구샘과 장샘도 부엌에 들어왔다. 구샘의 당근 볶기 시범에 다들 놀랐다.

 

요가선생님이 직접 가꾼 눈개승마와 곤드레나물, 텃밭에서 막 따온 상추, 부추와 담근 고추장으로 맛을 낸 비빔밥은 정말 최고였다. 물론 육식파 선생님들은 별로인 눈치다. 내가 준비한 수박을 끝으로 오늘은 사무장과 고선생도 함께 식사를 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요가선생님이 아들을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ㅎㅎ 

 

저녁을 먹은 설거지그릇이 산처럼 쌓였는데 다들 들어가 버리고 고선생과 내가 설거지를 했다. 많이 달라진 고선생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동안 수련과 명상을 통해 더 깊어지고 배려심도 많아지고 단호해진 것 같다. 

 

 

 

 

 

 

2024.6.18. 화. 맑음

 

잠을 설쳤다. 잠깐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깼더니 6시가 넘었다. 조금 늦은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은 안샘엄마가 따라나섰다. 내가 늘 가던 강변길이 아닌 동네를 경유하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지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할머니도 만나고 잣공장 근처의 수레국화꽃도 감상했다. 안샘엄마는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나는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중간에 그만 돌아간다고 하려다가 꾹 참았다. 아주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 빨리 걷는 사람과 구태여 함께 걸을 이유가 없다. 새벽 산책길의 호젓함은 나 혼자 즐겨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간단한 아침이라 몸도 가볍고 맛도 좋다. 수도가를 대충 정리하고 요가샘 옷과 신발 등을 정리했다. 오늘 무슨 일로 그리 바쁘셨는지 허둥지둥한 흔적들이다. 9시 30분에 요가샘이 강당에서 요가수업을 하신다고 해서 갔더니 나와 장샘과 봉평에서 온 젊은이까지 3명이 함께했다. 요가샘은 평소의 모습과 요가할 때의 모습이 완연히 다르다. 깊은 호흡을 할 때마다 조금씩 평화로움을 느끼고 이제 조금씩 집중력도 좋아진다.

 

 

 

 

요가수업이 끝나고 봉평 젊은이, 나와 요가샘은 떡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난 콩설기를 좋아해서 만족했다. 이후 2시간 넘게 낮잠을 잤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다.

 

모두 외출했는지 숙소가 조용하다. 저녁준비를 하려는데 장선생이 부엌에 들어오신다. 요가샘이 오늘은 카레를 먹자고 메뉴를 정해 감자와 양파, 남은 삼겹살을 찾아 넣었다. 아차, 요가샘은 고기를 안 드시는데 넣어버렸다. 결국 요가샘은 드시지 않았지만 장샘과 구샘은 어찌나 잘 드시던지 함께 끓인 황탯국과 그 많은 카레가 동이 났다. 밥도 결국 내 쌀로 했는데 이젠 식재료를 구분해서 사용해야겠다. 물론 좋은 마음이기는 하나 내 식재료가 항상 부족하다.

 

식사 후 함께 강당에서 쑥뜸을 했다. 오래전에 한번 해보고 거의 처음인데 쑥뜸을 하니까 몸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

 

 

쑥뜸을 하면서 요가샘이 중간 퇴소자가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다들 놀라워하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요가샘이 많이 속상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름 잘해주려고 애썼는데 결과가 그렇게 됐다. 덕분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난 그분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암튼 어려운 일이다.

 

 

 

2024.6.17일. 월

 

숙면을 취해서인지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내 발소리에 잠이 깰까 봐 살금살금 걸어서 산책을 시작했다. 오전 5시 30분. 오늘은 로봇잔디깎이를 설치한 집을 지나다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변의 집중 가장 맘에 드는 집이었는데 역시 집을 고치는데 꽤 많은 수고와 돈을 들인 집이었다. 뒷곁도 안내를 해 주었는데 멋진 뒷곁과 잔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집의 매력은 집 앞의 소나무다. 너무 잘생긴 강원도의 금강송이다. 주인도 그 소나무 때문에 집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고 한다. 

 

산책 후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늘의 작업, 옥수수 곁순제거가 시작되었다. 옥수수는 씨앗을 심기도 하고 모종을 심기도 하는데 나는 알갱이 3개를 한 구멍에 넣고 싹이 나면 2개만 남기고 제거했던 기억이 있다. 구들마을에서 심은 옥수수는 팝콘 옥수수고 씨앗으로 심었지만 벌써 곁순이 많이 자라 제거하기엔 좀 늦은감이 있다. 아무튼 뙤약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쪼그리고 앉아 곁순을 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보기엔 해가 뜨기 전 선선할 때 할 일이지 이렇게 더운 날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서 할 일은 아닌 듯싶다. 2시간쯤 했을 때 내가 좀 쉬었다 하자고 제의하니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하신다. 좀 미안해서 30분 정도 더 하고 일단락 지었다. 이젠 근처 옥수수밭만 보면 모두들 '이 밭은 곁순제거를 안 했구먼' 하고 혀를 차며 웃곤 한다. 덧붙여 이젠 옥수수를 심어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고추농사가 그렇고 배추농사가 그렇고 감자, 고구마 모두 농부의 땀으로 맺은 결실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먹고 다루어야겠다.

 

땀 흘리고 난 후 오랜만에 학식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학식이란? 평창에 있는 서울대캠퍼스의 구내식당밥을 말한다. 오늘메뉴가 고구마닭갈비라고 해서 모두들 기대를 했는데 가격도 싸고 깨끗하고 맛도 좋았다. 

 

저녁은 휴가갔던 원샘엄마가 흑산도에서 사 온 홍어로 밥을 대신했다. 7시엔 히노끼로 만든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밤하늘의 달을 보며 호강에 겨운 야외 족욕을 했다. 물은 따뜻하고 공기는 상쾌하고 하늘의 별은 초롱했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연일 생기니 정말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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