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은 경신년에 지어진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 산자락 아래 오성마을로 옮겨 이축한 한옥입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건축을 자랑하는 미술관과 생활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원은 건축이 공학이면서 인문학임을 자랑하는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현대와 전통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공간을 연출해 내는 나의 정원이고 우리들의 정원입니다.
삼례시장은 5일장으로 전통시장의 상권과 지역의 문화관광자원을 바탕으로 2018년 7월 현대식 복합 상업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삼례시장에 도착한 날은 하필이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장날(3,8일)이었다. 갈치며 병어, 가을이라 감, 마늘, 각종 묘목류 등이 있었다. 장날 구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밌다.
주차-시장 끝에 있는 소형주차장(무료) 이용
'새참수레'는 모악산의 '행복정거장', 비비정의 '농가 레스토랑'과 함께 로컬푸드의 본고장 완주군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철 식재료로 상을 차려내어 완주만의 특별한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천호산은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의 대둔산 줄기가 서남쪽 호남평야로 이어지면서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에 위치한다. 천호산(天壺山)은 그 이름처럼 천주에 대한 신앙을 지켜낸 사람들이 품어 안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의 피를 담은 병(壺)의 구실을 하고 있다.
천호성지 일대는 박해시대 다리실 교우촌(현 천호 본당)을 비롯하여 주변에 58개소에 달하는 공소가 있었다.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각 지역은 <택리지>의 설명에 의하면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이런 곳으로 들어와 땅을 일구고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의 피와 땀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를 일구었다.
천호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 사적지로 1866년 병인박해 시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베드로), 성 손선지(베드로),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요셉)과 같은 해 8월 28일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들과 그 밖의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천호산에 종적을 알지 못한 채 묻혀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天呼)을 듣고 이에 응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하느님께 바쳤다.
다리실 교우촌-천호 본당 공동체의 역사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천호산에 들어온 교우들이 한 신자의 집에 공소를 설치하여 신앙교육과 기도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천호마을은 본래 고흥 유 씨 소유의 종산이며 척박한 땅이었다. 교우들은 이 척박한 땅을 피땀 흘려 일구었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형제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면 서로 돕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래서 한 신자는 " 모두가 성인 아니면 못 살 수도원과 같은 생활을 했다" 고 유서에 기록하기도 했다.
1909년 되재 본당 베르몽(목세영) 신부님을 비롯하여 되재 보는가 천호 공소 회장들 12명이 합심하여 고흥 유씨로부터 150 정보에 이르는 천호 일대의 땅을 매입하였다. 1941년 8월 150 정보 중 75 정보는 각자 분양하고 나머지 75 정보는 7명(목세영 신부, 김여선, 박준호, 이만보, 민갑룡, 장정운, 김현구)이 교회에 봉헌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전신자 교우촌의 전통을 이어가며 순교신앙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고 있다.
전주교구는 이 일대에 이루어졌던 58개의 교우촌을 기념하여 2008년 기념성당을 건립하였고 2009년 천호 공소를 천호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천호 순교 성인들의 묘
사랑과 평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진리와 정의는 하느님의 뜻이요 동시에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이런 고귀한 가치와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친 님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성 이명서(베드로 47세), 성 손선지(베드로 47세),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66세), 성 한재권(요셉 33세)은 완주군 소양면에 살다가 1866년 12월 5일 관원에게 잡혀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목이 베여 순교하였다. 이분들은 전주천 범바위 밑 도랑가에 임시 묻혔다가 성 손선지(베드로 47세),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66세), 성 한재권(요셉 33세)은 가족들에 의하여 1867년 3월 초순경 이곳에 안장되었다.
성 이명서는 소양면 유상리에 안장되었다가 후손들이 1920년 진안 어은동 모시골로 옮겨 모셨다. 그 후 한국 순교자 현양회가 1968년 서울 절두산으로 옮긴 것을 1988년 10월 1일 다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순교자 김영오(아우구스틴, 62세)는 완주군 운주면 빼재에 살다가 1866년 8월 충청도 연산 상사바위에서 잡혀 공주로 끌려가 그 해 8월 28일 순교하였다. 그 시신을 큰아들이 훔쳐내어 완주군 운주면 수청리에 안장하였는데 1988년 9월 30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열 분의 순교자들은 1868년 가을 여산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처형된 후 미나리꽝에 버려진 시신을
신도들이 어두운 밤에 죽음을 무릅쓰고 건져다가 이 산에 모셨다.
1983년 5월 천호산에 묻힌 순교자들의 발굴작업으로 그동안 돕는 이가 없어 잃어버렸던 성 정문호, 성 한재권 두 분의 유해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열 분의 유해를 찾아내어 이곳에 안장하였다. 천호산에는 아직도 묻힌곳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여러분 계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지가 마련된 것은 천호산에 묻힌 순교자들의 유해를 보존하기 위해 되재 본당 목세영(프랑스) 신부가 12명의 교우들과 함께 1909년 150 정보를 매입하였고 1940년경 그중 70 정보를 김여선, 이만보, 장정운, 김현구, 박준호, 민감용, 송예용이 교회에 봉헌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984년부터 천호 성역화 사업을 벌여 1985년 11월 30일 전주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선포일에 맞춰 순교자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천호산 기슭에 자리한 이곳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도들이 피난처로 은신했던 곳이다. 많은 순교자들의 무덤이 봉인돼 있어 순교 순례지로도 유명하며, 성당과 사제관, 성물박물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