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분에 넘치게 누리는 것이 꽤 많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자전거를 타고 먼 산에 가서 약수를 떠 오시곤 한 컵 가득 따라 주며 " 이 거봐라, 물이 얼마나 맛있니! 이런 물은 돈 주고도 못 사 먹는단다" 하셨다. 물론 시원하고 달고 맛있었지만 그 먼 길을 애써 가고 싶진 않아 그냥 사 먹거나 끓여 먹곤 했다. 이제 내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서 떠 오는 물이 생겼다. 가는 길에 산도 보고 오는 길에 장도 보고 가끔은 출사 겸 가기도 한다.

 

 미니멀하게 사는게 요즘 트렌드라 식상하지만 난 사실 몇 년 전부터 많은 부분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흥청망청 아끼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약수다. 나는 자주 약수로 세수하고, 약수로 밥하고, 약수로 물김치를 담그는 호사를 부린다. 덕분에 茶도 잘 안마시게 됐다. 물맛을 구별할 수 있는 혀도 갖게 되었고, 여기저기 주변 사람들에게 약수 선물도 하게 됐다. 물론 매우 좋아한다.  요즈음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약수 선물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환경오염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갖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약수 덕분이다.

 노자의 上善若水를 말하지 않아도 무색, 무취, 무미의 물이 우리에게 주는 德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올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오히려 해가 된 지역도 많다. 하지만 어찌보면 인간에 의한 인재라고 볼 수 있는 수해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물은 무죄다. 나는 나의 사치스러운 약수 생활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약수 뜨러 간다.

 

 

요즘, 푹푹 찌는 무더위가 꽤 성가시다.

선풍기는 꺼내놓았지만 좋아하지 않아 아직 틀지는 않고 있고, 세수를 자주 하고, 되도록 불을 안 쓰는 음식을 먹고, 너무 덥다 싶으면 욕실에 가서 탁족(?)을 하며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에어컨을 살까 말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는데 올여름도 그냥 보내야겠다.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여름 일본에 다녀왔다. 통일교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통일교 신자는 아니지만 덕을 본 셈이다. 아무튼 9일간의 일본여행이라는(그 당시는 해외여행이 불가하던 시절)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히로시마광장에서 열린 '평화의 날 기념식'은 아직도 기억이 뚜렷하다.

위 사진은 그당시 히로시마 광장에서 본 '평화의 날' 기념식 사진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간신히 찍었었다. 다른 사진도 있었지만 소실되어 없다. 행사장은 핵무기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과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희생된 일본인의 죽음과 고통을 널리 알리는 행사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정작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희생된 많은 죽음에 대한 반성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도 잘 몰랐지만 세월이 이만큼 흐른 지금도 난 여전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이미지 출처  <강원도 평창 소재 한국 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 한국자생식물원 제공 © 뉴스 1>

   지난 7월, 그동안 사정상 문을 닫았다가 6월부터 다시 개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평창에 있는 '한국 자생식물원'에 갔다. 특별히 화려한 곳이 아니라 오는 사람들이 적고 비교적 호젓해서 좋았던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일찍 길을 나섰다. 가는 길은 여전히 고즈넉하고 조용했으며 새로 단장한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책이 꽂혀있는 넓은 서가와 자작나무를 심어 놓은 운치 있는 찻집은 나름 쉴 공간으로도 맞춤이었다. 일찍 온 관계로 조용한 그곳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내가 좋아하는 푸른 산수국이 가득한 곳을 아주 아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아베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즈음은 윤미향 씨와 할머니들의 문제로 온 세상이 시끄럽던 때였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았다. 나는 이런 것을 만들어 놓은 이 식물원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꽃도 보고 계곡의 물소리도 들으며 마음을 식히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두리번거리다가 그곳을 관리하는 분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전에 몇 번 와서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줄여보면 이렇다. 이곳 '한국 자생식물원'은 개인 소유이며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심신에 상처를 받은 관장이  이곳에 우리나라 토종 자생 식물을 심고 정성을 쏟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그동안 화마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다시 재 정비해서 이제 개원한 지 한 달 되었다는 것. 입장료 받고 들어오는 분들이 볼 게 없다고 투덜대거나, 입장료가 비싸다고 해서 속상하다는 것.

 여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을 야생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에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아마도 현대식의 화려한 식물원을 생각하고 오신 분들이 실망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종종 있나 보다. 더구나 입장료는 이 자생식물원을 유지하는데 턱도 없는 수준, 이렇듯 재정이 안 좋으니 음식을 팔거나 카페를 운영하라는 유혹도 많다고 한다. 처음부터 상업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런 돈 안 되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겠지 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그래도 전과 달리 지금은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변화를 주려 애쓰곤 있지만 난 또 문을 닫게 될까 걱정이 된다.

 가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와서 이런저런 도움도 주고, 원내에 있는 전시실엔 비싼(?) 그림임에도 선뜻 걸어 주어 자리를 빛내주는 화가도 있는 모양이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나는 그분에게 커피 한잔을 선물로 드리고 자작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숲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이러저러하게 일본에 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갤럭시 노트9 촬영

 

 

 

 

 

불과 흙으로 빚어 낸 장인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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