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가서

마른 나뭇잎, 빛바랜 이끼, 바스러질 것만 같은 나무삭정이, 흙속에 반쯤 몸을 숨긴 조약돌,

나무사이로 비켜가는 바람, 돌밑을 흐르는 작은 물소리를 만나고 왔다.

 

 

 

 

겨울이 있던 자리에 봄볕이 스며들고 있다.

 

겨우내 바람에 흔들리고 눈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견뎌온 저 작은 풀잎들.

 

작으나 결코 부족하지 않고

가벼워서 오히려 진중한 비움의 결정체.

자연은 언제나 나의 스승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오래된 라이카  X Vario를 가져간다. 흑백사진, 정확히 말하면 이 카메라의 경조흑백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뷰파인더가 없어서 사실 찍을 때마다 감으로 대충 찍기 때문에 돌아와 모니터로 확인하면 사진의 대부분은 엉망일 경우가 많다. 결국 많은 사진들은 무참히 버려지고 그중 한 두장만 겨우 남겨진다.

 

위의 사진은 2023년 3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멀리 백양사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못 보고 실망한 채 절집 구경을 하다가 오래 묵은 기와담에 핀 이끼를 찍은 것이다. 그날의 추위와 실망이 고스란히 기억된다.

 

 

 

 

 

위 사진은 2023년 5월, 홍천 수타사에서 찍은 목수국이다.

 

바리오의 경조흑백 꽃사진도 나는 참 좋아한다.

꽃은 고유의 화려한 색감이 있지만 흑백으로 찍으면 그저 희고 검은 꽃으로 단순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고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바리오의 섬세한 흑백농담이 좋다.

특히 하얀 꽃, 예를 들면 국화나 백련, 목수국 등이 필 때면 빨리 출사를 가고 싶다.

 

나의 사진여행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여행이 사진으로 더욱 풍성해지고 사진 찍기로 인해 여행의 기억은 배가되기도 한다.

 

바리오 덕분에 천천히 찍을 수밖에 없는 사정 또한 오히려 좋다.

 

다음은 몇 장의 경조흑백 사진을 모은 유튜브영상이다.

 

라이카 X Vario 경조흑백 #5 (youtube.com)

 

 

 

 

 

 

 

 

 

천년의 사랑

 

팔레스타인 광야의 천 년 된 올리브나무.

올리브 나무가 천년을 살아도 이토록

키가 크지 않는 건 사랑, 사랑 때문이다.

하루하루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짜 올려

사랑으로 피고 맺은 좋은 것들을 다

아낌없이 내어주고 바쳐왔기 때문이다.

보라, 구멍 나고 주름 깊은 내 모습을.

내 상처의 성흔을. 이 모습 그대로가 사랑이니

구멍 뚫린 그 자리에 신성한 잉태의 빛을 품고

오늘도 아이 같은 새순을 밀어 올리는

천년의 사랑, 천년의 올리브나무.

 

 

 

 

 

 

 

 

박노해작가의  시도 좋아하고, 흑백사진도 좋아하고, 현재진행형인 그의 삶의 여정도 좋아한다.

이번 전시회는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나무가 주제라 더더욱 감동이었다.

(나의 유튜브아이디도 올리브이다.)

 

어떤 이는 사진보다 글이 더 빛나고, 어떤이는 글보다 사진이 더 빛나곤 하지만 

박노해작가는 글과 사진과 삶이 삼위일체처럼 보인다.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쁜 일이다.

 

전시회를 보고 1층으로 내려와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허브차로 점심을 대신했다.

 

2층 갤러리 계단엔 지난번처럼 동백이 한창이었다.

한해를 잘 보냈는지 꽃도 더 탐스럽고 키도 조금 큰 것 같아 반가웠다.

 

....

 

집에 돌아와 그의 시집 중 하나인 '걷는 독서'를 읽었다.

 

말씀은 가만가만.

걸음은 나직나직.

마음은 한들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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