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성당은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 양촌 본당(초대 주임 퀴를리에)으로 설립된 이후 1899년 이곳 합덕리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이 되었다.

합덕지역은 한국천주교회의 창설 직후 천주교 신앙이 가장 적극적으로 전파된 이른바 '내포 교회'의 중심지였다. 내포 천주교회는 박해 동안에도 신자수가 끊임없이 늘어났고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기나긴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찾아오자 순교의 터 위에 합덕성당을 세움으로써 순교자의 염원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합덕성당은 순교의 열매인 동시에 새로운 신앙의 씨앗이 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하였으며 현재 대전교구 모든 성당들의 모본당이 된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올리고 기도하는 성당의 형상처럼 지금도 변함없는 기도와 미사가 교우들에 의해 봉헌된다.

오늘도 간절히 올리는 교우들의 기도가 이곳을 순례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으로 되돌려 지기를 성인들의 전구에 기대어 청한다.

한편 성당자리는 1894년 갑오년에 전라도 고부보다 앞서 발생한 합덕 농민항쟁의 시발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성당 안내문 발췌)

 

 

*내포 지역의 천주교는 1784년 여사울 출신의 이존창이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내포 지역의 천주교는 다른 곳보다 빠르게 퍼져 나갔고,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이는 내포지역 사람들의 개방적인 종교적 심성과 수로, 바닷길, 발달된 육로 등 외부와 교류하기 좋은 지리적 요건, 포구, 간척 지대, 월경지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살아온 내포 주민들의 동질성 등으로  이 지역 천주교 성장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이어진 혹독한 박해로 인해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른다.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오랜 박해의 충격으로 신자 공동체는 제대로 터를 잡지 목했는데 1892년 프랑스 선교사 퀴를리에 신부가 양촌, 지금의 합덕 성당을 세우면서 서서히 내포 신자들은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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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도 아름답다는 것을 단양 이끼 터널에서 보고 알았다.

학산 시골집 뒤뜰이 습해서 늘 텃밭 한쪽에 이끼가 두텁게 자랐다.

 

옆에 있는 블루베리에 나쁠 것 같아

걷어내고 나면,

또 어느 틈에 꽃까지 피워내어 난감했던 그 이끼들이

단양 이끼터널에선 벽을 온통 차지하고 푸르름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끼도 아름답구나!

지금이 한창인 계절인지 빈틈없이 터널 벽을 꽉 채운 푸른 이끼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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