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기르고 있는 난초가 갑자기 꽃대를 내밀었다. 

 

매해 6월경에 꽃을 피웠는데

올해는 꽃이 안피기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연신 돌아보며 걱정했었다.

 

그러더니 

이 한여름에 꽃대를 3개나 내밀고

집안 가득 향기를 채운다.

 

그저 고마울뿐이다.

여름이면 나의 주식이 바뀔 때가 많다.

밥순이에서 옥수수순이로.

 

원주 새벽시장에 갔더니 요즘 옥수수가 한창이다.

강원도 살면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옥수수다.

찰옥수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백 찰옥수수다.

 

강원도 옥수수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옥수수는 '홍천 찰옥수수'라고

얼마 전 나와 원주 친구는 의견통일을 했다.

 

*

예전 학산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첫해, 미백 옥수수를 심었는데

그해 옥수수가 어찌나 잘됐는지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었다.

 

미백은 맛도 좋지만 생김도 너무 가지런하고 빛깔도 고와서

그해 나는 농사꾼이 다 된 양 우쭐했었다.

 

동네분들이

옥수수수염이 '개꼬리'처럼 되었을 때

옥수수를 따야 한다고 해서

매일매일 옥수수 꼭지를 들춰보다가

처음 수확한 옥수수를 

더위와 씨름하며 맛있게 찐 다음,

농고 옆에 있는 '강릉보육원'에 주고 왔다.

 

나는 나의 첫 작품을 가장 좋은 일에 쓰고 싶어

마트에서 과자와 라면등을 더해

찐 옥수수와 함께 아이들에게

가져갔던 것이다.

 

 

오늘도 새벽시장에 나가

갓 따온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 한두 개를 남겨 

집에 가져왔다.

 

소금과 당원을 조금 넣고 푹푹 삶은 다음

차게 식혀서

냉동실에 쟁여두었다.

 

냉장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하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옥수수가 있어서.

 

여름이 무르익어 간다.

1. 정수장

 

2. 남산공원

 

 

3. 중앙고등학교 수양벚꽃

 

 

4. 경포대

 

5. 금란정

 

6. 허균 허난설헌 생가

 

 

강릉엔 벚꽃명소가 많다.

내가 살던 내곡동 근처 '가톨릭 관동대' 가는 길엔 가로수처럼 벚꽃이 만발해서 구태여 

벚꽃을 보러 가지 않아도 산책하듯 걸으며 볼 수 있다.

 

조금 내려가면 남산이 있는데 이곳은 양지바른 곳이라 강릉시내에서 가장 일찍 벚꽃이 핀다.

나무에 조명을 달아서 밤이면 멀리서도 오색찬란한 밤 벚꽃을 구경을 할 수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오성정이라는 정자도 있고

운동기구도 있어 주변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좀 일찍 벚꽃을 볼 수 있는곳으로 정수장이 있다.

전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는데

요새 소문이 나서 제법 붐빈다.

일찍 가면 사람도 없고 제법 긴 벚꽃길을 걸으며 호젓한 산책을 할 수 있어 좋다.

 

회산동에서부터 바닷가 송정까지 남대천을 따라 심어놓은 벚꽃길도 꽤 멋지다

중간에 시장도 보고 오리구경도 하면서 걷다 보면 정말 멋진 경험을 할 것이다.

 

강릉사람 중에서도 잘 모르는 유명한 벚꽃 명소로

강릉중앙고등학교(옛 강릉농공고)에 있는 거의 90여 년 되는

수양벚꽃도 있다.

오래 묵은 벚나무라

그 옆에 있는 교목 '히말라야 시타'와 함께 동문들의 자랑이요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나무다.

내가 본 수양벚꽃 중 최고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도 가장 만개한 모습을 보여 더욱 감동했다.

 

강릉 벚꽃 명소 하면 당연히 '경포대'를 말한다.

경포대 가는 길부터 경포호수 전체가 벚꽃으로 이루어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호수따라 걸으며 꽃구경을 해도 좋고 호수 건너편 허균 생가 쪽 습지도 좋다.

자전거를 빌린다면 더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아무렴 경포대에서 보는 벚꽃만 할까!

조금 일찍 경포대에 올라 신발 고이 벗고

누대 기둥 사이로 보이는 호수와 벚꽃 가로수를 보면

왜 이곳에 누대를 지었는지 절로 감탄하게 된다.

 

경포대 못 미쳐 우람한 벚나무 뒤편으로 '금란정'이 있다.

이 정자는 조선 말기 선비 김형진이 경포대 북쪽 시루봉 아래에 건물을 짓고 매화를 심어 학과 더불어 노닐던 곳이라 '매학정'이라 불렀다. 그 후 '금란계원'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현 위치로 옮겨진 후 금란정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안내문 참조).

오래전 내가 도서관에 근무할 때 금란계의 총무이신 분이 금란계원 문집을 기증하겠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이제 계원들의 연세가 많고 한시를 짓거나 한문으로 문장을 짓는 이가 없어 금란계 문집이 거의 마지막일 듯싶다고

하시며 자신의 나이가 그중 젊어 총무라고 하셨다.

지금쯤 모두 돌아가시고 금란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듯싶어 아쉽기만 하다.

 

강릉이 낳은 여류시인 허난설헌 생가 또한 벚꽃 명소다.

생가 앞마당을 관리인이 빗자루로 정갈하게 쓸어낸 자리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가면

붉은 흙벽과 함께 피는 명자꽃, 뒤뜰 장독대 옆에 있는 앵두나무까지 꽃잔치가 열린 고택을

한가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만개한 하얀 벚나무와 비교되는 검은 기와와

오래된 목재기둥이 보이는 고택 툇마루에서 보는 봄꽃 구경이 제일 좋다.

 

늘 느끼지만 이곳은 조선의 여인으로, 시인으로, 불행한 엄마로 살다 일찍 요절한

허난설헌의 삶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꽃들이 화려해서

오히려 마음은 아련하다.

 

그녀의 시 '곡자'를 읽다 보면 같은 여자이기에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 공연히 슬퍼진다.

 

 

 

 

 

 

 

처음엔 화원이나 난(蘭)을 취급하는 곳으로 알고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아주 많은 석곡(Dendrobium moniliforme)과 카틀레야(Cattleya)가 박물관처럼 많았다.

시냇물 농원은

이미 이런 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한 번쯤 들어 본 유명한 곳이다.

 

나는 까다로운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꽃잎이 떨어져 주변을 어지럽히거나

너무 빨리 자라고 우거지고 넝쿨지는 식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3년쯤 된 흔한 동양란 한분이 있는데

봄 되면 향기가 진한 꽃대를 내밀고 늘 그런 변함없는 모습으로 

공간 한쪽을 채우고 있어 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시냇물 농원의 주인은 귀찮아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이렇게나 많은 것을 어찌 다 손질하고 가꾸고 키워내는지 참 존경스럽다.

사랑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남들이 명품에 빠질 때 당신은 이것들을 가꾸고,

남들이 놀러가고 다른 것들을 좋아할 때

당신은 이것들에 빠져 지낸다고 하시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꽃 핀 아이들이 또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당장 몇 개라도 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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