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작년 이맘때쯤 수타사를 갔다가 수국이 지천인 것을 보고 카메라가 없는 것을 한탄했다.

핸드폰 사진은 풍성한 수국의 자태를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해서

올해 수국이 피기를 학수고대하다가 먼 길을 한걸음에 찾아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작년만큼 수국이 만발해서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한다.

 

어떤 이는 제주도 카멜리아 보다 더 멋지다고 하고

멀리 제주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나 또한 이만한 수국은 본 적이 없다.

 

하얗기도 하고, 아이보리빛이 나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어려운 고상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수국,

아마도 사찰이기에 '불두화'라고도 불리는 수국백당을 심은 듯하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작년의 일이다.

다산 정약용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강진을 찾았다.

주작산 자연휴양림에 짐을 풀기도 전에 비바람은 거세지고 모처럼의 휴가를 틈탄 강진 여행은 하루 만에 끝나고 말았다.

 

정약용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인생을 보낸 걸로 기억한다.

이 봄! 동백을 핑계로 강진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다산은 눈에 안들어 오고 동백만 보인다.

추위를 견디고 붉게 피어난 동백의 붉은 모습! 아름답고 또 명징했다.

 

 

 

 매화는 꽃잎의 색상에 따라 백매, 홍매, 청매 등으로 불리며 중국 송대에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 명대에 이르러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어졌다. 진나라 무제가 '글을 열심히 읽으면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면 꽃이 시들어졌다'라는 고사에서 호문 목(好文木)이라 불리기도 하고, 추위에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고 가난을 극복하고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선비에 빗대어 한사(寒士)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 광둥 성, 쓰촨 성, 후베이 성 일대가 원산지인 매화는 우리나라에 1500년경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24년 '8월에 매화꽃이 피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김훈은 책 [자전거여행]에서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라고 했다. 꽃말을 열거한 사설시조에서 김수장(金壽長,1690~?)은 '모란(木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이오 행화(杏花) 소인(小人)이라. 국화(菊花) 은일사(隱逸士) 요 매화(梅花) 한사(寒士)로다'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 죽란시사첩서(竹欄詩社帖序)에 이르기를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한 여름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초가을 연꽃이 피면 모이고, 국화가 피면 모이고, 겨울 큰 눈이 내리면 모이고, 연말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피면 모인다.'라고 적었다.

 

 예로부터 꽃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들이 적지 않으니 나 또한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에 통도사 홍매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갔다. 왕복 8시간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혹여 바람불어 떨어졌으면 어쩌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얼었으면 어쩌나 싶은 기우로 잠까지 설쳤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홍도는 매화를 너무나 아낀 나머지 그림값으로 받은 3천 냥을 다 털어 매화를 샀다던데 장거리 운전은 고사하고 피로한 것쯤은 홍매를 보기 위해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할밖에.

 다행히 통도사에는 몇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는데 만개한 홍매와 이제 피기 시작한 매화, 연분홍 매화 등이 있어 눈이 호강했다. 일본 하이쿠 시인 부손은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라고 썼다. 그렇다 얼마나 다행인가 매화나무가 한 그루가 아닌 것은!

 사실 작년에도 난 이곳에 왔었다. 누군가 홍매가 피었다고 전해서 먼 길을 달려갔는데 몇 송이만 피고 말아서 어찌나 야속하던지. 올해는 통도사 홍매를 실컷 보고 와서 행복한 마음에 이 글을 적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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