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을 타고 에뮈네뉘에 가서

갈라타다리 위의 강태공들을 보았다.

 

비가 살짝 내리기에 잠깐 근처 책방으로 피신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귈하네 공원'에 들렀다.

 

나중에야 이곳이 유명한 공원임을 알았지만

나는 그때 어찌나 기뻤던지....

오며 가며 꼭 한 번씩 들러 쉬어갔다.

 

높고 키가 큰 나무그늘은 시원했고

물보라를 일으키는 분수는 여름의 낭만을 더했다.

 

여유 있게 앉아 놀거나 수다 떠는 현지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는 마치 언젠가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 마저 들었다.

 

하루는 좋은 자리를 발견하곤 작정을 하고 앉아

그림도 그렸다.

 

 

 

 

 

여행 마지막 날,

호텔에서 정이 들었던 주방장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의 이름은  Gulten 귈텐 이었다.

 

u에 우무라우트가 있어 내가 발음이 어렵다고 하자

그녀는 귈하네 공원의 '귈'와 같다고 하며 발음을 교정해 줬다.

자신의 이름에 장미라는 뜻이 있다고 하며....

 

 

터키어로 장미는 Gul귈 이니 귈하네는 '장미의 집',  귈하네 파크는' 장미의 집 공원'인 셈이다.

지금은 장미철이 아니라 볼 수 없고

빨간 샐비어만 만발했다.

 

 

 

오후의 햇살이 조금 누그러질때를 기다려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17세기 초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하늘을 찌를듯한 6개의 미나레트와

중첩된 돔 지붕으로 구성되어

웅장한 외관과 함께 260여 개의 푸른빛 스테인리스 창문과

2만여 개의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된 실내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룬다.

본래의 이름보다 '블루모스크'란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스탄불 홀리데이 참조-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

택시를 타고 술탄아흐멧 광장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자마자 해는 지고 아름다운 불빛으로 신비롭기까지 한

블루 모스크를 보러 나갔다.

어두우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스크 야경을 배경으로

각자 편한 자세로

모스크를 즐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스탄불에 머무는 내내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했다.

새벽엔 그 푸름의 신비로움을 함께했고

밤이면 정적을 깨는

아잔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때로,

대리석 계단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거나

블루모스크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사라지고

여행자인 나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편해지다니...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신비한 경험.

블루모스크라서 가능한 일이었을게다.

 

 

 

 

이스탄불 여행 중 숙소를 아야소피아 근처에 예약했다.

오며 가며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사이의 광장을 지나며

낮이면 낮, 밤이면 야경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야소피아,

매일 지나다니며 줄이 짧은 날을 기다리다 드디어 짧은 줄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야소피아는 같은 자리에 세 번에 걸쳐 지어졌다.

세 번째 아야소피아는 약 920년간 비잔틴 제국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자리 잡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후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십자가는 내려지고 성화는 회칠로 가려졌다.

 

미마르시난은 네개의 첨탑을 세웠고 지금은 아야소피아 자미로 불리게 되었다.

 

1934년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모든 종교활동을 금지시켰으나

박물관이 된 이후에도

알라를 믿는 사람과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가 찾는 곳이 되었다.

 

본당 주변에는 거대한 둥근 나무판에 금색으로 쓴 캘리그래프가  먼저 보인다.

오스만 제국의 서예가인 카자스케르 무스타파 이젯 에펜디의 작품으로

알라와 하산, 휘세인 등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스탄불 셀프트레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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