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여행의 한 획을 긋게 만든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책의 첫 장에 나오는 '남도답사 1번지'는

내게 너무나 먼, 갈 수 없는 땅이었다.

마음 한편에 고이고이 간직해 놓은 '남도답사 일번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남도'는 내게 미지의 땅이었다.

 

이제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금,

난 '한 여름 배롱 투어'라는 명목으로 그곳을 둘러보고 왔다.

 

명옥헌(鳴玉軒) 원림을 둘러싼 백일홍은 붉은 꽃이 더위와 짝을 이뤄 핏빛처럼 붉었고,

연못의 蓮꽃들도 다투어 피어 가득하다.

 

백일홍은 여름꽃임이 분명하다.

땀방울을 쓸어내리며 봐야 하는 꽃이다.

백일홍과 연꽃을 보며 성하의 계절을 만끽해 본다.

 

 

 

강릉에 살면서 가장 많이 다닌 산은 단연 오대산이다.

오대산은 개인적인 인연까지 더해져 계절마다, 이유 없이 훌쩍 다녀오곤 했다.

 

더위가 극성을 부려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즈음,

아침 기온을 살펴보니 대관령은 20도 안팎이다.

 

해뜨기 전에 오르고 싶어 새벽에 출발했다.

월정사는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이 안된다.

 

상원사도 번쩍번쩍하게 새단장을 했고 규모도 커졌다.

누군가 내가 예전에 찍어두었던 상원사 사진을 본다면

아마 '여가 거야?'라고 할 것 같다.

 

적멸보궁 근처 샘물은 겨울이면 얼어있기도 했는데

뚜껑 있는 우물처럼 새로 만들어 놓았고 주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1986년 처음 본 월정사, 상원사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 지금 또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마법 앞에

나는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비로봉 정상까지는 여름꽃을 찾아보며 갔다.

정상에 오르니 잠자리 떼가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녀 정신이 없다.

올해 첫 잠자리를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귀여운 다람쥐들을 많이 만나

즐거웠다.

사람들의 먹이에 익숙해져서 졸졸 따라다니며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주소 : 충남 아산시 도고면 아산만로 182

주차 : 선도농협 주차장, 혹은 이면도로 적당한 곳, 아산 코메디홀 등

볼거리 : 작은 마을에 그려진 벽화와 능소화가 제법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규모가 작고 그 외에 볼거리는 거의 없다. 내가 갔을 때 코메디홀은 닫혀있었다. 코로나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꼭, 치악산 비로봉까지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날도 흐리고 몸은 찌뿌드하고, 어깨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구룡사 계곡 물이나 보러 가자 했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계곡 주변엔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 움큼 따서 모아 입에 넣으며 이게 웬 호강인가 싶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세렴폭포까지는 시원한 계곡과 산딸기 밭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정표를 보니 비로봉 정상까지 3키로 남짓.

여기서 멈춰야했다.

지인들은 모두 치악산은 만만하게 보고 가면 안 되는 산이라 했다.

악(岳) 자 들어 간 산이라고.

 

더구나 난 허약체질에 저질체력.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절대 함께 등산하지 않는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

 

하지만,  조금만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려오지 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은 비로봉 정상까지 갔다 왔다.

 

일기예보엔 비가 안 온다고 했건만,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길은 미끄럽고,

안개는 자욱하고,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이고.

 

0.7km를 앞두고 참 많이 갈등했다.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기가막히고 두려웠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해 보였다.

 

장장 7시간을 걸었나 보다.

내려오는 길은 더더욱 힘들었다.

무릎도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려 조심 또 조심.

오전 8시에 출발해서 내려오니 2시 가까이 됐다.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으니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산행코스>

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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